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만의 크리스마스

어린이 세트- 단편 소설

by 전석표

겨울바람을 피하기 위해 친구를 따라 눈에 보이는 데로 들어온 곳이 햄버거 가게일 줄은.

들어와 놓고도 어리바리하게 입구 문 앞에서 발걸음이 굳어 있는 나와는 다르게, 친구는 한시라도 먼저 잽싸게 줄을 서고는 거기서 나에게로 몸을 돌려 물었다.


“야, 뭐 먹을 거야!”

“여기서 먹고 가게?”


떨떠름한 나의 물음에, 친구는 두 손을 코트 주머니에 넣은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어차피 저녁 먹을 김에 여기서 먹자. 간단하게 먹기 좋잖아. 햄버거? 아, 아무튼! 뭐 먹을 거야, 얼른 말해. 같이 시키게.”

“있어봐, 음, 글쎄 나는…….”


친구의 재촉과는 다르게 선뜻 메뉴를 고르기가 어려웠다. 햄버거를 그리 먹고 싶지 않은 것도 이유였다. 하지만 안으로 들어온 만큼 별수 없이 먹고 갈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에 메뉴를 고르기로 했다.


“어…….”


그때, 우물쭈물하던 사람이 늘어트려 놓은 시야 앞으로 어린이 장난감 세트 메뉴가 들어왔다.

왜인지 그 순간에 나는 그것과 눈을 마주치기라도 한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 기분을 부정하려 하지 않으며, 그대로 마치 이끌리기라도 한 듯이 친구에게 말했다.


“나 어린이 세트,”

“뭐? 어린이 메뉴? 장난치지 말고!”


친구는 흠칫 당황해서 내게 재차 물었지만, 내가 내놓을 대답은 똑같았다.


“어린이 세트 먹을 거야. 그거 먹고 싶어서 그래. 아, 내가 자리 맡아놓을 테니까 메뉴랑 장난감까지 같이 받아와라.”

“야 이!”


어이없어하는 친구의 반응에도 나는 아랑곳하지 않으며, 손가락으로 한편의 진열대를 가리키고서 얘기했다.

“고를 수 있으면, 나 저거, 로봇 장난감.”


친구의 부름을 뒤로 하고 나는 비어있는 자리로 먼저 향했다.

10분이 좀 안 되게 기다리고 나니 앉은 테이블 위로는 친구의 빅맥 세트와 나의 어린이 버거 세트가 올라왔다. 그리고 햄버거 받침대 옆으론, 친구가 받아온 조그마한 로봇 장난감이 같이 있었다.

자리에 앉자마자 친구는 발개진 얼굴을 내게 보였다. 화가 난 게 아니라, 부끄러움에 기반한 표정이었다.


“창피하게 진짜. 주문하는데 뒤에 있는 어린 애가 저 오빠도 어린이 세트 좋아하나 봐, 이런 말 하잖아.”

“재밌네.”

“웃음이 나와?”


친구의 말이 재밌어서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몇 입 깨물면 자취를 감출 정도로 작은 햄버거의 포장지를 까고는, 먼저 한입 베어 물었다.


“그냥, 무슨 맛일지 나도 궁금해져서.”

“뭐? 무슨…….”


친구는 무슨 말이냐는 듯 아주 잠깐 미간을 찌푸리다가도 이내 그렇게까지 궁금하진 않은지 바로 햄버거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내가 시킨 어린이 버거는 정확히 세 입 만에 자취를 감추었고, 나는 친구가 다 먹을 때까지 콜라에 감자튀김을 천천히 먹었다.

친구까지 식사를 마치고 나서 우린 매장을 빠져나왔다. 문을 열자마자 귀를 새빨갛게 만드는 강추위에, 친구와 나는 동시에 옷깃을 여몄다.


“형이 정류장까지 바래다줄까?”

“아, 왜 이래 남자끼리?”

“꺼져 그러면. 흔한 기회 아닌데.”


걸어서 갈 만큼 시내에서 집이 가까웠던 친구는 골목을 빠져나온 뒤로는 나와 가는 길이 반대편이었기에 그 자리에서 인사를 나누었다.

