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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서아빠 Feb 02. 2024

연문위키 - 11편. 투자와 투기사이③

3) 대영제국의 탄생

※ 연문위키는 관지식과 해력 주의 읽기 경험 우기 프로젝트의 준말입니다.


■ 영국 동인도회사의 설립


영국 해군이 스페인의 카디즈항을 공격하는 그림

영국이 스페인의 무적함대를 무찌르고, 새로운 패권 국가로 이름을 알리게 된 것은 1588년입니다. 하지만 영국은 아직까지 근해에서나 힘 좀 쓰는 해적의 나라였죠. 네덜란드와의 전쟁에서 이긴 뒤 17세기 중반에서야 세계를 무대로 나아갈 수 있었어요.


[② 네덜란드의 몰락] 편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주식회사의 개념은 영국에서 먼저 시작되었어요. 그 당시 주식회사 개념의 끝판왕이 바로 동인도회사였습니다. 네덜란드 동인도회사(VOC)보다 영국의 동인도회사(East India Company, EIC)가 먼저 설되었어요. 하지만 초기 제도가 늘 그렇듯 문제가 많았어요. EIC는 항해에 투자하고, 그 항해의 결과물을 투자자가 모두 나눠 갖고 해체되는, 그야말로 벤처 캐피털(Venture Capital, 모험 투자) 형태였어요.

벤처 캐피털(venture capital, VC)

잠재력이 있는 벤처기업에 자금을 대고 경영과 기술 지도 등을 종합적으로 지원하여 높은 자본이득을 추구하는 금융자본을 말합니다. 주로 기술력은 뛰어나지만 경영이나 영업의 노하우 등이 없는 초창기의 벤처기업이 대상이에요.


영국 의회가 선포한 항해법 표지(1651)

17세기 중반에도 영국 함선의 수가 네덜란드 등 경쟁국과 대비하여 많지 않았기 때문에, 아시아 지역의 무역을 중개 무역에 의존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올리버 크롬웰 '항해법(Navigation Acts, 1651~1673)' 발표하고, 함선의 수를 대대적으로 늘리면서 VOC보다 더 근대적인 EIC를 탄생시킬 수 있었어요. 그리고 17세기 후반에는 본격적으로 동인도, 즉 인도와 동아시아에 대한 무역로 개척에 나섰습니다.


중개무역(仲介貿易(무리 사이(중), 끼일(개)), Merhandising trade)

: 중개수수료를 얻는 것이 목적으로 수출국과 수입국 중간에 개입하여 거래를 성사시키고 수수료를 받는 무역입니다.

참고로, 중개무역과 헷갈리는 용어 중 중계무역(中繼(이을(계)), Intermediary Trade)이 있는데, 이 경우 중계인의 역할은 매도인에게서 직접 물품을 수입하고, 또 다른 매수인에게 일정 마진을 붙인 후 물건을 수출하는 형태로 중개무역과 다릅니다.




■ 인도아대륙으로의 진출


하지만 여전히 동남아시아 지역의 패자는 네덜란드였어요. 비록 1차 영란전쟁에서 영국에 졌지만, 동남아 향신료 무역에서의 위치는 공고했기 때문이에요. 따라서 영국은 기존 동인도 지역에서 향신료 경쟁을 하기 어려웠어요. 그래서 영국은 아직 네덜란드가 건드리지 못한 곳을 선점하기로 했죠. 바로 인도입니다.

※ 공고하다(鞏固-(묶을(공), 굳을(고)), solid) : 단단하고 튼튼하다. 비슷한 말로 견고하다가 있습니다.


무굴제국 - 동아시아와 인도아대륙의 대부분을 지배했다.

17세기 인도를 지배하는 세력은 무굴 제국(Mughal Empire)이었습니다. '제국'이라는 타이틀이 붙은 나라이니 만큼 네덜란드나 영국도 감히 넘보기가 어려웠죠. 그래서 영국은 인도의 무역을 주관상관들을 인도 남부에 만들게 됩니다. 무굴 제국의 코 앞에 상관들이 세워지다 보니 강력한 군대를 상륙시켜 인근 지역을 점령하는 전략은 세울 수가 없었죠. 아무래도 장거리 원정 경기니까 전력을 다해 붙으면, 상관은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이 자명했습니다.

