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 장가 가던 날

단편 소설

by 전석표

“헤엑, 할머니! 이 사람이 정말 할아버지라고?”


맑기만 한 하늘에 어울리지 않게 소나기가 잠시 내렸다. 개자마자 밖에서 시끄럽게 울어대는 매미 소리와 함께 주황빛 하늘이 여름을 말하는 날이었다. 방학이 되어 할머니네 시골을 찾은 지민은 할머니의 방에서 찾은 옛 사진을 보다가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런 손녀를 보면서 할머니는 싱긋 웃으며 말했다.


“왜, 네가 보기에도 못났지?”

“그럴 리가 할머니! 완전히 훤칠하시잖아, 우와!”


듬직한 풍채에. 배우라고 소개해도 믿을 만큼 잘생긴 외모의 사람이 사진 속 예쁜 아가씨의 옆에서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호쾌하게 웃고 있었다. 그 사람이 지민의 할아버지였다.

그러한 사진 뒤편엔, 오랜 세월이 지나도 선명하게 남아있는 글씨가 쓰여 있었다.


호랑이 장가 가던 날.


호랑이 장가 가던 날?

무슨 뜻인가 싶어 고개를 갸웃하며, 지민은 또 물었다.


“할머니, 호랑이 장가 가던 날이라 쓰여있는 건 뭐야?”

“그건 네 할아버지가 쓴 건데, 할머니도 모르겠네.”

“그래? 음…….”


뜻 모를 문장을 남기신 이유가 뭘까. 지민은 찡그린 얼굴로 갸우뚱했다. 그런 기분과 함께, 사진 속 젊은이의 웃는 얼굴을 바라보았다.

커다란 덩치와는 다르게 장난기가 많아 보일 것 같은, 그저 좋아서 쾌활해 보이는 웃음.

세월 속의 웃음을 바라보는 지민은 다시 무언가가 궁금해져 할머니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있잖아. 할머니.’ 지민이 물었다.


“할머니는 어떻게 청혼받았어?”


손녀의 물음이 귀에 닿자, 수건을 개던 할머니의 손짓이 멈추었다. 그러면서 할머니도 그 자리에서 처음으로 지민과 얼굴을 마주했다.

눈은 지민을 바라보고 있지만, 그 안엔 다른 사람이 비치는 듯한 눈빛으로, 할머니는 옅은 미소와 함께 입을 뗐다.


**


“누구세요?”


살짝 좁혀진 눈매, 하지만 숨길 수 없는 경계가 드러나는 목소리는 현관에 있는 두 청년에게로 향했다.

까맣게 피부가 탄, 군복을 입은 남자 둘이 얼굴이 보이지 않도록 군모를 깊게 눌러쓴 채 종이상자 하나를 들고 있었다. 조금은 무섭게 느껴지기도 하는 인상이었다. 그중에서도 한 사람이, 낮게 내리깔린 목소리로 말했다.

“김지수 씨 되십니까?”

“네? 네, 제가 김지수예요.”


목구멍 안에 가득 차 있던 물음이 무게감 느껴지는 음성 앞에서 겁을 먹고 달아났다. 그저 묻는 말에만 눈치를 보며 대답하게 되었다.

그런 첫 물음 뒤로는, 어째서인지 이유 모를 정적이 나타났다. 그러더니 대뜸, 두 군인은 군모를 벗으며 얼굴을 보였다.

차갑게 굳은, 표정만 봐서는 좋지 않은 얘기를 들려줄 것만 같은, 눈앞의 아가씨를 금세 울릴 수 있을 것만 같은 얼굴이 다시 입을 열었다.


“안재욱 병장님께서, 전해달라고 부탁한 물건입니다. 받아주십시오.”

“…네?”


다른 설명이라곤 없이 굳은살이 박인 투박한 손이 종이상자만을 무심하게 건네었다. 가늘고 하얀 손이 그것을 조심스레 받아들였다.

그녀의 눈이 떨렸다.

‘저기.’ 떨고 있는 눈망울을 닮은 목소리가, 안에서 흘러나왔다.


“정말 죄송한데요. 안재욱 씨는 어디 가고, 당신들이…….”


차마 끝마치지 못한 음정이 허공에 허무하게 맴돌았다. 종이상자를 건넸던 사내의 옆에 있는 남자가 그 물음을 받았다.


