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다음 날 아침.
지수의 집 앞에 먼저 나와 기다리는 의조의 안색은 한눈에 봐도 상당히 좋지 않았다. 길게 내려앉은 다크서클이 잠 못 든 어젯밤을 말해주고 있었다. 현관문이 열리자마자 나온 지수는, 그 얼굴을 보자마자 빵 터졌다.
“야, 얼굴 뭐냐. 그 얼굴로 키는 지가 더 크다느니, 얼굴은 비긴다느니, 쓸데없는 소리하더니?”
“…딴소리 말고 가방 내놔.”
“그래 땡중아. 가져가라!”
가방이 퍽, 하고 사내의 품에 안겼다.
거리를 걸으면서 내내 한마디도 하지 않는 의조가 이상해 보여, 지수는 넌지시 물었다.
“어제 잠 못 잤냐? 상태가 왜 그래?”
“어? 아니 아니. 그냥 어제 운동이 좀 과했나 봐.”
의조의 대답에 지수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건조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 갑자기, 어깨를 팡 하고 치며 말했다.
“안 되겠네. 오늘 학교 끝나고 밥 먹으러 가자. 내가 아는 데 진짜 맛있거든. 이 누나가 오늘 특별히 호강시켜주마.”
힘 있게 어깨를 친 탓에, 한 덩치 하는 의조의 몸이 순간 뒤로 밀렸다.
“밥을 사준다고? 네가…?”
소년이 휘둥그레진 눈으로 지수를 보며 물었다.
“어, 왜. 내가 밥 사주면 안 됨? 아무튼 간다. 오늘 먹자. 콜?”
“어….”
그 순간, 의조의 머릿속에서 번쩍 하고 무언가가 지나갔다. 의조는 서둘러 지수에게 말했다.
“잠깐만! 그럴 거면 설화도 같이 불러서 먹자. 내 밥값은 그냥 내가 낼게. 괜찮지?”
“오오? 웬일이래. 네가 그런 말도 다 하네. 그래, 좋아. 그럼 네가 설화 부르기.”
“그래… 고맙다.”
“그래, 가자, 머슴아. 학교까지 아직 멀었거든!”
얘기를 나누면서 걷고 걸은 끝에 학교가 보였다. 이윽고 정문 문턱을 넘어서자, 둘의 귀로 익숙한 목소리가 울렸다.
“지수야, 의조야!”
뒤돌아보니 설화가 뛰어오면서 손을 흔들고 있었다.
“헐, 우리 애기 왔다! 천천히 좀 와! 넘어지면 어떡해!”
평소였다면 보자마자 표정이 환해졌을 의조였지만, 오늘은 묘하게 어색한 무게가 마음에 걸렸다.
설화가 둘 앞에 서자, 의조는 자연스럽게 지수의 옆을 비켜 앞으로 몇 걸음 앞서 걸었다.
“설화야, 어제 집 잘 들어갔어? 영화가 그렇게 늦게 끝날 줄은 생각도 못 했어… 미안!”
“아니야 지수야. 나 정말 괜찮았어. 영화도 재밌었고, 집도 문제없이 잘 갔어.”
“그랬어? 다행이다, 진짜.”
지수는 설화를 보며 웃었다. 그러다 곧바로, 의조를 향해 돌아서며 말투가 싹 바뀌었다.
“근데 너는 왜 그렇게 뒤에서 어슬렁대? 사람 불안하게.”
“내가, 뭐.”
어딘가 주춤하는 의조의 모습에, 지수가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
“설화야, 얘 어제 영화 끝나고 집 안 들어가고 산책했다더라. 그것도 이 추운 날에. 나 어제 반찬통 가져다주러 갔었는데 없어서 얼어 죽는 줄 알았어. 도대체 뭔 생각인지 모르겠다, 진짜.”
지수의 말에, 의조와 설화의 시선이 스치고 그대로 잠시 머물렀다. 둘 다 어색하게 숨을 고르려 했다.
“아… 그렇구나. 지수야, 추웠겠다. 괜찮아?”
“몰랐네. 미안합니다.”
“아오, 결국 오늘 또 갔다 줘야지 뭐.”
지수는 투덜거리면서도 표정은 꽤 여유 있었다.
“지수가 고생이 많네.”
설화가 미소를 띠자, 지수는 곧바로 환하게 웃으며 팔짱을 끼웠다.
