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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서아빠 Feb 13. 2024

연문위키 - 12편. 꿈보다 해몽

2) 세상을 바꾼 헛소문

때로는 허황된 소문을 찾아 나선 행동이 세상을 바꾸기도 합니다.


십자군 전쟁이 한창이던, 그리고 칭기즈칸의 몽골 제국이 정복 전쟁을 시작하게 되는 1200년 즈음, 유럽인들은 동방에서 이슬람 국가들을 격파하는 아주 독실한 기독교 국가에 대한 소문을 접했어요. 바로 사제 요한(Prester John)에 대한 소문이었어요. 17세기까지 이어진 뜬금없는 소문의 실체를 찾는 노력이 유럽과 전 세계의 역사를 바꾸는 계기가 됩니다.

사제왕 요한에게 72명의 왕이 충성했고,
요한은 독실한 기독교인으로 왕국의 신도들을 보호해 생계를 책임지며, 3개의 인도를 지배했다.
해가 드는 성으로 이어지는 사막과 바벨탑 옆에 있는 바빌론의 계곡까지 영토라 했으며,
왕의 영토에는 모든 짐승이 살고 땅 위에는 꿀이 흐르고 젖이 흘러넘친다고 했다.



토오릴 칸

사실 이 소문 실체가 있긴 했어요. 몽골 초원에는 기독교를 믿는 케레이트(Kereyid) 부족이 있었거든요. 이들이 믿는 기독교는 5세기 경 교황청으로부터 탄압받고, 떨어져 나온 네스토리우스(Nestorianism)의 신학론을 기반으로 하는 교리를 가지고 있었어요. 다시말해 이단이죠. 그래서 유럽을 떠나 동방 지역에 살아남았습니다. 그 후 케레이트의 지배자 '토오릴 칸(To'oril Kahn)'의 이름이 방의 기독교 국가의 왕으로 유럽까지 알려질 정도였어요. 흔히 동방견문록이라고 알려진  마르코폴로(Marco Polo) 세계의 서술(Divisament dou monde) 중국 북부지역의 타타르족(Tartars)의 지도자가 사제왕 요한에게 가축의 10%를 진상했다는 이야기가 적혀 있어 소문의 신빙성을 높여주었어요.


마르코 폴로(Marco Polo)의  세계의 서술(Divisament dou monde)

동방견문록이라고 불리는 '세게의 서술'은 마르코 폴로가 직접 작성한 글이 아니라 루스티켈로 다 피사라는 작가가 들은 이야기를 대필한 기록입니다. 마르코 폴로와 루스티켈로는 함께 제노바의 감옥에 갇혀 있었는데, 마르코의 구술과 발언을 기초로 이 책을 썼다고 합니다. 경험담을 말로 푼 것이기 때문에, 상당한 과장과 다른 사람에게 전해 들은 이야기가 섞여 있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중국 북부지역의 타타르족의 지도자가 사제왕 요한에게 가축의 10분의 1을 진상했다는 이야기가 적혀 있어요. 그리고 일본에 대해 지팡구라고 언급해 오늘날 재팬의 어원이 되기도 했어요.



오스만 제국의 영토

<연문위키 - 6편. 칭기즈 칸>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몽골 제국은 1258년 바그다드를 함락하고, 이슬람 국가인 아바스 칼리파국(Abbasid Caliphate)을 멸망시켰는데 이후 이슬람 민족을 다시 추슬러 1299년 세워진 나라가 바로 오스만 제국(Ottoman Empire)입니다. 이후 이슬람 세계의 주도권은 중동에서 몽골 침략을 물리친 오스만 제국이 쥐게 됩니다. 오스만 제국은 1453년 동로마 제국의 콘스탄티노플을 함락시키며, 길었던 중세의 막을 내리고, 르네상스 시대를 열게될 결정적 단초를 제공했어요. 이후 오스만 제국은 600년 넘게 존속해 오다 세계 1차 대전의 패배로 왕정이 폐지되고, 오늘날의 튀르키예(Türkiye)가 됩니다.


