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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서아빠 Feb 07. 2024

연문위키 - 12편. 꿈보다 해몽

1) 돼지 - 왜 나를 싫어하나?

※ 연문위키는 관지식과 해력 주의 읽기 경험 우기 프로젝트의 준말입니다.


■ 돼지꿈은 진짜 좋은 꿈일까?


우리는 늘 꿈을 꿉니다. 그리고 때로 꿈에 신선이나 용과 같은 영험한 사람이나 동물이 등장하면, 복권을 사거나 해몽을 통해 행복한 상상을 하기도 하죠. 그런데 예로부터 돼지가 나오는 꿈도 신변에 좋은 일이 생길 수 있음을 뜻한다고 해요. 그래서 보통 돼지나온 꿈은  재물이 들어오거나, 시험에 합격하는 등 부귀영화에 관련된 좋은 꿈 또는 길몽이라고들 하죠.  

※ 신변(身邊(몸(신), 주위(변), ) : 몸의 주위 또는 몸 자체. 주로 주변이나 그동안의 일을 정리할 때 사용합니다.
헷갈리기 쉬운 단어로 신병(身柄)이 있는데, 신병은 보호나 구금의 대상이 되는 본인의 몸을 의미합니다. 주로 범인이나 포로 등에 사용합니다.
그러니 '신변 확보'라는 용어는 잘 못 사용된 거예요. 신병 확보가 맞습니다.


<날아라 슈퍼보드>에 등장하는 저팔계. "왜 그러셔"를 외치며 바주카포를 쏜다.

그런데 왜 우리는 돼지가 영험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을까요?

요즘 세대들은 잘 모르겠지만, 우리에게 '치키치키 차카차카 초코초코 초'로 유명한 '날아라 슈퍼보드'에도 돼지가 등장합니다. 바로 '저팔계'죠. 이 애니메이션의 원작인 '서유기'에서의 저팔계는 사람의 모습을 한 악신이었는데, 삼장법사를 만나 불교에 귀의하여 선한 수호신이 된다는 설정이에요. 다른 민간 설화에서는 의복이 없는 이에게 옷을 전하는 착한 신이라고도 합니다.


우리나라는 고구려 시절부터 돼지를 제물로 사용했다고 해요. 심지어 제물이 될 돼지를 담당하는 '교시(郊豕)'라는 관리도 있었지요. 고구려의 2대 수도인 '국내성'도 돼지와 연관이 깊습니다. 우리나라 삼국시대의 역사를 기록한 <삼국사기>를 보면 유리왕(BC 19년~AD 18년) 시절, 제사에 쓸 돼지가 도망을 간 일이 있었어요. 이를 지키던 관리가 돼지를 뒤쫓아 가다가 도착한 곳이 바로 국내성(현재 중국 지안성이라고 추정)이라는 거죠. 이곳이 땅이 넓고 농사짓기 좋다고 판단한 유리왕이 국내성으로 천도를 했다고 해요.


또한, 고구려 10대 산상왕(197년~227년)은 또 탈출을 시도한 돼지를 쫒던 도중 한 처녀의 도움으로 돼지를 붙잡았는데, 그게 인연이 되어 아들을 얻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분이 바로 동천왕(227년~248년)이에요.


'상해일(上亥日)' 풍습도 돼지가 재물을 가져온다는 믿음 때문이었어요. 상해일이란 12 지신 중 돼지를 의미하는 '해'의 날로 첫 돼지날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장사꾼들은 음력 1월 상해일에 장사를 개시하면 좋다고 믿었어요. 심지어 궁중에서도 상해일에 풍년을 기원하는 의미로 임금이 곡식을 주머니에 넣어 신하들에게 나누어 준다고 해요.




■ 배부른 돼지보다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낫다


하지만 서양에서는 대체로 돼지를 안 좋게 생각합니다. 때로는 탐욕스럽고, 더럽고, 미련한 동물로 묘사되기도 하죠. 기독교와 이슬람교 모두 돼지를 혐오합니다. 성경에서는 여러 곳에 걸쳐 '혐오스럽고, 가증한', '타락하고 방종한', '하나님을 거부하는' 등으로 표현되어 있어요. 쿠란에는 한술 더 떠 아예 먹지 말아야 할 금기음식으로 돼지를 지목했어요. 사실 페르시아 제국 시절부터 돼지를 혐오하는 전통이 있었죠.


게다가 서양에서는 돼지를 게으른 동물로인식했어요. 영국의 철학자 존 스튜어트 밀(John Stuart Mill) 1863년 자신의 저서 [공리주의론(Utilirarianism)]에서 "만족해하는 돼지보다 불만을 느끼는 소크라테스가 낫다"라고 표현할 정도였죠. 그러고 보니 '돼지 목에 진주 목걸이'라는 말도 있네요. 가치를 모르는 사람에게는 보물도 아무 소용없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입니다.  '똥 묻은 돼지, 겨 묻은 돼지 나무란다.'는 속담도 있습니다.