넓고 넓은 겨울이 내려앉은 길거리를 혼자 걸었다. 그러면서 고개를 들어, 새파라면서도 차가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 순간, 내 안에서는 먹먹해지는 마음과 함께 많은 감정이 솟으려 했다. 어린 시절, 나를 가장 사랑해 주었던 사람의 아팠던 날들이 떠올랐다.


내가 막 아홉 살이 되었을 무렵이다.

우리 집은 오래되고 좁은 다세대 빌라였다. 거기에서 나는 엄마와 단둘이 살았다.

그 시기에 엄마는 다단계 사기를 당하셔서, 우리 집엔 수억에 가까운 빚이 있었다. 그 문제로 인해 엄마는 쉬는 날이 없을 정도로 매일을 공장에 나가셔야 했다.

그래서, 나의 아침에는 엄마의 얼굴이 없었다. 내가 학교에 가기 위해 일어나는 시간엔, 엄마는 이미 출근하고 없어진 뒤였다. 대신 낡은 원목 탁자 위로는 엄마가 준비해 놓고 간 밥과 콩나물무침, 김치와 어묵조림이 있었다.


“잘 먹겠습니다.”


나는 엄마가 준비해 준 아침밥을 다 먹고 나서야 씻었고, 옷장의 역할을 대신하는 간이로 마련된 옷걸이 대에서 아무 옷을 꺼내입고 가방을 맨 뒤 학교에 갔다.

아홉 살이라는 나이는 누구나 부모님에게 어리광을 부리고 헤헤 웃으며 장난기가 넘칠 때이지만, 그 시절부터 이미 집안 사정을 알아차린 나는 나이와 어울리지 않게 일찍 철이 들었다.

아이들에게 있어서 생일은 하루 전뿐만이 아니라 일주일 전부터도 가슴이 떨리고 설레는 기다림을 안겨주지만, 나만큼은 그런 기분을 누릴 수 없었다.

우리 집 사정에서 평범한 가정처럼 생일을 보낸다는 건 그림의 떡과도 같았다. 그나마 챙겼던 생일 케이크마저도 초코파이에다 초를 꽂은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마저도 감사했다.


“생일 축하해 우리 아들, 엄마가 이것밖에 못 해줘서 미안해.”

“아니야 엄마, 정말 고마워요. 엄마랑 먹으니까 더 맛있어!”


내 생일날만큼은, 고단하던 엄마의 얼굴에 어느 계절을 기다렸던 벚나무처럼 따스한 미소가 피어나 있었으니까.

처음으로 생일날 케이크다운 케이크를 먹어본 건, 열 살 때였다.


“우리 반에 이번 달 생일인 친구가… 어, 재욱이 한 명 있네? 다 같이 재욱이 생일 축하해주도록 합시다!”


당시 반 선생님께서는 달마다 생일인 친구들에게 미니 생일 케이크를 챙겨주셨다. 마침 내가 생일인 달에, 나 말고는 생일을 맞이하는 친구가 없어 나 혼자만 케이크를 받았다.

반 아이들은 케이크를 받으면 곧장 생일인 친구의 자리로 몰려와서 다 같이 나눠 먹었지만, 나는 묵묵히 케이크를 받은 그대로 집에 들고 왔다.

엄마가 퇴근할 때까지 떨리는 마음으로 기다렸던 나는 현관문과 가까워지는 엄마의 걸음 소리에 맞춰 케이크와 함께 뛰어갔다. 케이크를 보면 엄마가 기뻐할 줄 알았다.

하지만 그날 엄마는, 현관 앞에서 나를 끌어안고서 미안하다며 꺽꺽대며 울었다.


“어, 엄마…….”

“미안해, 아들. 못난 엄마 만나서, 너까지 고생시켜서 미안해. 아들…….”


처음으로 제대로 된 케이크를 엄마와 함께 먹는다는 생각에 기뻐서 한달음에 뛰어온 건데, 그런 내 모습이 엄마의 가슴을 무너져 내리게 한 것이다. 그 이후로, 나는 일부러 작은 것조차도 바라지 않게 되었다. 우리 집에서 행복이란, 닿을 수 없고 보이지도 않는 아득히 먼 곳에 있는 존재 같았다.

