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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리바 Mar 10. 2020

무시하지 마시죠

나쁜 사람으로부터 온 영향

원래부터 라는 단어는 사실 잘 믿지 않는다. 상황은 바뀌고 사람은 변하고, 그런 상황이 나를 계속해서 만들어서 마치 원래부터 나인 것 마냥 만드는 것일 뿐.


그래서 나는 생각하고 다짐한다. '난 점점 만들어져 가고 있다.' '성장해 가고 있다는 증거이다.'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를 비교하면 그렇다는 것이다. 어쩌면 나도 익어가는 과정 중에 있기에 좋은 쪽으로 성장도 하겠지만, 잘 자라다가 못난이처럼 삐죽 솟아오르는 모습을 보게 되면 스스로에게 '너 왜 그러니?'하고 물을 때도 있다.

한없이 올바르게만 갈 순 없으니.


남들보다 아직은 어린 축에 속하는 나는 종종 무시받을 때가 있다.

초년생일 땐 '하하 호호'웃으며 그 무시에 대해서 구분을 못하고 넘겼다. 나는 어렸고, 순진했고, 당시에는 배우면 되니깐, 이라는 생각으로. 나에게 시간은 많았고, 배우면 언젠가 저런 나이가 되겠지 하며 당돌하게 굴었다.

나이라는 게 그렇게 무서운 거다. 아무것도 모를 때 모르는 게 무기가 돼서 누군가에게 말하는 '미안함''죄송함'은 나에겐 실수를 만회할 기회였고 책임감 없이 나는 그 기회들을 남발했다.


지금은? 지금은 달라. 지금은 회사생활에 대한 자아가 생겼으니깐.

어떤 것에 대해서 불쾌함을 드러낼 연식이 쌓였다. 싫으면 싫고, 좋으면 좋고, 요구할 땐 요구하고, 도움을 줄 땐 도움을 준다. 회사 생활은 나 혼자 튀려는 것이 아닌 함께하는 것이고, 스스로인 회사는 없다는 걸 알아가기에 서로에게 배려와 존중을 하며 생활하고 공존해야 하는 곳이 회사라는 공간이다.


하지만 최근에, 상대에게 굉장히 관대한 나는 최근에 불쾌한 언행을 마주하며 퇴근 후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렸다.

'아마 모를 거야' '몰라서-' '모를 거지-'단정 지으며 내가 무지한 사람이란 걸 최근에서야 직접적으로 들으니 영- 기분이 언짢았다. 같이 일 해보지도 않고, 내가 나이가 한참이나 어리고. 업무도 숙달되지 않음을 자기 혼자 단정 짓고 나에게 '걘 그럴 것이다'라는 투로 이야기하는데 화 안 날 사람, 표정관리 안될 사람이 어딨을까?

전화기 너머로 들려져 오는 오만한 말투에 화가 났다. 속이 부글부글 끓었고, 표정은 개판이었으리라.


경력으로 따지면 내가 더 짬밥이 있는데 어디서 굴러먹던 돌이 들어와서 대표 취급받으면서 떵떵거리니 동방예의지국의 예는 온데간데없이 이 새끼 하며 속에서 쌍욕을 들이붓고 있었다.


그렇게 하루하루 무시를 받으며 업무에 대해 짜증 감을 표현할 길은 없었는데, 한 날은 전화를 하며 자기네들의 일은 한치의 오차도 없다며, 실수를 온전하게 내 책임으로 돌리며 말하는 그 태도에 나의 정신도 바짝 차려진 것 같았다.

한치의 오차도 없는 스스로의 자긍심. 오차 없는 너희? 붙어보자.라는 심보로 그 날부터 칼 같이 재고 따지 고를 해댄 거 같다. 나도 내가 이렇게 투지에 불타오르며 일을 열정적으로 하는 사람인 건 그때 처음 알았다.




그 사람은 그런 사람이더라.

회사 생활은 마주 하고 싶지 않지만 싫은 사람도 웃으며 마주해야 하는 현실적인 곳이다. 갑과 을이 철저하게 구분이 되는. 다행스럽게 우리 회사는 대부분 갑이다. 그렇지만 착한 갑이다. 그렇기에 을에서 요구하는 조건을 많이 수용해주고 보호해주려고 애쓴다.

한 번은 그쪽에서 회서 서류에 대한 요구가 있어서 중요한 서류니 가져갔다가 다시 가져와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10-30분 정도 걸릴 꺼란 예상을 뒤엎고, 난 2시간 동안 우두커니 회사도 아닌 곳에서 대기했다. 당연히 내 일은 퇴근시간 직전까지 미뤄졌다.

내가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표정이 별로 좋지 않자 모든 핑계는 애꿎은 자기의 직원 탓으로 돌렸다. 모르는 사람들 앞에서 직원들 욕을 하거나, 직원에게 함부로 하는 그 모습을 보면서 '저 사람은 제발 망하게 해 주세요'라고 속으로 외쳤다. 난 그 사람의 부하직원은 아니었지만 옆에 있던 내가 다 민망할 정도로 본인 스스로의 모습은 모른 채 지르기만 한 그의 모습에 혀를 내둘렀다.

부끄럽게도 고객이 '대표가 너무 직원들을 홀대하네요'라는 말까지 했을까.


사람을 얻는 사람과 사람을 잃지 않는 사람.

우리는 사람을 얻는 삶을 살아야 한다. 난 나 홀로 사는 게 좋아!라고 말할 수 있지만, 무인도가 아닌 이상 나 홀로 살아갈 수 없는 세상이다. 물건 하나가 나에게 오기까지 수많은 사람들을 거쳐야 하는 걸 보면 그렇다. 우리는 세상의 한 파트로 이루어져 살고 있고, 그 안에서 우리의 목소리를 주장하며 살아가고 있다.

결국은 사람을 얻으며 살아야 하는 삶을 우리는 살 수 밖에 없다. 그 속에서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 스스로는 스스로로써 살아가면 될 텐데 왜 본인의 무덤을 팔고 사는지, 오래 살기야 하겠다. 오만 사람들이 뒤에서 많은 이야기들을 쏟아내니.



결과적으로 나는 그 사람에게 좋은 영향을 얻기도 했다. 그가 나를 무시했던 사실로 내 스스로가 스트레스 받아했던 시간들도 있었지만

저렇게 나이들진 말아야지 하는 배움도 얻었다.

나쁜일을 마주한다고 해서 영 나쁜일만은 있는것도 아니지만, 되도록이면 똥은 멀리 피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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