오스만 제국은 동로마 제국의 영토를 차지하고, 동방의 후추 무역로를 독점하면서, 부와 권세가 더욱 높아졌어요. 당시 유럽은 인도를 비롯한 동방과의  직거래를 못했기 때문에, 청나게 비싼 후추를 구입할 수 밖에 없었어요. 그래서 동방 무역에 대한 유럽인들의 간절함이 극에 달했어요. 특히, 이 당시 유럽의 많은 국가들과 교황청은 십자군 전쟁의 실패, 콘스탄티노플 함락 등으로 이슬람 세력에 군사적, 정치적 위협을 받는 처지였기 때문에 이슬람 세력을 물리치는 것이 너무나 절실했죠.


1502년 세계지도 (작자 미상)

그래서 이슬람 세력 너머에 존재한다고 하는 기독교 왕국에 대한 전설은 유럽인들에게 희망을 주는 유일한 돌파 구였을 거예요. 그런 이유에서 당시 교황이었던 니콜라오 5세(Nicolaus PP. V)가 포르투갈이 발견한 새로운 땅과 바다는 모두 포르투갈 것으로 인정하고, 사제왕 요한의 왕국을 찾아 그들과 함께 이슬람 세력을 정복하기를 요청한 것입니다. [연문위키 - 5편. 대항해시대 ① 참고]


이슬람 세력을 이베리아 반도에서 몰아낸 톨로사 전투 (Battle of Las Navas de Tolosa ) 그림

그리고 1492년 이베리아 반도에서 이슬람 세력을 축출하기 위해 일어난 국토회복운동(레콩키스타, reconquest)을 마침내 완료한 스페인은  대항해 무역에 대한 성공 의식과  이슬람 세력에 대한 증오심이 더욱 강해지게 됩니다. 그리고 이 시기는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한 희망의 시대기도 하지요.


 이 즈음 동방의 기독교 국가에 대한 소문은 아프리카로 옮겨갔어요. 이 소문의 핵심은 이슬람 세계의 건너편에 기독교 왕국이 있다는 것이어서, 위치는 중요하지 않았거든요. 무려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멘더빌의 여행기(The Travels of Sir John Manderville)』에도 이 왕국이 나오니깐, 무조건 있다고 믿었을 거예요. 그리고 <연문위키 - 4편. 커피>에서 언급한 것처럼 아프리카 대륙에 기독교 국가인 솔로몬 왕가(Solomonic dynasty)의 에티오피아(Ethiopia)가 있었으니 영 거짓말은 아니었던 거죠.

맨더빌 여행기
15세기 인쇄술 발달 이후 성서 다음으로 가장 많이 인쇄된 책으로 최초의 국제적 베스트셀러입니다. 1322년부터 1356년까지 34년 동안의 여행기록으로 맨더빌이라는 신비의 기사가 썼다고 전해집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콜럼버스가 무척 좋아한 책이라고 해요.


엔리케 왕좌의 기념비

항해왕자 엔리케(Henry the Navigator)가 아프리카 탐험대를 조직하고 후원한 이유 중의 하나 아프리카에 존재한다던 사제왕 요한의 기독교 왕국을 찾는 데 있었어요. 바스코 다 가마(Vasco da Gama)가 엔리케 왕자의 편지를 들고 사제왕 요한이 있을 것으로 생각한 기독교 왕국을 찾아 나섰지만 끝내 찾지 못하고, 우연히 희망봉을 돌아서 인도로 가는 항로를 개척함으로써 대항해 시대를 열게 됩니다. 정말 뜬소문 쫒다 금광을 발견한 케이스라고 할 수 있어요.

항해왕자 엔리케(Henry the Navigator, 1934~1460)

포르투갈 아비스가의 왕자로 서아프리카의 연안을 탐사하고, 대서양의 탐험과 개척하는 선단을 지원하였습니다. 엔리케 왕자 덕분에 포르투갈이 가장 먼저 대항해시대를 열 수 있었어요.


신대륙 발견으로 유명한 콜럼버스도 '동방견문록'과 '맨더빌 이야기'의 마니아였어요. 그래서 누구보다 사제왕 요한의 소문을 진실로 받아들였죠. 하지만 인도에서도, 동방에서도 심지어 신대륙에서도 사제왕 요한의 기독교 국가는 없었어요.


하지만 사제왕 요한의 소문 덕분에 세계의 역사는 바뀌었어요. 그런 의미에서 사제왕 요한이야말로 꿈보다 해몽이 좋았던 것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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