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 인문학_우리가 기꺼이 견뎌야할 선에 대하여
"정도껏 해야지, 도저히 이해가 안 되네."
우리는 살면서 이런 말을 뱉거나 삼킨다. 그럴 때마다 자문하게 된다. 과연 나의 이해심은 어느 정도일까.
나는 내가 꽤 이해심이 깊은 사람인 줄 알았다. 모나지 않게 주변에 맞추며 살아왔고, 세월의 내공 덕에 웬만한 자극에는 상처받지 않는 '득도'의 경지에 올랐다고 자부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10여년 전, 'H'를 만나며 나의 오만은 여지없이 깨졌다.
인사 발령 후 식사 자리에서 마주한 H의 팀원들은 기이할 정도로 침묵했다. 전임자가 남기고 간 인수인계 메모는 흡사 유서와 같았다.
결재 가능시간 엄수부터 서류함의 배치까지, 상식 밖의 규칙들로 가득한 그 메모는 괴랄했다. 베테랑 엔지니어였던 H는 실력만큼이나 혹독한 사람이었다.
그는 자신의 방식대로 하도급 업체를 선정하기 위해 무리한 작전을 짰고, 그 과정이 뜻대로 풀리지 않자 화살을 나에게 돌렸다.
가설 사무실 도면만 서른 번을 고쳤다. 화장실 위치 하나로 며칠을 시달렸다. 숨이 막힐 듯한 갈굼 속에서 나는 무너져 내렸다. 퇴근 후 한강 둔치에서 멍하니 담배를 피우고, 목적지 없는 고속도로를 달리며 현실을 도피했다. 당장이라도 그만두고 싶었지만, "아스팔트 껌처럼 딱 붙어 견디면 승승장구할 것"이라는 가족의 격려를 주문처럼 외우며 죽기 살기로 버텼다. '이 사람만 견디면 세상에 못 견딜 사람은 없다'고 믿었으니까.
그러나 착각이었다. 5년이 채 되지 않아 H를 능가하는 'J'가 나타났고, 해외 근무 3년을 인내로 채우자 이번엔 'S'라는 마지막 장애물이 앞을 가로막았다.
고통에는 내성이 없었다. 폭력의 공포, 오물 같은 불쾌함, 뱀 같은 징그러움이 저마다 결이 다르듯, 사람의 악함에도 다양한 색깔과 농도가 있었다.
S는 치졸하고 야비했다. 실력보다는 윗사람 비위를 맞추며 승승장구하는 그를 보며, 나는 한때 그를 이해해보려 노력했다. 그를 잘 보필해 나 또한 현장소장이 되겠다는 포부가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이해의 노력은 결국 나를 파괴했다. 보다 못한 아내가 "힘들면 그만둬도 된다"며 손을 내밀었을 때, 나는 비로소 살기 위해 사직서를 던졌다. 17년을 몸담은 첫 직장이었지만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그 한 사람이 나의 온 세상을 절망으로 덮어버렸기 때문이다.
오랜 시간이 흐른 뒤, 재취업 면접에서 부사장님이 물었다. "왜 그 좋은 직장을 중간에 그만뒀습니까?" 나는 차마 한 사람 때문이었다고 말하지 못하고, "번아웃이 왔던 것 같습니다"라고 답했다. 5년이 지나서야 나는 깨달았다. 그때의 나는 이해심이 부족했던 것이 아니라, 내가 수용할 수 있는 '이해의 임계점'을 넘어섰던 것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흔히 '이해'가 덕목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해심은 상대를 견딜 수 있는 체력이 뒷받침될 때 비로소 논할 수 있는 것이다. 납득이 되어야 인내의 명분도 생긴다. 누군가 나를 서서히 죽이고 있는데, 그 상황을 끝없이 이해하려 드는 것은 이해가 아니라 가스라이팅이자 자기 학대다.
그러니 이제는 스스로에게 말해주고 싶다. 이해는 당신이 받아들일 수 있는 지점까지만 하면 된다고. 노력하고 참아보되, 나를 잃어버릴 정도로 자신을 몰아세울 필요는 없다.
우리가 타인을 이해하는 범위는 딱 나의 숨통이 트여있는 곳까지여야 한다.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을 억지로 품으려 애쓰는 당신에게, 이제 그만 그 무거운 짐을 내려놓아도 좋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짐을 내려놓은 뒤에는 냉정하게 질문을 던져보자. '지금 이 인내가 나를 성장시키고 있는가, 아니면 소모시키고 있는가?'
만약 소모뿐인 인내라면, 그때부터는 이해가 아닌 '대응'의 영역으로 넘어가야 한다. 기한을 정해두고 거리를 두거나, 나를 보호할 물리적·심리적 방어벽을 세워야 한다. 때로는 사직서라는 이름의 탈출구가 가장 용기 있는 해결책이 되기도 한다.
기억하자. 타인을 향한 당신의 넓은 마음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은, 그 마음이 머무는 집인 '당신 자신'이 무너지지 않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