그러는 사이에 또 한 번, 찬 바람이 코끝에 닿는 계절이 찾아왔다.


“흰 눈 사이로 썰매를 타고, 달리는 기분…….”


겨울을 물으면 많은 사람의 입에선 크리스마스 얘기가 나왔다. 그 시절, 반 아이들은 크리스마스 날 받게 될 장난감과 게임기를 벌써부터 받은 것처럼 서로 앞다투면서 자랑했다.

그럴 때마다 그 자라에서 어정쩡하게 껴 있던 나는 일부러 관심 없는 척 딴청을 피웠는데, 겉모습과 다르게 속으로는 정말 부러웠다. 하지만 우리 집 사정을 알고 있었기에 장난감을 사달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혹여나 내가 머릿속으로 그런 생각을 하는 동안에도, 엄마의 작업복은 계절을 타지 않고 땀에 젖어있을 테니까.

크리스마스 전날에는 머리 위까지 이불을 꽁꽁 덮은 채 억지로 잠들려고 애를 썼다. 자고 일어나면 크리스마스가 아니라 26일이기를 바라면서, 질끈 감은 눈꺼풀에 더욱이 힘을 주었다.

하지만 그런 노력이 무색하게, 소년은 어김없이 크리스마스를 맞이해야 했다. 잠에서 깬 걸 부정하며 어떻게든 다시금 눈을 붙이려 해봐도 배에서 울리는 꼬르륵 소리에 허탈하게 이불을 들추는 어린아이가 있었다.

하루 종일 좁은 집 안에서 텔레비전을 틀어놓고 실컷 만화만 보기. 그게 내 크리스마스의 전부였다. 좋아하는 만화가 연속으로 나오면 헤헤 웃으며 시간이 가는 줄 모르고 보았다. 그 시간만큼은 내게 유일하게 허락된 행복 같았다.

그러나, 채널을 돌려 나오는 뉴스에서는 내가 가진 그나마의 행복을 처참하게 비웃기라도 하듯이 저마다 가족들과 놀러 간 풍경이나 선물을 받고 기뻐하는 아이들의 모습이 브라운관으로 나오면서, 잠시나마 현실을 잊으려 했던 나를 다시 잔인한 현재로 데려왔다. 그 아이들의 세상은, 넓었다. 그에 반해 내 세상은 좁은 방 한 칸, 작은 텔레비전 하나가 전부였다. 텔레비전 화면 너머로 세상을 자기 것으로 만든 아이들의 얼굴을 멀찍이 바라보기만 했다. 결국 나는 괜히 약이 올라서, 그 애들에게 시샘이 나서 신경질적으로 리모컨을 들어 텔레비전을 꺼버렸다.

그러다 밤 열 시가 돼서는, 늘 그랬듯이 미리 이부자리를 펴놓고 누웠다.

평소였다면 잠들지 않고 엄마가 올 때까지 기다렸지만, 그날은 단 일분일초라도 빨리 크리스마스를 떠나보내고 싶은 마음이 앞섰다.


“잠이 안 와…….”


그런 마음을 알고는 신이 내게 못된 장난이라도 친 걸까? 미간에 주름이 깊게 파일 정도로 세게 눈을 감아봤지만 정신은 오히려 말똥말똥해서 도통 잠에 들기 어려웠다. 일자로 눕다가, 엎드려서 누워도 보고 이것마저도 잠이 안 오면 새우처럼 몸을 오므리면서 뒤척였다.

한 시간 가까이 그렇게라도 노력한 덕분인지 서서히 정신이 몽롱해지기 시작했다. 점차 눈꺼풀에는 무게가 느껴졌고, 몸의 움직임도 없어지면서 나의 외롭고 초라한 크리스마스를 누구보다 일찍 떠나보내는 줄로만 알았는데…….


“재욱아, 자?”

“…아.”

“우리 아들, 잠깐 일어나볼래?”


얼마나 잠에 든 건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새 천근만근 해진 눈꺼풀과 같이 졸음에 휩싸인 몸을 일으키니 시선 앞에는 마침 방금 막 온 듯한 엄마가 내 앞에 앉아있었다.


