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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RYU 호류 Mar 05. 2021

해외 자취러의 '오늘 뭐 먹지?'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기 | 메뉴 고르는 설렘과 소소한 성취감

'오늘은 무엇을 먹을까?' 하며 생각하는 것은, 자신의 내면의 소리에 집중하는 과정이다. 메뉴를 고르다 보면 은근히 설레기도 하고 활력이 솟아난다. 나에게 '밥 먹기'란 단순히 끼니를 때우는 것이 아니다. 나를 위해 식사 메뉴를 고민하는 이 일상의 행동은, 몸과 마음이 진정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이고 어떤 것에 끌리는지 스스로를 살펴보게 해 준다. 드라마『고독한 미식가(孤独のグルメ)』의 주인공 아저씨 '이노가시라 고로(井之頭五郎)'처럼, 나도 항상 식사 메뉴를 고르기에 앞서 '난 지금 무엇을 먹고 싶지? 내 위장은 어떤 맛과 질감의 음식을 원하고 있는가?' 하고 자문한다.


♪BGM:  The Screen Tones「STAY ALONE」

https://www.youtube.com/watch?v=HLukUyiSI2w

『고독한 미식가』OST 중 첫 곡의 라이브. 도입부 리코더 연주를 듣자마자, 맛있는 게 확 당긴다. 세련되고 고급스러운 듯한데 뭔가 우스꽝스럽고 유쾌한 게, 꽤나 중독성 있다.


종종, 외국에 가서 자취 생활을 해왔다. 얼마 전엔 지구 반대편에 터를 잡고 지냈다. 오랜만의 자취라서 그런가, 매일 정말 엄청 진지하게, 오늘은 뭘 먹을지, 어떻게 먹을지 머리를 굴렸다. ‘10년 전 외국에서 처음 자취하던 시절에는 뭘 어떻게 해 먹고 지냈더라?’ 라며 기억을 되살리고 과거의 나를 참고하기도 했다. 생각해보니 첫 자취 때는 주로 이런 걸 해 먹었다. 계란 프라이를 얹은 함박스테이크, 토마토소스와 스위트 칠리소스 베이스의 파스타, 재미 삼아 구워봤던 피자, 학생회에서 주최하는 'International Dinner Party' 때마다 인기 많았던 김밥 호박전, 내 생일 기념으로도 만들고 이웃 외국 친구 생일에도 만들어 본 미역국잡채, 시간은 오래 걸렸지만 보람 있게 먹은 사골국, 그 외에도 고기구이, 비빔밥 등이 있었다. 거의 한식 아니면 양식류였던 것 같다.


시간이 지나면서 음식 취향도 약간 바뀌었다. 밀가루 위주의 음식은 이제 별로 끌리지 않아서, 파스타를 하더라도 쌀면을 쓴다. 그 외에 숙주, 두부, 계란, 부추 등을 넣고 소스만 토마토소스를 넣는다. 재료는 싹 다 팟타이 재료이고 소스만 파스타용이다. 어쩌다 보니 나만의 동서양 퓨전 음식을 개발한 셈이 되었다. 살짝 삶은 메밀면을 채소와 함께 팬에 볶고 우스터소스를 뿌려 볶음면을 만들거나, 채소를 면 위에 얹고 고추장과 참기름을 찹찹 둘러서 비빔면을 해먹기도 한다. 연어회, 아보카도, 계란 프라이 등 원하는 재료를 이것저것 밥 위에 올리는 라이스 보울도 자주 만든다. 그리고 위 건강을 위해 자극적인 음식도 피할 겸, 식사 중에 액체류는 덜 먹으려다 보니 국이나 찌개는 이제 잘 안 해 먹는다. 밀가루를 적게 먹는다든지, 국물 류는 거의 안 먹는다든지, 여러 모로 좋은 변화가 생겼다.


밥을 자주 해 먹다 보니 나만의 요리 레퍼토리가 생겼다. 외국에 살면서도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로 어렵지 않게 만들 수 있는, '최애(최고로 좋아하는)' 메뉴 리스트이기도 하다.

평소 즐겨먹는 식재료를 조합해서 나올 수 있는 메뉴를 아예 딱 표로 정리했다. 각 식재료 가격도 같이 적어놓았다. 장 볼 때 비용이 얼마 정도 들 지 예상하기에도 꽤 유용하다.


이와 더불어, 식사 메뉴 계획을 미리 짜는 '미래 식단 일지'를 적어두는 편이다. 이것은 무심코 '우버 이츠' 같은 배달 애플리케이션을 켜거나 자극적인 외식하는 것을 줄이는 좋은 방법이기도 하다. 우선 주방에 지금 있는 재료가 무엇인지 확인한다. 이것들을 조합해서 뭘 만들어 먹을 수 있을지 생각해보며, 나의 요리 레퍼토리도 참고한다. 무슨 요리를 하기 위해서 굳이 재료를 사 오는 것이 아니라, 있는 재료를 활용해서 최대한 간편하면서 영양가 있게 먹는 게 제일이다. 그러면 밥 해 먹는 일이 더 이상 어렵거나 부담스럽게 느껴지지 않는다. 밤에 잠들 때면, '내일은 이런 걸 먹어야지' 하는 기대감과 설렘에 다음날이 기다려진다.



어떤 명상 수업에서는, 점심 메뉴를 정하는 이런 사소한 일이, 평소에 무기력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도 큰 도움이 된다고 한다. '메뉴 고르기'는 어찌 보면, 자신이 이 순간 무엇을 원하는지 알아차리는 연습이기 때문이다. 먹고 싶은 음식을 만들든, 마음에 드는 식당을 알아보고 찾아가서 먹든, 메뉴를 정하는 것은 직접 무언가를 계획하고 결정하고 이뤄내는 과정이다. 아주 작은 것일지라도 성취감을 맛보고 즐기면서 소소한 행복과 감사함을 느낀다. 삶의 여러 영역 중 음식과 식사라는 부분에서도, 내가 좋아하는 것을 발견하며 스스로에 대해 알아가고, 나를 더욱 발전시킬 수 있다는 것이 재미있다. 자취 생활을 할 때만이 아니라, 어디에서 어떻게 지내든지 이렇게 몸을 챙기며 내면을 살피는 식생활을 지속해야겠다. 내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이며 내 몸이 진정으로 필요로 하는 것을 채워주며 건강한 삶을 이어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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