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THE PLAYLIST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ORYU 호류 Feb 23. 2021

고요한 눈밭을 채색하는 붓처럼

나카시마 미카「雪の華(Yuki no Hana) silent ver.」

평소에 딱히 계절이나 날씨를 타며 노래를 골라 듣는 편은 아니지만, 요즘처럼 눈이 오는 시기에는 차분한 게 생각나서 '中島美嘉(Nakashima Mika / 나카시마 미카)' 「雪の華(Yuki no Hana / 유키노 하나)」를 꺼낸다. 이 곡은 여러 가지 버전이 있는데 그중에서도, 원곡보다는 미니 앨범 『朧月夜~祈り(Oborozukiyo~Inori / 오보로즈키요~이노리)』에 수록된 'silent version'을 특히 애청한다.

Mini Album『朧月夜~祈り(오보로즈키요~이노리)』(picture from: mikanakashima.com)


2004년 11월 말, 그 해의 첫눈이 내렸다. 3교시 마치고 창가에 반 애들이 몰려있기에 뭐지 하고 가봤더니, 창밖으로 진눈깨비가 내리고 있었다. 2004년 첫 눈꽃이었다. 마침 mp3 플레이어에 「유키노 하나 (silent version)」이 담겨있었다. '지금 이거 들으면 진짜 딱이겠다!' 하고 설레서 냉큼 이어폰을 꽂으며 재생했다.


그 순간, 나와 이 노래와 눈 오는 하얀 창밖 세상만이 존재했다. 눈과 귀에 펼쳐진 이 풍경과 소리에 온전히 빠져들었다. 이 곡을 정말로 눈 오는 모습을 보며 감상하게 되다니, 마음이 굉장히 벅차올랐다.


먼저 피아노가, 건반과 이어진 해머 두드리는 미세한 소리까지 들릴 정도로 조용하게, 가장 높은 음역대에서 등장한다. 아무도 지나가지 않은 깨끗한 눈밭을 한 발 한 발 조심스럽게 내딛는 느낌이다. 뒤이어 바이올린이 살며시 나타나 점점 선명해진다. 한줄기의 음이 길게 뻗어나가는 것이 마치 붓으로 유유히 선을 긋는 것 같다이러한 이미지가 그려지며 그 조화로움에 엄청 감탄하였다.


원곡이 풍성한 스케일의 연주를 통해 애틋함이 점점 고조되는 스탠더드 발라드라면, 이 버전은 규모가 큰 현악단이 아닌, 바이올린 한 대와 피아노 한 대 만으로 연주가 채워져 있다. 절제된 편성으로 더욱 깊고 우아한 소리를 만들어낸다. 새하얗고 고요한 풍경 속에서, 몇 가지의 음색만으로 간결하고 정갈하게 채색하는 것 같다. 이 순간의 바깥 풍경과 무척이나 잘 어울렸다.



나카시마 미카의 노랫소리는, 가느다란듯하면서도 단단한 힘이 있다. 플루트 질감이 느껴지는 가성과, 현악기의 파동 같은 풍부한 바이브레이션으로 특유의 색깔을 소리 낸다. 이 노랫소리와 바이올린의 서로 완전히 다른 선율이 함께 교차하며 화음을 이룬다. 그 음색이 심금을 울린다.


그리고 반주의 구성이 기존과는 다른 형태로 그려져서 신선하다. 짧게 끊어 연주하는 스타카토나, 현을 손가락으로 튕기는 피치카토 등 다양한 주법이 배치되어 있다. 새로운 표현이 여기저기 녹아있는 이 편곡이 정말 마음에 든다.

매거진의 이전글 여유로운 설렘, 그 기분 좋은 공명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