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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땅을 딛고 선 자

4) 경험의 전승

by 호서아빠

Chapter 3: 도구를 사용하는 경험


이틀 뒤, 무리는 건너편 개울을 지나려 했다.

물이 얕지만 빠르게 흘렀고, 어린 유인원 하나가 중심을 잃고 미끄러졌다.

람이 먼저 뛰었지만, 물결은 그를 막았다.

다른 무리들은 괴성을 지르며 어린 유인원을 구하기 위해 발을 동동 굴렸다.


그때 오스가 돌을 들었다.

작고 납작한 돌.

오스는 재빨리 돌을 다른 돌에 힘을 주어 내리쳤다.

그리고 물가에 뻗은 나뭇가지를 비틀어 제법 날카롭게 변한 돌로 잘랐다.


레드 역시 그것이 가능할 것이라는 확신은 없었다.

위급한 상황에 그저 그렇게 해보았다.

그리고 결국 그는 나뭇가지를 꺾어내 아이에게 내밀었다.


“잡아.”

아이는 떨리는 손으로 그 가지를 붙들었고, 무리는 한 줄로 당겨 그를 끌어냈다.

오스는 다시 조용해졌다.


람이 조용히 말했다.

“그 돌로 어떻게 한 거야?”

오스는 대답하지 않았다.

돌을 들여다보다가, 조심스레 허리띠에 끼웠다.

‘이건, 그냥 돌을 손으로 잡고 사용했을 뿐이야. 그런데 손보다 훨씬 편해.”


그는 돌을 들기 시작했다.

서 있을 때, 손은 자유로웠다.

두 발로 서면서 지탱해야 할 무게는 어깨를 타고 골반으로 흘렀고,

손은 더 이상 걷는 데 필요하지 않았다.


그렇게 할 의도는 없었지만,

우연에서 시작된 도구의 발명은 필연적이었다.


오스의 무리는 계속되는 이동으로 매우 지쳐있었다.

대부분의 유인원들이 땅 위를 걷는데 익숙하지 않아 더 그런 듯 보였다.

배가 고팠다.

무리의 어른들은 힘들게 허리를 곧추 세우고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안타깝게도 주변에 먹을 것은 보이지 않았다.


오스는 작은 돌을 주워 무리에게 보여주며 말했다.

“이 걸로 굶주림을 해결할 수 있어.”

“이건 그냥 돌이야. 돌을 먹자는 거야?”

람이 무시하듯 말했다.


오스는 돌 두 개를 세게 맞부딪쳤다.

툭.

뾰족한 파편이 떨어졌다.

오스는 그걸 들어 가시덤불을 조심스레 자르기 시작했다.

딱딱한 껍질 아래, 먹을 수 있는 연한 줄기가 나왔다.


람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저걸로 줄기를 자를 수 있어?”


오스는 말없이 줄기를 건넸다.

무리는 천천히 그것을 씹었다.

씹을수록 즙이 돌았고, 배고픔이 가라앉았다.


그날 저녁, 무리는 돌 근처에 모였다.

돌은 처음으로 ‘손의 연장’이 되었고,

손은 처음으로 ‘힘이 아닌 지혜’를 품었다.


오스의 무리는 계속해서 떠돌아 다녔다.

누군가가 캐낸 뿌리나 풀잎을 씹었을 때,

이상한 맛과 목마름을 느낄 때도 있었다.

그럴 때는 여지없이 다음날 설사를 했다.

오스는 그때마다 그 잎을 기억하고, 다시는 누구도 손을 못되게 했다.


이제 오스를 바라보는 무리의 눈빛이 바뀌었다.

오스를 향한 시선에 경계가 아닌 기대가 깃들기 시작했다.

과거의 경험이 기억으로 전승될 수 있다는 것은

무리가 점점 안전해진다는 믿음으로 이어지기 때문이었다.


며칠 뒤, 또 다른 위기가 찾아왔다.

초식동물 떼를 쫓던 중, 갑자기 들이닥친 하이에나 떼였다.

오스는 도망치지 않았다.

대신, 돌을 들었다.


“우리도 무기가 있어.”

그는 돌을 던져 하이에나를 맞췄고, 예리하게 깬 돌조각을 흔들며 외쳤다.

“우린 약하지 않아.”

그날 이후, 무리는 완전하게 오스를 믿고 따랐다.


오스는 ‘먼저 걷는 자’이자 ‘도구를 창조한 자’였다.


사바나는 여전히 위험했고, 풀숲은 여전히 끝이 없었다.

먹을 것은 점차 줄어들었고,

과일, 씨앗, 뿌리, 곤충 심지어는 작은 동물까지도 먹어야만 했다.

그 과정에서 독성이 있는 것들을 건드려

몰살당한 무리들도 있었다.

하지만 오스의 발자국이 남은 곳엔 식량이 생기고, 도구가 남았고, 삶이 이어졌다.


며칠 후, 사바나의 바람이 거세게 불던 날이었다.

오스는 바람결을 따라 흔들리는 풀 속에서 무언가를 감지했다.

땅의 기운이 다르다는 것을.

그는 풀을 헤치고 손으로 땅을 파기 시작했다.

손끝에 걸리는 단단한 무언가.

그건 수분을 머금은 뿌리 식물이었다.


처음엔 손가락으로, 다음엔 돌로. 그는 흙을 파냈고 뿌리를 조심스럽게 꺼냈다.

“이건 뭐야?”

“물 대신 먹을 수 있어. 입이 마르지 않아.”

다른 유인원들이 하나 둘 모여들었다.


오스는 두 손으로 흙을 털어내며 말했다.

“이제, 우리 손은 나뭇가지가 아니라 땅을 만지는 데 쓰이게 될 거야.”


그날 이후, 무리의 손이 점점 바빠졌다.

풀을 묶고, 돌을 들어 올리고, 바닥을 헤집었다.

그들의 손이 처음으로 ‘생존의 기술’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밤이 깊어갈수록, 무리는 다시 오스를 보기 시작했다.
가끔 경계심의 눈초리도 있었다.
그러나 그들이 눈을 돌린 그 방향에, 오스가 있었다.

그는 그저… 더 높이 서 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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