공리주의론(Utilirarianism)
공리주의란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라는 도덕적 개념을 말합니다. 제러미 벤담(Jeremy Bentham)은 '모든 쾌락은 질적으로 동일하며, 쾌락의 양이 중요하다'라고  1789년에 <도덕과 입법의 원리 서설>에서 주장했어요. 이를 양적 공리주의라고 합니다.

하지만 존 스튜어트 밀은 '쾌락의 양뿐만 아니라 쾌락의 질적인 차이도 중요하다'라고 생각했어요. 이때 나온 말이 바로 “It is better to be a human being dissatisfied than a pig satisfied; better to be Socrates dissatisfied than a fool satisfied." (만족해하는 돼지보다 불만이 있는 인간이 되는 것이 더 낫다. 만족해하는 바보보다 불만을 느끼는 소크라테스가 되는 것이 더 낫다.)입니다. 밀의 공리주의를 가장 잘 대변해 주는 문장이라고 할 수 있어요.

이 시기 대부분의 철학자가 그랬듯이 제러미 벤담이나 존 스튜어트 밀도 철학자이자 수학자였어요. 그래서 공리주의가 맞다는 것을 수학적으로 증명했어요. 이때 미분과 적분 개념도 사용됩니다. ㅡㅡ




■ 돼지의 어원


우리는 예로부터 반려동물이나 가축들의 새끼들에게 별도의 이름을 부르며, 관심과 애정을 표현했어요. 강아지, 송아지, 망아지처럼요. 여기서 '아지'는 아기를 의미하는 옛말입니다. 개는 과거에 '가히, 가이'라고 불렀어요.  그래서 가(이)+ 의 + 아지 = 강아지가 되었고요. 송아지와 망아지도 마찬가지예요.  소의 아지 = 송아지, 말의 아지 = 망아지가 된 것이죠.

사실 싸가지가 없다고 할 때 싸가지도 싹+ 아지 = 싸가지가 된 거예요. 그러니 싸가지가 없다는 말은 작은 새싹(싸가지)으로도 못 자라날 정도로 처음부터 잘못되었다는 의미가 됩니다.


패리스힐튼의 애완 돼지. 돼지는 원래 청결한 동물이에요.

그런데 우리 민족이 사랑하는 돼지는 새끼를 지칭하는 용어가 왜 없을까요? 그 이유는 원래 돼지가 새끼 돼지를 의미하는 말이었기 때문이에요. 돼지는 원래 도(돋, 토, 톧, 톹 등)라고 불렀어요. 그리고 도의 새끼를 도의 아지 = 돼지라고 했지요. 현재는 어른과 아이 구분없이 돼지라고 부르게 된 것 입니다.

고슴도치의 어원도 감이 오시나요? 고슴(가시) + 돝, 즉 가시가 있는 돼지라는 말이에요.

그럼 돌고래는요? 돌고래는 원래 돋고래였다가 지금은 돌고래라고 불리는 거에요.  돌고래의 토실토실 모습이 돼지와 비슷한 몸매라서 그런 이름이 붙여졌대요. 좀 억지아니냐구요? 돌고래는 한자어로 '강돈(江豚)','물돼지', '해돈(海豚)', '해저(海猪)' 라고 합니다. 다 돼지(돈)이나 멧돼지(저)가 들어가죠?


윷놀이는 가축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놀이입니다.

또한, 윷놀이의 도개걸윷모에서 '도'도 돼지를 의미합니다. 윷놀이는 약 2000년 전 부여에서 시작된 그야말로 근본있는 놀이에요. 부여에서 그 당시 집에서 기를 수 있던 5가지 가축의 축산을 장려하기 위해 시작되었다고 해요.

부여의 중심지는 오늘날의 만주 길림성 지역인데 여기는 평균 기온이 낮아 농사를 통해 충분한 식량을 얻기가 쉽지 않았거든요. 그래서 목축을 매우 중요하게 여겼어요.

윷놀이에 등장하는 가축의 순서는 걸을 때 보폭의 크기로 정했어요. 그래서 도(돼지) - 개(개) - 걸(양) - 윷(소) - 모(말) 순서가 된 거에요.

윷놀이
그런데 왜 마지막 순서인 '모'나 첫번째인 '도'가 아닌 4번째에 위치한 '윷'을 따서 놀이 이름을 지었을까요? 그것은 우리 민족이 예로 부터 소를 매우 중요한 가축이자, 의(義)로운 동물이라고 여겼기 때문이에요.



