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 빨리 됐으면 좋겠어. 어른이 되면 좋은 게 더 많은 거 같아. 빨리 나이가 들었으면 좋겠어. 언니들이 나 소외시키지 않게.
한참 어린 사촌동생은 그런 말을 했다고 한다. 그 이야기를 듣고 앙증맞게 느껴지면서 내가 가진 어른의 무게가 느껴졌다.
나도 고등학교 때 어른의 삶에 대한 환상이 있었다.
어떤 환상인지 구체적이진 않지만 어른이 되면 다 할 수 있을 것만 같았고, 다 해볼 기세였다. 친구들이랑 인생 버킷리스트를 작성하면서 이것도 저것도 좋아서 같이 공유했던 기억이 있다. 매일 저녁 다이어리를 꾸몄고, 수능과 수시가 없던 시간들은 소소하게 이런저런 미래에 대한 이야기들을 했다.
그렇게 어른이 된다는 건 생각 보면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야 우리 몇 분 뒤면 성인이야!'라고 설레서 친구들과 이야길 했던, 새해가 되자마자 사람들이 정해놓은 합법적인 '성인' '어른'이 되었다는 게 어린이가 어른 흉내를 내는 기분이 들었다. 시간이 지나면 그런 기분이 나아지리라 여겼고 한동안은 그런 생각을 하지 않고 살았던 거 같다. 대학 내내 과거에 연연하지 않고 그 나이에 할 수 있는 것들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대학생이라는 신분은 합법적인 어른이긴 하지만, 어른이라고도 그렇다고 어리다고도 할 수 없는 소속이였고, 인생의 큰 책임감들을 스스로가 지기보다는 부모님의 보호를 받으며 지낸 시간이었다.
완전하게 사회생활을 하는 지금이라고 달라졌을까?
그 때와는 달라진것들이 많지만, 지금도 크게 달라지진 않은 것 같다. 어쩌면 지금은 더 하게 생각이 든다. '이렇게 철없는 내가. 나이만 먹은 사람이다' 이런 생각은 시시때때로 들곤 하니깐.
결혼하면 어떨까? 라는 생각에 주변에 물어보면 '나도 애가 애를 낳은 기분이 든다니깐'이란 답에 우리끼리 배꼽 잡으며 웃었던 기억이 있다.
가끔 '어른이 되면 좋은 게 뭐예요?'라는 질문에 나도 아직 잘 모르겠는 어른의 세계를 말하려니 당황스럽지 않을 수가 없다.
어.. 움.. 음... 음......
어른의 좋은 점을 생각해본 적 없이 살았던 나였는데, 그런 질문들은 나를 블랙홀로 빨려 들게 만든다. 좋아서 어른이 된 게 아니라 시간이 흘러 어른이 된 것뿐인데.
어른이 되어 막막해지는 게 있는데, 바로 내 시간을 주체적으로 사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내 인생에 감 놔라 배 놔라 하는 사람이 없고, 과제를 주는 사람도 없다. 선생님도, 부모님도 크게 강요하는 사람도 없다. 수많은 조언을 들을 뿐이지만 결론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상대방은 '네가 알아서 잘하겠지'라며 덜 간섭하는 세계에 살고 있다.
내 맘대로 살기에는 좋으나, 나태함에 빠지기 쉽고 무력감에 휩싸이기 쉬워졌다. 퇴근 이후의 시간들을 그렇게 보내버리다가 아침에 눈을 떠 출근을 하고 그런 생활들이 반복이다. 나만 이런 걸까 싶어서 주변을 둘러보면, 생각보다 자기 계발에 관심을 두는 사람이 많지 않구나 라는걸 알 수 있었다.
'같이 해볼래?'라는 말이 무색해질 정도로 많은 거절을 당했다. 물론 각자의 사정들이 있었겠지만. 그래서 지난 시간 동안 난 혼자 하는 편을 선택했다. 가끔 이렇게 자기 주도형이랍시고 몰아붙이는 나 자신이 피로할 때가 있다. 인생 참 피곤하네. 바람 잘 날이 없네 싶은 시간들이 이어진다.
예전에 가지고 있었던 버킷리스트들은 어디로 가버렸을까? 대학교 시절까지 내 눈은 빛났던 거 같은데. 몸은 늙어도 마음마저 늙고 싶진 않은데 자꾸 드러누울 요령만 피우려고 한다.
인생은 참 안 피곤했던 적이 없었던 거 같다. 어렸을 적이나 그 시절을 지난 나나. 피곤함의 무게가 더 확장된 건 사실이지만 어른이라며 내몰리는 건 가끔 더 많이 헛헛하게 다가와질 때가 있다.
좋은 대학도, 좋은 직장도 목맬 필요가 없는 지금의 위치에서 너무 많은 여유를 부리기보다 적당하게 나를 돌아보며 시간들을 채워가야한다는걸 매일 느끼고 있다.
편한 인생살이가 없는데도 자꾸 나태해지고 월요일이야!!하며 눈을 뜬다. 그런 일상이 반복되다보면 '지겨운 하루하루 즐기자'하며 마음을 옮기는 태도로 지낸다. 시간이 갈 수록 인생의 무게는 더 나를 짓누른다는걸 나보다 더 어른을 보고 배웠으니깐 멍청하게 시간을 흘려보내지 말고 조금 확장된 마음과 정신으로 삶을 대해야 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