“으으… 엄마 왔어.”

“응, 우리 아들 오늘은 일찍 잠 들었네?”

“기다렸어야 했는데, 미안…….”


잠긴 목소리로 엄마에게 말했다. 눈을 비비며 앞을 바라보니 그제야 엄마의 얼굴이 선명하게 보였다.

잠에서 천천히 깨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다가도 몇 번은 엄마를 기다리지 못해서 먼저 잠에 들 때가 있었는데, 그럼에도 엄마는 나를 깨운 적이 없었다. 그랬는데 오늘은, 왜인지 나를 굳이 깨운 것이었다. 혼자만의 생각을 하면서 볼을 긁적이는 나를 두고 엄마는 뒤로 손을 숨긴 자세로 물었다.


“아들, 오늘이 무슨 날이더라?”

“오늘? 오늘… 아, 크리스마스였지.”


무심하게 말하는 나와는 다르게 엄마는 오히려 기대감이 서린 얼굴로 연이어 물었다.


“맞아, 크리스마스지? 크리스마스엔 그럼, 뭘 받아야 할까?”

“…어?”


설마 하는 기분에, 동그랗게 떠진 눈으로 엄마를 바라보았다. ‘짜잔!’ 그 순간 엄마는 신이 난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엄마가 우리 재욱이 주려고 크리스마스 선물 준비했어!”


엄마는 뒤로 숨겨놓았던 그것을 활짝 웃는 얼굴과 함께 내게로 내밀었다. 늘어트린 시선 앞으로 보인 건, 은박 비닐로 포장된 선물 상자였다. 상황 파악이 안 된 나는 버퍼링이라도 걸린 것처럼 잠깐 벙쪄 있었다. 그러나 곧, 나는 설레어서 커져 버린 목소리로 눈을 반짝이며 흥분하게 되었다.


“어… 어! 우와! 우와! 엄마 이거 진짜야? 진짜 크리스마스 선물이야?”


눈앞에 상자는 어떻게 봐도 분명한 크리스마스 선물이었다.

은박 비닐과 노란 리본으로 단장한 상자의 정체에 확신을 가진 아이의 심장박동은 그 순간, 세상의 모든 소리를 합친 만큼 커져 있었다.

너무나도 행복하고 기쁜 마음에, 떨리는 손으로 지체할 새가 없이 예쁘게 신경 써 놓은 선물 포장을 마구잡이로 뜯었다. 금방 리본을 풀고 포장 또한 아무 바닥으로 날려 보내며, 터질 것 같은 가슴을 안고 선물 상자를 열었다.


“과연 뭘까… 아?”


삼 초였다. 기대가 한순간에 온기를 잃어 사라지기까지.

작은 상자 안에 든 것은, 당시에 맥도날드에서 어린이 세트를 먹으면 주었던 로봇 장난감이었다.

아주 잠깐 몸이 굳었다.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지 몰라서 몇 초간은 말없이 떨리는 동공으로 상자 안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던 그것을 내려다볼 뿐이었다.


“…어때? 마음에 드니, 아들?”


멍해진 내게 묻는 엄마의 목소리가 묘하게 떨렸다.

상기된 표정으로 나의 반응을 기다리는 엄마를 두고, 나는 차마 허무한 정적을 더는 길게 늘어트릴 수가 없었다.


“우와… 로봇이네! 나 진짜, 로봇 좋아하는데 엄마! 정말 고마워요. 엄마!”


마음에 든 척, 애써 품으로 로봇 장난감을 끌어안았다. 그런 나의 웃음에 엄마는 비로소 마음이 놓이셨는지 반달눈이 될 만큼 웃음을 지으며 기뻐했다.

속으로는 품었던 기대가 부끄러워질 정도로 실망했지만, 겉으로 그런 모습을 보인다면 엄마가 무척이나 슬퍼하실 걸 알기에 실망을 들키지 않으려고 일부러 부자연스러울 만큼 기쁜 연기를 했다. 나는 아예, 그 로봇 장난감 중 아무거나 하나를 잡아들고 일부러 같이 잠에 들기까지 했다.


