흘러가려는 사람과 역류하려는 사람
나는, 그리고 우리 모두는 물고기다.
목적이 있다면 헤엄쳐 갈 수 있고 잡아먹을 수 있고, 도망갈 수 있다.
때론 목적없이 그저 흘러가는대로 본능에 이끌려 제대로 된 먹이인지 판단도 않은 채 덤빌 때도 있다.
오늘 또 한 권의 책을 읽었다.
읽는내내 속이 울렁거렸고 불쾌했고 냄새가 나는 거 같았다. 이 책은 아이러니하게도 주인공이 혼자일 때 안도했고, 소속될 때 불안했다.
나는 언나와 간나와 이년과 저년과 유나를 차례로 떠올렸다. 한때는 장미라는 이름을 갖고 싶었고 드드덕이라는 이름을 원하기도 했으나, 이름 따윈 없어도 상관없다고 생각한 적이 더 많았다. 어디에나 어울리는, 누구에게나 갖다 붙일 수 있는 이름은 싫다. -281p
주인공은 이름이 없었고, 사랑이 없었고 다만 목적이 있었다.
진짜엄마를 찾아야겠다는 목적. 그리고 그 엄마의 뱃속으로 다시 들어가고 싶다는 바람.
그러나 주인공은 소속될 때마다 목적을 잊었고, 버려질 때 비로소 떠올렸다. 이건 진짜로 엄마를 찾고 싶은걸까? 아니면 혼자일 때-본인이 안전하다고 느끼지 못하는 순간이라고 볼 수 있겠다-자신을 지켜줄 누군가를 찾는걸까?
그건 끝내 알 수 없었다.
결국 소녀의 이름을 알아낼 수 없었던 것처럼.
내가 읽은 이 책은 최진영 작가의 <당신 옆을 스쳐간 그 소녀의 이름은>이다.
여름에도 물고기는 살고, 겨울에도 물고기는 산다
이 책을 읽는 내내 몇 개월 전에 읽었던 <풀이 눕는다>를 떠올렸다. 아주 다른 주인공이고, 전혀 다른 이야기이다.
그치만 흐르는 강물에 몸을 내던지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풀이 눕는다>의 주인공과
거센 물살을 정통으로 맞으면서도 역류하려는 ‘언나, 간나, 이년, 저년, 유나’가 너무 달라서 닮기도 했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두 권의 책은 묘사된 배경도 다르다.
<풀이 눕는다>는 아주 뜨겁고 녹을 거 같은 여름의 계절,
<당신 옆을 스쳐간 그 소녀의 이름은>은 차갑고 바람때문에 더 쓰라린 겨울을 묘사하고 있다.
누가 내게 이런 말을 해준 적이 있다.
‘뜨거울수록 죽고싶고, 추울수록 살고싶은 게 본능이야.’
마침 이 표현이 두 책을 설명하는 데에 아주 적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풀이 눕는다>를 읽는 동안에는 타들어가는 계절과 녹을 거 같은 표현들에 독자인 나조차도 숨막히고 죽고싶은 지경이었다.
그러나 <당신 옆을 스쳐간 그 소녀의 이름은>을 읽을 땐 스스로 움켜들었고 주인공이 살길 바라고, 이에 간절하기까지 했다.
두 권의 책은 이렇게 너무 다르지만 죽음과 여름, 삶과 겨울을 연관시켜준다는 점에서 비슷하다.
그리고 적당한 온도와 적당한 삶의 의미를 찾아주는 봄, 가을과 달리 둘은 너무 극단적인 삶의 모습을 묘사한다는 점에서도 두 권은 닮아있다.
너무 달라서 닮아있는 두 권의 책을 같이 읽어본다면 좋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보고 있는 세상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그리고 세상에는 모두 다른 인간만이 존재하고 젼혀 다른 방식으로 헤엄치며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그리하여 인간적이라는 표현이 거북하게 느껴지길 바란다.
모든 물고기가 물의 방향대로 헤엄치고 먹이사슬에서 살아남으려는 것은 아니다.
어떤 물고기는 전혀 헤엄치지 않고도 흘러갈 때도 있고, 물의 방향과 거꾸로 역류하려하기도 한다.
결국 나는, 그리고 우리 모두도 물고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