돼지와 관련된 용어


방목해서 키우는 이베리크 흑돼지. 야생돼지의 일종이다.

돼지는 잡식성입니다만, 가장 즐겨먹는 음식이 바로 도토리에요. 도토리는 다람쥐가 먹는 거 아니냐구요? 다람쥐에게 도토리는 먹을 것이 부족한 가을에 먹는 비상식량일 뿐입니다. 요즘 꽤 유행하고 있는 '이베리코 흑돼지(Iberian pig)'도 스페인 이베리아 반도(Iberian Peninsula)의 '데헤사(dehesa)'라고 불리는 목초지에서 야생도토리를 먹여 키우는 것으로 유명하죠. 래서 비싸기도 하구요. 여튼 도토리는 '도톧밤'이라는 단어가 변한 것인데, 그 뜻이 돼지가 먹는 밥이란 의미에요. 도토리는 한자로 저의율(猪矣栗(돼지(저), 속할(의), 밤(율))이라고 합니다.

※ 반도(半島(절반(반)), peninsula) : 땅의 한 쪽이 그보다 큰 땅(대륙)에 연결되고, 그 밖의 3면은 바다로 튀어나온 육지를 말합니다. 한반도와 이베리아 반도, 이탈리아 반도, 발칸 반도 등 반도는 매우 흔하게 볼 수 있어요.


'저돌(猪突((멧돼지(저), 부딪힐(돌))적'이라는 말도 돼지와 관련이 있습니다. 멧돼지가 무작정 갖다 박는 모습으로, 앞뒤 생각없이 덤빈다는 의미이지요. 돼지를 표기하는 한자로는 돈(豚)과 저(猪)가 있어요. 보통 고기로 먹는 집돼지는 '돈', '멧돼지'는 '저'로 표기합니다.

여러분들이 좋아하시는 돈가스는 돼지고기를 얇게 썰어 빵가루에 묻힌 후 기름에 튀긴 음식을 말합니다. 그런데 돈가스는 일본에서 만든 엉터리 조어에요. 원래 표현은 '포크 커틀렛(pork cutlet)'인데, 포크의 한자인 돈과 커틀렛의 일본식 번역어 '카츠레츠(カツレツ, katsuretsu)' 중 앞 글자인 카츠를 따 만들었어요. 그래서 비후까스는 비프(beef) + 커틀렛입니다.


이제 제육볶음도 얼추 감이 오시죠? 제육은 저육(猪肉, 돼지 고기)이 변한 말입니다. 돈육볶음이 더 맞는 말 같지만, 어찌된 일인지 제육이라고 합니다.

'저육'을 '제육'으로 발음하는 것을 'ㅣ모음 역행동화' 현상이라고 합니다. ㅣ모음 역행동화는 [ㅏ, ㅓ, ㅗ, ㅜ, ㅡ ]가 뒤 음절의 ㅣ 모음으로 인해 각각 ㅐ, ㅔ, ㅚ, ㅟ, ㅣ로 바뀌는 현상입니다. 말그대로 모음의 발음이 역행하여(앞의 발음이 뒤의 발음에 영향을 받아 거꾸로) 닮아간다는 뜻이에요.

예를 들어, 아기 → 애기, 먹이다 → 멕이다, 고기 → 괴기, 죽이다 → 쥑이다, 끓이다 → 낋이다, 창피(猖披)하다 → 챙피하다, 막히다 → 맥히다 등으로 말하는 거에요. 그리고 당연하게도 대부분의 역행동화 현상은 표준어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어요. 약간 사투리같죠?

독일어를 보면  Ä/ä, Ö/ö, Ü/ü와 같이 글자위에 점 두개가 있는 움라우트(Umlaut)가 있는데, 움라우트도 이모음 역행동화입니다.  ä는 [ɛ], ö는 [œ], ü는 [ʏ]로 발음합니다.

l 모음 역행동화 현행 표준어 규정에서는 'ㅣ모음 역행동화' 중 극히 일부인 '-내기'(서울내기, 시골내기 등)나 '냄비', '내동댕이치다', 등 일부만  예외로 표준어로 인정합니다. '-장이 / -쟁이'도 마찬가지인데 기술자나 전문가에게는 '-장이'를 쓰고 그 외에는 '-쟁이'도 표준어로 인정해요'. 예를들어 대장장이, 멋쟁이라고 쓰는거죠.
긴 세월을 거치면서 역행동화만 살아남은 사례도 있어요. '꼬챙이', '내기', '내리다', '달팽이', '새끼', '생기다', '쟁기',는 'ㅏ'모음이 'ㅐ'로 바뀐 케이스이고, '제비' 는 'ㅓ' 모음이 'ㅔ'로 변경된 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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