크리스마스 다음 날이 되어 학교에 가니 교실에 들어오기 전부터 복도는 애들이 떠드는 목소리가 가득히 공간을 울리고 있었다. 교실 안으로 들어오자마자 내 눈앞에 보인 풍경은, 자신이 받은 크리스마스 선물을 가져와서 자랑하고 있는, 꼴사나운 아이들의 모습이었다. 아이들의 손에는 당시에 유행하는 게임기가 있었고, 캐릭터 카드가 있었고, 로봇 장난감이 있었다. 그중에서 내 시선을 빼앗은 건 로봇 장난감이었다.

내가 받은 햄버거 가게 어린이 세트 장난감과는 비교 자체를 할 수 없을 만큼 크고 멋있는 데다, 값비싼 가격대까지 느껴졌다.

행여나 나에게 말을 걸어올까 봐 땅을 내려다보며 쥐 죽은 듯이 자리로 가려 했지만, 내가 온 걸 보고만 애들은 굳이 내 자리 앞까지 와서는 선물 받은 장난감을 자랑해 보이며 물었다.


“야 안재욱! 너도 선물 받은 거 갖고 왔어?”

“어… 어?”

“선물 뭐 받았는지 가져와서 보여주기로 했던 거 잊었어?”


단숨에 나에게로 시선을 집중한 애들에게 기가 눌려, 어설프게 얼버무렸다.


“아… 맞다. 그게 사실, 지각할 거 같아서. 급하게 오느라 깜빡했어. 미안.”

“뭐? 뭐야 그게. 가져왔으면 같이 가지고 놀려고 했는데! 그러면 뭐 받았는지 말이라도 해봐! 너는 선물 뭐 받았어?”


물음에 곤혹스러운 얼굴로 침을 꿀꺽 삼켰다. 크리스마스 선물로 받은 게 맥도날드 어린이 장난감이라는 걸 알았을 때 애들의 놀림감이 되기에 뻔하다는 걸 안다. 성격상 거짓말이 서툴렀던 나는, 자칫 그대로 말해서 창피를 당할 뻔했지만, 최대한 머리를 굴려보았다.


“나, 나 로봇 장난감 받았어. 다섯 개 정도?”

“헤엑! 다섯 개나?”

“우와! 진짜 부럽다!”


애들은 휘둥그레진 눈이 되어 입까지 헤 벌렸다. 그런 반응을 보니 그제야 긴장이 풀려 안심이 됐다.


“재욱아! 내일 학교에 갖고 오면 안 돼? 하나라도!”

“미안. 엄마가 집에서만 가지고 놀라고 하셔서…….”

“그럼 나 너희 집 놀러 갈래! 응?”

“그, 글쎄. 엄마가 허락을 해주셔야 할 텐데 될지 모르겠네.”


먼저 꺼낸 사실 뒤로는 교묘하게 거짓말을 섞으니 오히려 자연스럽게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자신들이 받은 멋진 장난감 선물이 무안해질 정도로 반 애들은 내 말을 듣곤 하나같이 부러운 시선을 던졌다. 물론 애들의 머릿속에 그려졌을 근사한 장난감과는 다르게 나의 장난감은 한 손에 들어올 만큼 작고, 퀄리티도 자랑할 수준이 못 되는 싸구려였지만.

한참이 지나 중학생이 되고, 고등학생이 되어서도 그때 받은 햄버거 가게 어린이 세트 장난감은 기억에서 잊혀지지 않았다. 크리스마스가 가까워질 때면 항상 내 머릿속에서 오래된 영화의 필름이 되어 떠올랐다.

내 안에 두고 싶지 않은 어린 날의 슬픈 이야기는 어째서 마음속의 비망록이 되어 남았을까. 그 이유를 알지 못하여 지내오다가 스물이라는 나이를 앞에 두고서야 감히 생각해 보고 싶었다.


