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prologue
로완 교수의 두 번째 강의 시간.
강의실의 공기는 오늘도 무겁고도 진중했다.
로완 교수는 천천히 칠판 앞에 섰고, 분필을 쥔 손끝이 거침없이 움직였다.
칠판 위에 남은 분필 가루가 공기 중으로 퍼지고 있었다.
엘리아스 로완 교수는 검은 정장을 단정히 여민 채 천천히 돌아섰다.
그의 손끝엔 여전히 분필의 하얀 흔적이 남아 있었다.
『왜 인간은 나무에서 내려왔을까?』
학생들의 시선이 일제히 그에게로 쏠렸다.
그는 조용히 분필을 내려놓고 말문을 열었다.
“우리는 나무 위에서 살던 동물이었습니다.
열매를 따 먹고, 나뭇가지 위에 집을 지었죠.
아래에는 위험이 가득했기 때문에 높은 곳은 곧 생존의 영역이었고요.”
그는 칠판 옆에 걸린 동아프리카 위성사진을 가리켰다.
오늘날 에티오피아, 탄자니아, 케냐 부근의
푸르른 숲이 점점 사라지고, 그 자리에 누렇게 메마른 평야가 퍼져 있는 이미지였다.
“그러나 250만 년 전, 지구는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빙하기와 간빙기가 반복되며 평균 기온이 하강했고, 열대 우림은 점차 줄어들었습니다.
대신 풀과 가시나무가 자라는 사바나가 퍼져 나갔죠.”
한 학생이 손을 들었다.
“교수님, 그럼 유인원들이 땅으로 내려온 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나요?”
“좋은 질문입니다.” 로완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사실, 그건 ‘선택’이기도 했고, ‘적응’이기도 했습니다.
숲은 점점 조각조각 나뉘었고, 나무 위에서 살아갈 수 있는 자리는 부족해졌습니다.
경쟁은 치열해졌고, 결국 누군가는 아래로 내려와야 했죠.”
“가장 모험적인 유인원들은 땅으로 내려오기 위해 네 발을 포기했습니다.
두 발로 걷기 위해 나무 위에서의 속도와 안정성, 그리고 생존 확률마저 낮춰야 했죠.
당연히 네 발로 달리는 짐승이 두 발로 달리는 사람보다 더 빠릅니다.
하다 못해 엄청난 덩치를 자랑하는 하마도 여기 계신 분들보다 더 빠르게 달릴 수 있죠.
100m를 12초 안에 뛸 수 있는 분이 아니라면 말이에요.”
강의실 여기저기서 작게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러니 사실 땅으로 내려와 살아야 했던 것은
이성을 가진 판단이라기보다, 생존을 위한 몸부림이자 위험한 도박에 가까웠어요”
학생 중 하나가 손을 들었다.
“왜 그렇게까지 위험한 선택을 했을까요?”
로완 교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부드럽게 웃었다.
“좋은 질문이에요. 아마 그 선택은 의도된 게 아니었을 겁니다.
오히려 어쩔 수 없었던 생존의 결과였죠.”
그는 다시 칠판을 향해 돌아서 조용히 글자를 적기 시작했다.
『기후변화(간빙기) → 숲의 파편화 → 사바나화 → 나무 자원 감소 → 이동 거리 증가 → 생존 전략 변화』
“약 400만 년 전, 기후는 서서히 건조해졌고, 울창했던 열대우림은 조각조각 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숲이 마치 파편처럼 찢어지자, 나무 위를 타고 이동하던 유인원들은 점점 고립되었죠.
그 결과, 나무에서 나무로 건너갈 수 있는 연결고리가 사라졌어요.
그저 다음 나무로 팔을 뻗는 것으로는 부족해졌고,
식량의 공급처가 줄면서 경쟁에서 밀린 유인원들 일부가 땅으로 터전을 옮겨야만 했죠.
그 과정에서 대부분의 유인원들은 외롭게 죽어갔을 거예요."
교수의 차분한 설명이 이어졌다.
“이제는 어쩔 수 없이 땅 위를 걸어가야 했습니다.”
그는 화면을 눌러 다음 슬라이드를 열었다.
넓은 초원. 그리고 그 위에 홀로 선 작은 존재.
굽은 척추, 긴 팔, 그러나 펴진 두 다리.
넓은 사바나, 풀보다 약간 큰 키의 유인원이 똑바로 서서 무언가를 바라보는 장면이었다.
“이 존재는 인간도 아니고, 짐승도 아닙니다.
팔은 여전히 길었고, 손은 나무를 움켜쥘 수 있었지만,
골반은 넓어졌고, 다리뼈는 수직으로 서기 시작했습니다.
이러한 변화를 통해 직립, 즉 똑바로 서서 걸을 수 있었지요.
이 변화는 그들 스스로가 한 ‘선택’이 아닙니다."
로완 교수는 잠시 말을 멈춘 뒤, 다시 이어 말했다.
"그건 생존이 강요한 형태의 변화였어요.
하지만 손을 계속해서 사용함으로써
특정한 행동을 대신할 수 있는 도구를 만들 수 있었어요.”
그는 그림 위 작은 실루엣을 가리켰다.
“우리는 이 최초의 이족보행자이자 발명가에게 오스 Aus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그녀 혹은 그는 어떻게 땅에서 살아갈 수 있었을까요?”
잠시의 정적.
로완 교수의 목소리는 더 낮아졌다.
“ 그들은 더 높은 곳에서 볼 수 있어야 했어요.
풀 너머를 보지 못하면 굶어 죽을 수도 있었죠.”
그는 천천히 책상 위에 놓인 해골을 들어 보였다.
용량 400~500cc라고 적힌 팻말이 붙어있는 작은 두개골.
옆에 나란히 전시된 현대 인간의 1/3 수준밖에 안 되는 크기였다.
작은 두개골의 눈은 앞을 향하고 있었고, 턱은 땅을 향하지 않았다.
“지금부터 들려줄 이야기는, 그 변화의 한가운데 있었던 한 유인원의 이야기입니다.
그의 이름은 오스. 인류의 가장 가까운 조상 중 하나였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