“안재욱 병장님께서, 자신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이걸 꼭 지수 씨에게 대신 전해달라…….”

“네?”


무언가 이상하다고 느꼈다. 무슨 일이 생겨? 그게 무슨 말인데?

불안에 사로잡힌 아가씨를 보면서 두 사내는 더는 어떠한 말을 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것이 답이 된 건지, 아가씨는 품 안에 든 상자로 시선을 내렸다. 곧 그렇게, 겁먹은 손짓이 천천히 상자를 열어젖혔다.


“…뭐죠, 이게?”


정말 몰라서 묻는 게 아니었다. 그녀 역시 보자마자 안개꽃 다발임을 알 수 있었다. 새하얀 안개꽃을 본 순간, 그녀는 온갖 말들이 의식에서 사라지려는 것 같았다. 발 디딘 공간이 무한히 넓어지면서 발밑이 보이지 않는 어둠으로 꺼져가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그렇게, 서있는 몸은 힘이 풀리더니 이윽고 천천히, 바닥으로 주저앉았다. 그런 사람의 눈가에는 눈물방울만이 천천히 흘러내리고 있었다.

하얀 안개꽃, 그 아이의 꽃말은 죽음이었다.

걱정하지 말라고, 죽기엔 너무나 잘난 사람이라 잠시 영화 한 편 찍으러 다녀온다고 웃으며 말한 사람이 준비한 선물이 죽음을 알리는 안개꽃이라니.

처절한 울음소리마저 나오지 않았다. 그저 너무 두렵기만 해, 믿고 싶지 않아 얼어붙은 채로 눈물만 무수히 흘러내렸다.


“…이게 뭐야, 이게 뭐야.”


상자를 건네었던 사내가 일으켜주기 위해 손을 내밀어봤지만, 아가씨는 반응하지 못했다. 두 군인과 아가씨 사이엔 형용할 수 없는 침묵만이 있을 뿐이었다. 다시 사내가 손을 거두면서 말했다.


“지수 씨, 마지막으로 또 드려야 할 말씀이 있습니다.”


그 말에 그녀는 말없이 힘겹게 고개만을 들었다.


“그게 말입니다. 안재욱 병장님이 준비한 건 그 꽃만이 아닙니다.”

“…네?”


무슨 뜻인지 이해하지 못해, 그녀의 젖은 눈만이 떨렸다. 그런데, 슬퍼하는 사람을 앞에 두고서 두 군인의 입가엔 문득 웃음기가 서렸다.


“지금, 웃으신 거예요?”


이해할 수 없는 행동에 아가씨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지금 이 순간에, 상황에 전혀 나와선 안 되는 표정에 아가씨는 땅바닥에 쓰러져 있던 몸을 힘겹게 일으켜 세우게 되었다.

분명히 웃고 있었다. 아까까지만 하더라도 세상 모든 우울을 짊어진 듯이 침울하던 사람들이 어째선지 그렇게 웃고 있었다.


“왜 웃는……!”


무서웠지만 주먹을 꼭 쥐며, 아가씨가 물었다.

그러자, 두 사내는 한 사람이 낸 목소리처럼 함께 대답했다.


“축하드립니다. 형수님!”


그렇게 말하며, 두 군인은 더욱 활짝 웃어주더니 현관 문턱에서 자리를 비켜주었다. 그러자 단숨에 눈앞의 풍경이 확 트였다. 그녀의 동공 또한 넓게 확장되었다.


“아이고 땀이야, 시장에 꽃 파는 데가 안 보여서 한참 찾았네!”


바뀐 시야 앞에는, 장미꽃 송이를 들고 웃고 있는 호랑님이 계셨다.


“왜 울고 있어? 내가 이렇게 돌아왔는데, 당신 기쁘지 않은 거야?”


능청스럽도록 고개를 갸웃거리며, 호랑님이 물었다.


“어, 어… 어?”


어떠한 말을 해야 할지 몰라서, 아가씨는 그대로 얼어붙고 말았다.

그런 아가씨를 바라보는 호랑님의 눈매가 자상했다.


“지수 씨에게 줄 장미꽃을 사려고 내가 고민 좀 하다 보니 늦을 거 같아서, 애들한테라도 먼저 가 있으라고 부탁한 건데 왜 울고 있어. 혹시 애들이 괴롭힌 건 아니지?”

