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레바리 편
나는 말하기를 좋아한다. 정확히 말하자면 어떤 주제가 있으면, 그걸 가지고 다른 사람과 대화하기를 즐긴다. 그래서 요즘엔 그런 기회를 주기적으로 가질 수 있는 모임을 하나 만들어볼까 고민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모임을 만들 때는 어떤 것들을 유념해야 하는지 생각해보게 된다.
“진짜로 모임 한번 만들어보자.”
어느 날, 매번 생각만 하던 기준들을 노트에 정리해보았다. 생각만 해오던 걸 실제로 행동에 옮기려고. 다 작성하고 쭉 읽어 보는데, 뭔가 부족하다 싶다. 좋은 사례가 있다면 참고해보면 좋을 텐데…. 그런 생각을 하다가 문득 내가 만났던 어느 브랜드가 떠올랐다. 바로 트레바리(TREVARI)다.
<사람들이 이곳에 모이는 이유>
내 지인 중에는 트레바리를 경험해본 사람이 꽤 많다. 그들의 서비스를 이용했던 친구들은 하나같이 다음 모임에도 참가할 것을 다짐하곤 했다.
‘무엇이 내 친구들을 계속해서 그 모임으로 불러들이는 걸까. 나도 등록을 해봐?’
그렇게 궁금증을 키워가며 모임 등록을 고민하던 중, 마침 그들을 직접 만날 기회가 있었다. 컨셉진 64호의 브랜드 기사를 취재하면서 말이다. 다행히도 그때 그 궁금증을 모두 풀 수 있었는데, 오늘 마케터 일기에서 그 내용을 공유하고자 한다. 사람들이 왜 그토록 트레바리를 찾는 것인지.
1. 만족감을 주는 모임 : 원하는 것을 충족시켜준다.
사회가 점점 개인화되어 가면서 커뮤니티가 무너져가고 있다고들 하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나를 나누기'를 원한다. 컨셉진이 진행하는 라이프 컨셉 워크샵이나 다른 커뮤니티 기반 서비스들이 점점 더 생겨나는 것들이 이를 증명하는 셈이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사람인지 자신의 스토리를 말하고 싶어 한다. 트레바리는 바로 이것을 캐치하고, 생각을 나눌 수 있는 '모임'을 만들었다.
트레바리 모임에서 참여자들은 자신을 공유할 수 있는 시간을 갖게 된다. 개인 프라이버시를 중요시하게 되었지만, 동시에 사람들은 누군가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길 원한다. 그런 면에서 트레바리는 좋은 ‘대나무 숲’이 되어주는 것 같다. 그런 후련함 때문일까. 트레바리는 2019년 6월 기준으로 2만4천여 명의 누적 멤버를 기록했다. 관계의 결핍을 채울 수 있다는 것을 인지한 참여자들은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다.
트레바리가 모임 속에서 주는 또 하나의 만족감은 지적 호기심 충족이다. 트레바리의 슬로건은 ‘세상을 더 지적으로 사람들을 더 친하게’다. 사람 사이의 친한 관계도 중요시하지만 이들은 지식을 더 많이 나누는 것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 물리, 과학, 경제 등 특정 전문 지식이 필요한 모임에는 전문가 클럽장을 두고 있고, 일반 모임에서도 반드시 선정된 특정 책을 읽어야 이야기에 보다 깊게 참여할 수 있도록 되어있다. 참여자들은 전문가 클럽장의 지식을 때론 손쉽게 훔치기도 하고, 책 속의 정보를 토대로 토론을 나누면서 지식을 습득한다. 모임을 그냥 사교 위주로만 하지 않는 것이 어떻게 보면 트레바리의 가장 큰 장점이라고 하겠다.
2. 변화하는 모임 : 시대의 흐름을 읽는다.
트레바리는 모임 방식을 독후감으로 정하고 있다. 책은 그 시대에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를 읽을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 중 하나이다. 이 방식을 통해 트레바리는 끊임없이 새로운 콘텐츠를 모임 참여자들에게 제공할 수 있게 된다.
