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인의 인문학적 성찰 에세이
누구든, 누군가를 만난다.
그게 이유가 아니라도 일을 하면 만나게 되고, 그 만남들을 통해서 일을 하게 된다. 여기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직업은 없다.
사람을 만난다는 것. 어쩌면 그것이 '일'에 대한 가장 본질적인 정의일지도 모른다. 세상에 사람을 통하지 않는 일이 어디 있을까. 접점이 어디냐의 차이일 뿐, 우리는 결국 누군가를 만난다. 목적이 아니더라도 일을 위해 만나게 되고, 그 만남들이 모여 비로소 하나의 일이 완성된다. 이 필연적인 굴레에서 자유로운 직업은 단언컨대 없다. 오히려 이 사실을 간과한 채 직업의 세계에 뛰어든다면, 그 끝에는 반드시 후회가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조금 식상할지 모르나, 직업 만족도에 관해 이야기해 보자. 굳이 수치화된 통계 자료를 나열하지 않더라도 우리가 익히 아는 사례가 있다.
한때 의사였던 안철수 대표의 강의 내용이다. 그에 따르면, 선망의 대상인 의사라는 직업이 만족도 조사에서는 늘 하위권에 머문다고 한다.
치열한 입시 전쟁을 뚫고 의사가 된 이들 중 상당수는 부모의 기대나 사회적 지위, 경제적 보상을 쫓아 그 길을 택한다. 인류의 생명을 구하겠다는 거창한 꿈을 안고 흰 가운을 입지만, 막상 마주하는 현실은 다르다. 그들이 매일 수행해야 하는 업의 본질은 고독한 연구가 아니라, 온종일 아픈 환자들과 마주 앉아 그들의 고통 섞인 목소리를 듣고 상담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평생 책상 앞에 앉아 텍스트와 씨름해 온 이들에게 타인의 아픔에 귀를 기울이고 교감하는 일은 준비되지 않은 가혹한 노동이 된다. 결국, '하는 일'의 본질이 '사람을 만나는 것'임을 알지 못했던 이들은 현장에서 길을 잃고 만다.
의사는 직업 만족도가 꼴찌 일지 모르지만,
건설업에서는 누군가를 만나는 것이 싫으면 존재할 수가 없다
의사가 그러할진대, 하물며 건설업은 어떠한가. 이 바닥에서 사람 만나는 것을 기피한다면 존재 자체가 불가능하다. 개집 이상의 규모를 짓는 일에만 수백 명의 손길이 오간다. 매 순간 사람이 바뀌고, 그들의 성향과 말투, 가치관은 천차만별이다. 환자로 비유하자면 세상에 같은 증상을 가진 환자가 단 한 명도 없는 셈이다. 때로는 타인을, 때로는 지인을, 가끔은 친인척까지 마주하며 협력해야 한다. 그러니 사람을 대하는 것이 두렵거나 귀찮은 이들에게, 홀로 고고하게 일을 처리할 수 있는 건설 현장이란 상상 속에나 존재하는 유토피아일 뿐이다.
문제는 여기서 시작된다. 사람을 만나는 것이 일의 시작이자 끝인 이 업계에서, 우리는 '사람에 대한 교육'을 얼마나 받아왔는가. 사람을 위한 훈련도, 깊은 사유도 없이 건설업에 뛰어든 이들이 마주할 혼란은 불 보듯 뻔하다. 운 좋게 훌륭한 멘토를 만나 말과 행동으로 가르침을 받았다면 다행이겠지만, 대부분은 거친 현장에 부딪혀 상처 입고, 무지함으로 타인에게 상처 주며, 뒤늦은 후회 끝에야 '인간'이라는 키워드에 눈을 돌리게 된다. 주변을 둘러보라. 이것이 부정할 수 없는 우리의 자화상이 아닌가.
이제 선임의 자리에 서 있는 당신에게 묻고 싶다.
과거 소위 '노가다'라 불리던 시절에 비해 요즘 후배들이 너무 편하게만 보이나? 콘크리트 타설이 한창인데 먼 산만 바라보며 잔소리 한마디 않는 후임이 품질 관리를 뒷전으로 미루는 것처럼 보이는가? 위험 작업을 앞두고 현장을 지키기는커녕 사무실 책상에 앉아 있는 후배가 생각 없어 보이는가? 반복되는 실수에도 도면을 체크하거나 재발 방지 교육을 하지 않는 모습에 울화가 치미는가? 비 소식에도 자재를 보양할 생각조차 않는 직원들을 보며 얼마나 더 소리를 질러야 현장이 돌아갈까 싶어 한숨이 나오는가?
"나도 욕먹으면서 배웠으니, 혼을 내서라도 가르쳐야 좋아진다"라는 그 굳건한 믿음. 미안하지만, 그것은 착각이다.
이제 우리는 낡은 방식을 과감히 던져버려야 한다. 시도조차 해보지 않고 안 된다고 말하지 마라. 비록 그 시도가 당장 눈에 띄는 변화를 가져오지 못할지라도 말이다. 우리가 마주하는 젊은 직원들은 당신이 지나온 '그 시절'의 사람들이 아니다.
사람을 만나는 것이 일이라면, 새로운 시대를 만나는 것 또한 당신의 일이다. 묻고 싶다. 당신은 지금, 누구를 만나고 있는가? 그리고 그 만남을 위해 어떤 준비를 하고 있는가?
집을 지으며 수백 명을 만나듯, 우리는 살아가며 수많은 '세대'라는 이름의 낯선 이들을 만난다. 젊은 직원들과의 만남이 유독 서툴고 어렵게 느껴진다면, 그것은 당신이 여전히 성장하고 있다는 증거일지도 모른다. 과거의 내가 누군가에게 상처받으며 배웠듯, 이제는 내가 누군가에게 상처 주지 않으며 가르치는 법을 배워야 할 때다. 그것이 우리가 다음 세대에게 물려줄 수 있는 가장 견고한 기초 공사가 아닐까. 당신이 지금 마주하고 있는 그 젊은 직원은, 당신이 건설해야 할 또 하나의 내일이다.
건설은 무(無)에서 유(有)를 만드는 과정이며, 그 동력은 결국 사람 사이의 '흐름'에서 나온다. 젊은 세대라는 새로운 유입이 그 흐름을 방해하는 장애물인지, 아니면 현장에 생기를 불어넣을 새로운 동력인지는 오로지 당신의 태도에 달려 있다. 기억하라. 만남이 곧 일이라면, 당신이 만나는 젊은 친구들은 당신이 정복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함께 집을 지어갈 파트너다. 구태의연한 '라떼'의 외침을 거두고, 그들의 언어에 귀를 기울여라. 당신은 오늘, 그들과 어떤 집을 지을 준비가 되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