“당신, 지금…….”


호랑님이 문턱을 넘더니 그녀가 들고 있던 상자 속에 놓인 안개꽃 다발을 손에 잡았다. 그 안개꽃 사이로 들고 있던 장미꽃 다섯 송이를 껴 넣더니, 그것을 다시 그녀에게 건네주며 말했다.


“미안해, 놀래주려는 건 아니었어. 하늘이 이렇게나 맑은 날에 어울리지 않게 울면 어떡해?”

“이…! 지금 그걸 말이라도 해? 안개꽃 꽃말이 뭔 줄 알고 이런 장난을 쳐? 진짜 미쳤지, 미쳤어 당신!”


화가 난 아가씨가 호랑님의 가슴팍을 때렸다. 호랑님은 맞으면서도 그저 미소만 지었다.

한참을 때리다가 감정이 북받친 그녀는 결국 품 안에서 엉엉 울고야 말았다. 그런 사람의 등을 부드럽게 쓸어주며, 호랑님은 말했다.


“안개꽃 꽃말 알고 있지. 죽음이잖아. 그런데 지수 씨, 장미의 꽃말은 사랑이래. 하얀 안개꽃과 빨간 장미꽃을 함께 선물하면 어떤 의미가 되는지 알아?”


물음에, 품 안에서 어깨를 들썩이며 울던 그녀가 천천히 고개를 올렸다. 눈이 마주치자, 호랑님이 웃으며 말했다.


“둘이 함께 하면, 죽을 날까지 사랑하겠다는 꽃말이 된대. 나는 앞으로 당신에게 그런 사랑을 약속하기로 했어,”

“…어?”


아가씨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호랑님은 품에서 잠시 그녀를 놓아주더니 주머니 속에 감춰둔 무언가를 꺼냈다.

그대로, 호랑님이 아가씨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상자를 열자, 안에는 영원을 약속하는 징표가 있었다. 그것을 소중한 사람에게 건네는 사람이 다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지수야, 할머니가 된 모습도 내게 보여줘.”


**


“꺄아아악!”

“청혼을 받고도 한참을 울었지. 네 할아버지는 참으로 별난 사람이었단다. 월남에 다녀오자마자 어찌 그런 장난을 칠 생각을 했는지.”

“할머니, 완전 대박이야! 할아버지 그래도 완전 로맨틱해!”


난리법석을 부리는 손녀를 보며, 할머니는 옅은 미소를 지었다.

저녁밥을 먹고 난 뒤 마당에서 바람을 맞으며 쉬다가 잘 시간이 되자 지민은 할머니 옆에 이부자리를 폈다. 눈이 하염없이 감기려 하는 지민과는 다르게 할머니는 멀쩡하였다.


“할머니 언제 잘 거야?”


손녀 지민이 반쯤 잠긴 목소리로 할머니에게 물었다.


“할머니는 아직 할 일이 남아서, 우리 강아지 먼저 자.”

“아, 할머니랑 같이 잠들고 싶었는데… 너무 졸려서 안 되겠어.”


웅얼대며, 지민은 이내 먼저 잠에 들었다.

잠에 든 손녀를 방에 두고 혼자 나온 할머니는 마룻바닥에 잠시 앉았다. 거기서, 할머니는 주머니 속에 있는 사진 한 장을 꺼내 들었다.

순간 속에 기억된 아름다운 남녀 둘이 같은 미소를 짓는 그림이 있었다. 백발이 된 사람의 손이 사진 속 사랑하는 이의 얼굴을 다정하게 어루만졌다.


“나 참.”


천천히 고개를 드니 마치 호랑님이 여우에게 장가 가던 그날처럼 깨끗한 밤하늘이 수없이 가득한 작은 별들을 밝게 띄우고 있었다.

그런 하늘 아래에 있는 노파의 눈은 서서히 우주를 닮아갔다.


“할머니 된 모습 보여달라면서, 지는 그렇게 보여주기 싫었나.”


나도 할아버지가 된 당신을 보고 싶었답니다.

그 말만은 목소리를 타고 나오지 않고 가슴에만 조용히 자리했다.


계절 속에서 살아가는, 이름 모를 풀벌레들이 우는 여름밤이었다.

호랑님이 있는 하늘과 할머니의 거리를 이어주는 것같이, 조용히 울어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