자식에게 장난감을 사주고는 싶은데, 백화점이나 대형마트에서 파는 장난감을 사주기에는 너무 비쌌기에 공장에서 일하면서 매 점심 햄버거 가게에 가서 어린이 세트로 끼니를 때우셔야 했고, 어린이 세트를 먹으면 받을 수 있는 로봇 장난감 다섯 개를 모두 모아서 투박한 공장 박스에 어설프게 은 비닐로 포장해 어린 아들에게 크리스마스 선물이라며 주어야 했던 엄마는… 어떤 심정이었을까.

힘든 공장 일을 쉬는 날이 하루도 없이 하려면 밥이라도 잘 챙겨 드셔야 했을 텐데, 오늘 내가 먹은 어린이 세트 햄버거는 내 기준으로 세 입이면 다 먹을 정도로 양이 터무니없이 적었다.


당신은 주린 배를 채우는 게 목적이 아니었다. 하나뿐인 아들에게 그렇게라도 크리스마스 선물을 해주고 싶은 마음이었던 것이다. 그 작은 몸집으로 건장한 남성도 하기 힘든 일을 몇 년이 넘도록 하였던 내 세상의 손바닥은 지문이 다 닳고 거칠어져 있다. 그런 미안하고, 또 미안해지는 사람을 헤아려보고자 하면 왜인지 가슴 한편이 버거워질 만큼 아려와서 힘든 날의 기억이 내게 남긴 물음에 매번 답을 하지 못해 그저 인제 그만 아파도 되지 않을까. 하며 소심하게 바랄 수밖에 없었지만, 어쩌면 멀어진 시간이 현재까지도 바래지 않고 선명하다는 건 엄마가 바쳐온 소중했던 젊음을, 잊지 말고 보답해 드려야 한다고 내게 알려주려 했던 것이 아닐까. 그래서 그런 거라면, 나는 내 안에서 숨어지낸 비망록을 구태여 지우지 않고 간직하기로 했다. 그게 맞을지도 모르겠다고, 스스로 믿고 싶었다.


코피로 모자라 쓰러지면서까지 공부를 했던 내게 세상은 고맙게도 그 노력을 배신하지 않는 대답을 해주었다. 오늘 나는, 의대에 합격했다는 통보를 받았다. 전액 장학금까지 받으며 공부할 수 있게 되었다.

버스를 타고 정류장에 내리니 길가엔 아까보다도 눈이 더 소복하게 내려앉아 있었다. 쌓인 눈 위로 내 발자국을 새겼다. 그러면서 걷다 보니 집 앞에 도착했고, 문을 두드리자 늘 그랬듯 엄마는 당연스럽게 나와서 따뜻한 얼굴로 나를 맞아주었다.


“아들 왔어? 밥은 아직 안 먹었지? 뭐 해줄까?”

“밥 괜찮아 엄마.”

“그러니? 엄마 너랑 같이 먹으려고 기다렸는데.”


아쉬워하며 웃는 엄마의 목소리에, 나는 입꼬리를 올려 대답을 고쳤다.


“아, 그러면 나 밥 먹을래! 실은 아직 배가 덜 찼어.”

“그래그래! 옷 갈아입고 얼른 앉아!”


여전히 고운 우리 엄마. 호시절엔 배우 뺨치도록 예뻐서 거리를 걸으면 남자들의 시선을 한눈에 받았던 엄마는, 이제 팔자 주름에 파마머리를 한 영락없는 중년의 모습을 하고 계신다. 하지만 내 눈엔 여태껏 우리 엄마만큼 예쁜 사람이 없다. 거울을 볼 때마다 늙었다는 말을 자연스럽게 하는 엄마지만, 나를 향해 지어주는 미소는 나이를 들지 않고 누구보다 아름다운 모습 그대로였다. 함께 마주 보고 앉은 식탁에서 나는 선뜻 수저를 집어 들지 않고 뜸을 들이다, 물끄러미 엄마를 바라보면서 입을 뗐다.


“보자, 오늘이 16일이면… 크리스마스까지 열흘도 안 남은 거네, 엄마?”


내 어설픈 물음에 엄마는 싱긋 미소 지으며 나와 눈을 마주쳤다.


“그렇네, 그런데 왜?”

“아니, 그게 그냥.”