브랜드 입장에서 가장 어려운 부분은 소비자들을 지루하게 만들지 않는 것이다. 아무리 잘 팔리는 제품이라도 아무런 변화 없이 똑같이 무한 반복 생산된다면, 소비자들은 쉽게 지루해 한다. 특히나 SNS를 통해 트렌드를 미리 알고, 적극적으로 정보를 찾으면서까지 소비를 하는 스마트컨슈머Smart Consumer, 프로슈머Prosumer가 많아지는 현대에는 치명적이다.
트레바리는 이 점을 책이라는 요소를 통해 해결했다. 브랜드(트레바리)는 책을 통해 일정 주기별로 새로운 콘텐츠를 계속해서 제공하고, 모임 참여자는 철학/예술/경제/IT/마케팅/문학 등의 다양한 키워드에서 어떤 것이 '뜨거운 감자'인지를 끊임없이 읽을 수 있다.
정말 멋진 아이디어가 아닌가. 이렇게 된다면 100년이 지나더라도 브랜드를 소비하는 사람들은 지루해하지 않을 것이다.
3. 건강한 모임 : 모임의 지속성을 위해 노력한다.
‘무엇이든 말할 수 있지만, 아무렇게나 말할 수는 없다.’
트레바리는 모임에서 나누는 대화의 양뿐만 아니라 질에 대해서도 고민한다. '대화 수칙'을 만들어 독서 토론 매뉴얼을 엄격하게 적용시키고, 일정 분량 이상의 독후감을 작성해야만 모임에 참가할 수 있는 조건을 두거나, 전문 지식 등이 필요한 심도 있는 모임에는 전문가 클럽장을 두는 식이다.
물론, 처음 모임에 등록하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이 모든 것이 다소 부담스러울 수도 있다. 지킬 것이 꽤 많아 보이는 이런 규율들이 답답해 보이고 말이다. 하지만 이런 룰rule은 모임을 지속하는 데에 좋은 요소가 된다. 조금 더 많은 사람을 모으자고 기준을 가볍게 세워버리면, 그 모임이 흩어지는 것은 순식간이다.
나만 해도 그랬다. 예전에 밴드 활동을 위해 지인들과 함께 모임을 만든 적이 있다. 관계와 지식 공유, 변화 등이 계속해서 이뤄진 모임이었지만 결국 모임이 1년도 못 간 것은 기준의 부재 때문이었다. 그걸 뼈저리게 느낀 나로서는 건강한 모임이 계속되기 위해 이 지속성에 대한 문제를 계속해서 고민해야 한다는 것에 적극 동의한다. 트레바리는 그걸 아주 정확하게 지켜내고 있다.
사람을 모은다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다. 시장 장사꾼에서부터 대기업까지,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은 어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사람들을 모으려고 애써왔다. 특히나 온라인으로 사람을 모을 수 있는 방법이 등장하면서, 브랜드들은 사람을 모으는 것이 곧 기업의 이윤 창출과 직결됨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더 자극적이고 과장된 표현과 내용들로 사람들을 모아왔다.
하지만 이번 편의 트레바리나 지난 편에서 언급했던 다른 브랜드들을 보면서, 나는 사람들이 더 이상 그런 곳에 눈길을 돌리지 않음을 알게 되었다. 좋은 브랜드들을 보면 사람을 모으는 방법은 의외로 단순하다. 모일 수밖에 없는 환경을 제공하는 것이다. 허울만 좋아 보이는 곳이 아니라 실제로 사람들이 브랜드 안으로 들어왔을 때 만족감을 느끼도록 환경을 제공하는 것. 그런 곳에는 반드시 사람이 모여든다.
트레바리는 사람을 모으기 위해 그들이 원하는 것을 제공하고, 흐름에 맞춰 변화하고, 그곳이 건강하게 유지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놓았다. 그 결과 소규모 독서 모임에 지나지 않았던 트레바리는 커뮤니티 기반 서비스 ‘사업’이 될 수 있었다.
마케터 호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