“괜찮아, 이렇게 귀여운 설화가 있으니 나는 힘이 나거든요!”
설화는 그 말에 반달눈이 되어 웃었다.
셋은 정문 현관에 다다르고 계단을 올랐다. 3층까지 올라오자, 설화만 다른 반이었기에 의조와 지수는 헤어지기 전 설화에게 인사를 했다.
“오늘도 잘 지내고 이따 봐!”
지수가 손을 흔들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설화가 살짝 웃으며 말했다.
“매번 느끼는 건데… 너희 둘 같은 반이라 진짜 부러워. 나도 같이였으면 좋았을 텐데. 이렇게 교실 갈라질 때마다 아쉬워.”
지수는 그 말이 꽤 기분 좋은 듯 어깨를 으쓱했다.
“에이, 1, 2학년 때 우리가 같은 반이었잖아. 그리고 설화 넌 어차피 나랑 늘 붙어 다녔지. 3학년 와서 반 갈린 게 좀 그렇긴 하지만!”
“그랬지… 맞아.”
“설화는 나 너무 좋아해서 큰일임. 흠! 안 되겠다. 이따 쉬는 시간에 네 반 간다. 나 안 찾아오면 서운함.”
“진짜?”
설화의 얼굴이 조금 더 환해졌다.
“진짜지!”
“응… 그럼 이따 봐, 지수야. 의조도.”
설화는 두 사람에게 손을 살짝 흔들었다.
“응. 이따 보자.”
의조도 짧게 답했다.
설화가 교실로 들어가고, 의조와 지수의 발걸음만 복도에 남았다. 그때 지수가 슬쩍 의조의 옆구리를 쿡 찔렀다.
“아. 왜.”
“송의조, 왜 아까 설화랑 있으면서 말 한마디 안 하냐?”
“이미 너랑 얘기하느라 내가 낄 틈이 없던데, 무슨.”
“그래? 이러다 나한테 질투하는 건 아닌가 몰라.”
지수가 눈썹을 씰룩이며 장난스러운 표정을 짓자, 의조는 한숨을 지었다.
“그거라면 이… 아, 아니다. 오늘 1교시 자습이지? 너 읽던 만화책 다 봤으면 빨리 좀 줘. 나도 읽어야 되는데. 언제까지 붙잡고 있는 거야, 진짜.”
“어? 그거 이미 김남우 줬는데?”
“…뭐? 내가 그거 돌려주라고 몇 번을 말했는데. 진짜… 됐다, 됐어.”
괜히 더 말하면, 어색함이 들킬 것만 같았다. 의조는 지수보다 먼저 무심하게 반으로 들어갔다.
평소라면 장난 한마디쯤 더 붙이고 웃어넘겼을 일인데, 오늘은 입술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지수는 어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른다. 모를 수밖에 없고, 말할 수도 없고.
그렇게, 복잡한 마음만 그대로 남아 있었다.
***
“…자.”
“으어….”
“…자고.”
“어으.”
“야, 겨울잠 자냐? 가자! 일어나라고!”
“으어 뭐, 뭐야!”
화들짝 놀라며 잠에서 깬 소년의 앞엔, 인상을 구기며 서 있는 지수가 있었다.
“뭔데, 지금 뭔 시간인데, 아, 체육?”
“도대체 뭔 시간인 줄 알아? 체육은 지났고, 학교 끝났거든? 네가 종 치고도 계속 자길래 내가 깨우러 왔다고.”
“내가… 끝날 때까지 잤다고? 진짜?”
의조는 멍한 얼굴로 자신의 뺨을 슬쩍 두드렸다.
“그럼 좀 깨워주지 그랬냐.”
“했거든? 네가 입만 조금 벌리고 행복하게 자더라. 깨우는 게 아까웠음.”
“….”
의조는 말없이 가방을 챙겨 지수와 함께 교실을 나섰다.
둘은 먼저 설화의 반 앞으로 종례가 끝나기를 기다렸다. 잠깐의 기다림 끝에 교실 문이 열리면서 저마다 짐을 챙기는 소리가 들렸다.
“설화는 왜 안 나오냐.”
어째 설화만은 모습을 보이지 않으니 의조는 창문 쪽으로 다가가 교실 안을 들여다보았다.
가방을 매고 있던 설화가 보였다. 그 순간, 의조는 자신도 모르게 속삭였다.
“…예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