본격적인 말을 하기 전에는 늘 이렇게 쑥스러운 마음이 되어 버린다. 그래서 나는 괜히 뭐가 묻어있지도 않은 맨 볼을 긁적이다가 마침내 용기 내기로 한 입을 천천히 열었다.


“크리스마스 선물… 준비한 거 있는데, 그냥 미리 줘도 돼?”

“응? 선물이라니, 무슨 말이야 아들?”


갸웃하는 엄마를 향해, 나는 꺼내든 스마트폰의 화면을 조심스레 가까이 보여주었다. 부끄러웠지만, 시선을 거두지 않고 일부러 더 담담한 척을 했다.


“엄마 아들, 대학 합격했어. 이제 나도 엄마 어깨에 있는 짐, 조금이나마 덜어줄 수 있도록 할게.”


스마트폰 화면은 내가 의대에 최종 합격했다는 결과를 띄우고 있었다.


“…어?”

“아, 안 보이는 거 아니지? 봐봐, 엄마 아들 의대 합격했다고. 돈은 걱정하지 마. 전액 장학금이래.”


내가 건네는 말에 엄마의 눈빛이 일렁였다. 그런 시선을 받아내다가 몇 초 뒤엔, 식탁 위로 엄마가 쥐고 있던 수저가 떨어졌다. 그런 찰나 같은 순간이 지나가고 나서는 표정과 표정 사이로 잠시나마 어떠한 소리도 나지 않다가, 다시 엄마는 천천히 외마디를 흘려보냈다.


“아……!”


뒤늦게 두 손으로 입을 감싼 엄마의 눈망울로 눈물방울이 떨어졌다.

그 모습을 보며 순식간에 덩달아 감정이 올라오려고 했지만, 나만은 따라서 울지 않고 싶었다. 그랬기에 더욱 내 웃음에게 힘을 내라고 응원하며 밝은 얼굴을 거두지 않았다.


“있잖아. 엄마, 사실 나 크리스마스가 되면 어렸을 때 엄마가 내게 선물해 주었던 햄버거 가게 장난감이 매번 생각났어. 왜 그렇게까지, 지독하게 아프고 외로웠던 시절의 기억이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고 나를 괴롭히는 걸까 싶었는데… 어쩌면, 잊지 말아 달라고 내게 말해주려고 했던 건가 봐. 잊지 말고 열심히 해서, 엄마가 나를 위해 바쳐주었던 시간에 기필코 보답하라고, 그래서, 그래서 그런 건가 봐 엄마.”

“아… 아…….”


입만을 가까스로 틀어막던 엄마의 두 손바닥은 이내 내게 항상 다정함을 머금어주었던 얼굴까지 가리고 말았다. 내가 가장 사랑하고 사랑하는 그 손의 주인이 세월에 깎인 어깨를 떨었다. 엄마, 기쁜 일인데 울긴 왜 울어, 아들 따라서 같이 웃어주지. 그런 마음으로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엄마에게로 다가갔다. 앞에 서서 무릎을 꿇었다.


“엄마, 엄마가 고생했던 모든 시간들… 내가 감히 모두 갚아나갈 수 있을진 모르겠지만, 최선을 다할게. 염치없이 이런 말 해서 미안한데 엄마.”


그리고 품 안에 끌어안으며, 내가 정말 말하고 싶었던, 말해야 했던 문장을 비로소 건넸다.


“어… 응, 정말. 다음 생에도, 그 아픈 시간들 견딜 수 있다면 또 나를 낳아줘. 내가 잘 보필할게…….”


그날, 마주 앉은 식탁에서는 누구도 다시 수저를 들 수 없었다. 엄마는 고개를 연신 끄덕이며, 내 등을 따뜻하게 어루만지면서 내내 고맙다는 대답만을 했다.

애써 울지 않으려 했는데, 결국은 나도 품으로 가득히 끌어안은 엄마의 어깨에 서서히 고개를 묻었다.

나를 위해 젊은 날을 선뜻 양보해 준, 가장 사랑하고 고마운 사람이 소년에게 안겨주었던 로봇 장난감에게 10년 만에야 보답하는 크리스마스 선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