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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리바 Feb 25. 2020

'여성단체'라는 단어의 남다른 의미

정치적인 내용을 주장할 만큼 저는 정치적이지 않는걸요.

그 단어의 시작은 일반적인 회식자리였다.

회식자리는 여러 가지 이유로 만들어진다. 그리고 회식자리에선 의도치 않게 몰랐을법한 사람의 다른 이면을 마주하게 된다. 


그간 준비했던 프레젠테이션을 선보였지만 회사의 담당자는 일을 따내지 못했다.

밤새 열심히 준비했던 시간들에 대한 아쉬움이 묻어났기에 회식자리를 마련했고 뜻하지 않게 나도 그 자리에  참석하게 되었다.

회식은 활발한 호황 경제가 일어나는 자리이다. 시작은 돼지갈비였지만 과정과 끝은 한우의 목살, 살치, 등심으로 마무리된다. 불현듯 나를 불러낸 회사에 복수라도 하듯. 

공감할 수 없는 말들이 난무하는 그 자리에 내가 있는 희망은 한우니깐.

 

경쟁 프레젠테이션에서 졌기에 프레젠테이션에 대한 잘한 점, 미흡했던 점, 못내 이런저런 말을 하지 못한 아쉬운 점들을 나열하면서 마케팅에 관한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흘러나왔다. 대학교 때 했던 경쟁 pt나 기획안 작성이나 마케팅 수업 등이 떠올랐다. 실무에서 어떤 식으로 적용이 되었는지 이야기를 하는데 대학시절 고군분투했던 나의 시간들이 떠올랐다. 그때는 그게 어떻게 사용이 될 줄 몰랐는데 이렇게 다 이해하고 써먹게 되다니. 새삼 배웠던걸 알게 되니 묘하게 뿌듯해졌다.


여러 가지 이야기가 나왔는데 그중 예나 지금이나 일단 사람을 사로잡을 강력한 한 컷은 '섹스어필'이다.라는 주제가 화두가 되었다. 


지금은 여성을 존중하고 여성에 대한 배려가 상대적으로 높아졌지만 예전에 회사에서 행사 도우미들을 부를 때 (예를 들어 내레이터 같은) 아웃소싱 회사에서 일할 수 있는 여자의 프로필을 보여줬다고 한다. 이를테면 얼굴,  신체 사이즈가 상세하게 표시된 내용. (예나 지금이나 사진과 실물은 동일하지 않았다는 후문이...)

그렇게 얼굴과 신체사이즈로 여성을 뽑으면 다음은 '의상은 어떤 걸로 할까요?'라며 또 한 무더기 파일을 보여줬다고 한다. 단순하게 큰 흥미를 끌기 위해선 최대한 가슴은 파이고 치마는 엉덩이가 다 보일랑 말랑 하게 짧은 옷을 입혔다고.

그런 이야기들을 들으니 역시나 신기할 수밖에 없다. 불과 10-15년 안팎의 시절, 도와줄 여성을 선택하고, 의상까지 선별하는 그 이야기들이.


난 어른들이 하는 말이 재밌다. 옛날 옛적엔 말이야- 하면서 할아버지나 할머니가 이야기해주는 이야기를 듣는 기분이 든다. 나도 어렸을 적 '남아선호'에 대한 사상이 뚜렷하게 남아있었는데 (약 80프로 정도) 그런 경험들을 비추어 볼 때 세대가 굉장히 빠르게 바뀌어 간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 거 같다.


그러나 오고 가는 수많은 말들 중 어떤 말은 세대(생각) 차이가 많이 나기에 내가 의아할 정도로 잘못된 내용이라는 내용의 이야기를 들을 때가 있지만,  '요즘은 그렇지 않다'라고 그 내용을 바로잡는 어른들이 계시고, 나 또한 별 다른 행동을 취하여 그 문제에 이의를 제기하진 않는다.

그 생각과 의견이 잘못되었지만 결과적으로 세상은 변화하고 있고, 그 과정 속에서 굳이 옛날 관념, 관습을 고집하며 이야기하는 한 사람 정도는 웃으며 그저 옛날이야기를 듣는듯한 기분으로 있는다.

어차피 그 사람의 생각과 나의 상황의 연결고리가 없고, 시대는 바뀌어 가고 그 사람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던 사회는 잘못된 점도 개선되어 가고 있는 중이니깐.

신기한 건 10년도 채 되지 않는 시간 사람들의 생각 구조가 많이 바뀌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받아들이고 실행하는 능력이 뛰어나다고 하는데 그 예로 금연운동이었다. (그 내용을 상세하게 이야기해줬는데 난 결과만 기억해서 자세한 내용은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이 이야기를 통해서 우리나라가 무언가에 대한 실행력, 상황을 뒤집을 만한 집약적인 행동력이 강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시대가 어느 정도 바뀐 지금 섹스어필 마케팅을 매체가 아닌 실제로 하게 된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지금이면 잡혀갔지. 상상도 못 할 일이지'라는 말을 상사가 먼저 말했다.