※ 제국(帝國(황제(제), Empire)은 다른 민족을 통치ㆍ통제하는 정치체계로 황제가 다스리는 국가입니다.
※ 상관(商館, factory) :  주로 중세 ~ 근세 유럽에서 수출입이 이뤄지던 항구를 의미하며, 일종의 경제자유구역에 해당되던 국제 무역 거점을 일컫는 말입니다.
※ 자명하다(自明-, Self-explanatory) : 설명이나 증명을 하지 않아도 저절로 알 만큼 명백하다. 비슷한 말로는 뻔하다가 있어요.


1526년 건국한 무굴 제국은 약 330년간 중앙아시아와 인도 전역을 지배한 이슬람 국가였어요. 17세기 후반 들어 인도 전역을 대부분 통일하게 되는데, 이때 힌두교를 믿는 남부 인도 지역과 충돌이 있었지요. 게다가 무굴 제국은 중세 유럽의 봉건제와 같은 구조로 구성된 제국이었어요. 그래서 지역 곳곳에서 터져 나오는 반란으로 인해 국력이 점차 쇄약 해졌습니다. 결국 1700년대 초중반에 아프샤르 왕조(Afsharid Dynasty)에게 결정적인 치명타를 맞고 마라타 동맹(Maratha Confederacy)의 보호아래 겨우 명맥만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세포이 항쟁 후 체포되는 무굴제국의 황제 바하두르 샤 2세

인도에 상관을 설치한 영국이 이러한 호기를 놓칠 리가 없었지요. 결국 무굴제국은 1803년 영국 동인도회사에 종속되어 식민지가 되고 맙니다. 이후 세포이 항쟁(1857년)이 일어난 후에 무굴제국은 멸망하고, 인도 제국이 들어서게 됩니다. 물론 인도 제국의 초대 황제는 빅토리아 여왕(Queen Victoria)이었죠.



세포이항쟁(Sepoy Mutiny)

인도인 용병들을 중심으로 일어난 반영(反英) 항쟁입니다. 페르시아어로 용병을 뜻하는 세포이는 영국 동인도회사의 용병 군대였어요. 카스트 계급 간 차별 문제, 종교 문제(기독교 개종), 처우 문제 등이 복합적으로 터져 나온 반란이었어요. 물론 인도 입장에서는 제국주의에 대한 저항입니다.

세포이 항쟁으로 인해 영국 동인도회사는 없어지고, 영국령 인도 제국이 세워지게 되었어요.

※ 항쟁 : 국가권력자들이 부당한 폭력을 휘두를 때 맞서 폭력을 쓰며 싸우는 것으로서, 폭동과는 결이 다릅니다. 폭동은 불특정 대상에게 폭력을 휘두른다면 항쟁은 특정 상대에게만 폭력을 쓰는 것을 의미해요.




■ 새로운 히트 상품 캘리코를 손에 얻다.


캘리코로 만든 18세기의 드레스

대항해시대 초반, 향신료는 최고의 사치품으로 엄청난 마진을 남겨주는 상품이었죠. 네덜란드는 욕심이 과했는지 향신료를 대량으로 유럽에 내다 팔았고, 공급 과잉이 되자 가격은 점차 안정적으로 내려갔어요.


향신료 무역에서 재미를 보지 못한 영국의 눈에 들어온 건 인도의 목면인 캘리코(Calico)였어요. 당대 최고로 손꼽히는 면직물인 캘리코는 염색도 쉽고, 빨래하기도 용이해 유럽의 귀족들에게 인기가 좋을 것이라고 여겼어요. 심지어 가격까지 합리적이었던 캘리코는 18세기 최고의 상품으로 히트를 치게 됩니다.


물론, 거대한 인도 아대륙에는 영국만 진출한 것이 아니었죠. 영국 못지않은 깡패 패권국가인 프랑스도 인도에 진출한 강력한 세력 중 하나였어요. 영국은 인도 플라시 지역에서 벌어진 영국과 프랑스 간의 '플라시 전투(Battle of Plassey), 1757)'에서 결정적인 승리를 거두며, 프랑스를 인도에서 내쫓고 인도를 식민지화할 수 있었죠. 결국, 영국은 캘리코의 생산을 통제하는 데 성공했고, 유럽에 독점 판매할 있었어요.


올리버 크롬웰의 수가 대영제국의 기틀을 마련한 것입니다.

※ 아대륙(亞大陸(버금갈(아)), subcontinent) : 대륙보다는 작지만 반도보다는 큰 섬이나 땅. 대표적으로 그린란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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