나도 우스갯소리로 '여성단체들이 와서 시위했을 거예요'이야길 했는데 '어? 그 단어 되게 익숙하게 사용하시는데요? 성향이?' 하면서 정치적 성향까지 갑자기 몰아가기 시작했다. 그 이야기를 하면서 '진보와 보수'를 운운하며 웃고 떠들며 '그런 성향은 저랑 안 맞을 거 같아요.' 하며 말 몇 마디 섞지 않은 나와의 결론을 내버리더라.


물론 술이 거하게 들어간 상대편은 맨 정신에 못할 말을 분위기에 휩쓸려한다지만, 맨 정신으로 그 말을 받아 쳐내도 받아쳐지지 않는 상황에 놓인 나는 굉장히 당혹스러웠다. 

'여성단체'라는 그 단어 한 마디로 인해 내가 무슨 잘못이라도 한 것처럼.

언제부터 여성단체라는 이야기가 정치적 성향을 내포하고 있었던 건지 혼란스러워졌다. 내가 아무 의미 없이 국어사전에 나와있는(?) 필요에 의해서 할 수 있는 말들이 누군가에게 정치적인 내용으로 들려질 수 있다는 생각에 충격이 아닐 수 없어졌다. 


이 뿐만이 아니다.

그 자리에서 유시민과 진중권의 토론에 관한 이야기도 나왔는데 '진중권이 현 정권을 시원하게 까더라고'하는 말에 '그르니까요'라는 대답을 했는데 다시 나의 정치적 성향에 대해서 '거기서 왜 그런 답이 나오세요?'라는 물음으로 이어졌다.


ㅎ..ㅏ..참나. 

같은 회사라는 점을 빼고는 전혀 공통분모 없이 살아온 우리는 뭐든 회식자리에서 서로가 알만한 주제를 가지고 이야기를 만들어 내야 했다. 그 시작과 과정은 가볍다.

나는 정치를 잘 모르는 사람이고 여성이지만 단체와는 무관한 사람이다. 굳이 알고 싶지도 알아야 할 필요도 없는 내용에 대해서 어줍잖이 맞장구 쳐줄 뿐이고.

내 이야기에 대해서는 내가 책임을 진다지만 내가 말하는 것마다 정치적인 색을 덧입히는 그 분위기에 '시발 뭐 하자는 거지?'라는 강한 부대낌이 속에서 올라왔다.


늘 한 마디씩 나오는 정치적인 발언은 흥미로웠지만, 그 날 내가 들은 내용은 고문과도 같았다.


정치와 종교는 언급하지 않는 것이-

예전에 회식 2차 자리에서 회사에서 지적 능력이 뛰어난 상무님께 이런 부분을 물어봤다. '전 사실 올바른 정치적 신념을 갖고 싶어도 가끔은 혼란스러울 때가 있어요. 누군가는 맞는 내용이라고 주장하지만 누군가에게는 맞지 않는 내용이라고 이기도 하니깐요. 그렇다고 이걸 고른다고 저걸 아예 버리는 건 아닌데 사람들은 이걸 쥐었으니 저건 당연히 버리는 거 아냐?라고 하죠. 그게 어려워요. 그리고 복잡해요.'

친구들끼리 이야기를 해도 정치성향이 짙은 친구는 그 자리를 불편하게 만든다. 실제 내부자가 아니기 때문에 전체적인 그림을 위해서 어떻게 상황을 만들어져 가는지 우리는 구체적으로 정확하게 모른다. 게다가 요즘은 정보가 하도 많아서 선별해야 하는데 그 선별하는 작업 또한 만만치 않다.

그런 과도기적 상태에 놓여 있는 '나'였다. 그 가운데 뚜렷한 정치 성향을 가진 사람들을 보면 실로 대단해 보이기도 했다. 무수히 많은 정보들 가운데 자신에 맞는 내용을 선택해 지지하는 거니깐. 


슬픈 건 언제부터 '여성단체'를 이야기하면 좋지 못한 시선을 받아야 했을까? 진보와 보수를 운운하며 꼭 편을 갈라서 이야기를 해야 할까? 왜 지역적으로 편이 나뉘어서 댓글들은 난리일까? 싶다.

결국 모든 것에는 양면성이 존재한다. 그러나 우리는 너무 편 가르기만 급급하게 돌아간다. 난 그게 너무 불편하다. 합의점을 찾는 과정은 치열할지언정 결과는 화합이 되어야 하는데 흑 아니면 백인 이 싸움에 내 부대낌만 더해간다.


중요한 건 발언을 강하게 주장하진 않아도, 나처럼 침묵하는 누군가가 있다는 걸 알게 된다. 어떤 문제가 제시되어졌을 때 그것을 '무조건 옳다.' '무조건 옳지 않다.'가 아니라 합리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알게 된다. 어쨌든 정치적인 내용으로 더 나은 방향을 위한 이야기를 할 수 없는 지금의 현실이 조금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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