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는 사이에 가까워지는 일

9화

by 전석표

조금의 시간이 흐르고, 두 사람의 발걸음이 멈춘 곳은 VR부터 리듬게임, 농구게임까지 온갖 놀이가 모여 있는 게임장이었다. 형형색색의 조명이 번뜩이고, 시끌한 음악들이 공중을 떠다녔다.


“들어가자. 스트레스 풀기엔 여기만 한 데가 없어.”

“와…!”


이곳이 익숙한 의조와는 달리, 설화는 사방을 신기하다는 듯 살피느라 눈이 바쁘게 움직였다. 그러다 문득, 무언가를 발견한 듯 손을 번쩍 들었다.


“의조야, 저거!”

“응?”

“나, 저거 해보고 싶어.”


설화의 손이 가리킨 곳으로 소년의 시선이 향했다. 뭔가 했더니, 평범한 농구 게임이었다.


“농구 게임? 좋아. 첫 판은 그걸로 하자.”


의조는 설화와 같이 농구 게임 앞에 섰다. 게임을 하기 전, 더욱 재미를 돋구기 위해 소년은 불쑥 소녀에게 제안했다.


“설화야, 우리 이걸로 내기할까?”

“좋아! 어떤 내기?”

“일단 첫 게임이니까… 진 사람이 딱밤?”

“콜! 내기까지 걸렸으니까 진짜 열심히 한다?”


게임이 시작되자, 공이 연달아 네트 안으로 쏟아졌다. 의조는 능숙한 손놀림으로 공을 던졌고, 설화는 허둥대면서도 놀랍게 집중을 이어갔다.

하지만 의조는 이미 질 생각이었다. 일부러 힘을 살짝 빼고, 거리 조절을 미묘하게 어긋나게 하며 공을 던졌다. 점수판이 올라갈수록 설화의 점수가 1점씩 앞서갔다.


“어? 내가 졌네.”


의조가 웃으며 말했다.


“이야아! 내가 이겼다!”


설화는 두 팔을 쭉 올리며 진심으로 기뻐했다.


“나… 진짜 좀 잘하는데?”


끝까지 입술을 꾹 다물고 집중하던 표정이, 승리한 뒤엔 순식간에 반달처럼 환한 미소로 바뀌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의조의 가슴에 걸려있던 무거운 것들이 조금씩, 아주 조금씩 풀려 내려가는 듯했다. 이런 순간이, 참 좋았다.

농구 게임 말고도, 의조는 그 애와 함께 바쁘게 다른 게임들까지 둘러보았다. 또 한 번 아이의 손이 가리킨 건, VR 공포 게임이었다. 조금 의외였던 의조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이 게임 하고 싶어? 이거 엄청 무서울 텐데, 괜찮겠어?”


설화는 잠시 입술을 모으더니, 용기를 모은 얼굴로 말했다.


“으… 사실 무서운 건 진짜 못 해. 근데… 재미있을 거 같아서. 같이 하면 덜 무서울 것 같기도 하고. 괜찮을까?”


그 말이 어쩐지 귀여워, 의조는 미소를 참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야 괜찮지. 무서우면 말해. 바로 빼줄게.”


“응…! 그러면 해보자!”


설화는 신이 나서 두 손을 꼭 쥐었다. 그 모습에, 의조는 알 수 없는 따뜻함이 천천히 마음속에 번지는 걸 느꼈다.

게임 시작 전, 둘은 나란히 VR 고글을 썼다. 그리고 동시에 서로를 보자마자 풉, 웃음이 튀어나왔다. 설화는 얼굴이 작아서 고글이 거의 얼굴 전체를 뒤덮어 있었고, 의조는 왠지 모르게 어정쩡하게 눌러쓴 탓에 귀 옆으로 머리카락이 우스꽝스럽게 삐죽 튀어나와 있었다.


“의조야, 너… 뭔가….”

“…뭐, 왜. 너는 지금 고글한테 잡아먹힌 것 같은데?”


둘은 서로를 향해 웃음을 참다 결국 동시에 터트렸다.

게임을 고르고 난이도까지 선택하니, 곧바로 화면엔 음산한 배경이 나타났다. 둘은 말없이 화면 속에 집중해 보았다.

낡은 전조등이 불안하게 사방에 빛을 던지고 있는 지하 주차장. 게임 속 인물의 거친 숨소리와 떨려오는 일인칭 시점이 주는 몰입감이 상당했다.

둘은 마치 자신들이 겪고 있는 일처럼, 무거운 침을 꿀꺽 삼키며 바짝 긴장했다. 사람 하나 없이, 비뚤게 세워진 먼지 쌓인 차들에 둘러싸여 방황하고 있었다.

쩌그덕. 하며 길게 늘어지는 기분 나쁜 발소리가 귀에 울리자, 둘은 같은 타이밍에 반사적으로 몸을 움찔거렸다.


“뭐… 나오는 거 아니겠지…?”


설화의 목소리는 거의 속삭임에 가까웠다. 그러던 찰나, 화면 속에서 검은 형체가 갑자기 주인공 쪽으로 튀어올랐다.


“엄마!”

“으악!”


둘의 비명은 놀랍도록 완벽하게 하모니를 이루었다. 잠깐 소리를 내고는, 둘 다 다시 고개를 움츠리며 고글 속 화면에 몰입했다.

주차장 한복판에서, 주인공은 그 검은 그림자에게 쫓기고 있었다. 어두운 시야가 크게 흔들리고, 숨소리가 고르지 않게 튀어나왔다.


“으… 잡히면 끝나는 거지 이거…?”


설화는 패드를 꽉 쥐며 마음을 졸였다. 의조 역시도 고글 뒤로 숨겨진 얼굴에 초조함이 가득했다. 손바닥은 이미 땀으로 젖어 미끄러웠다.

한참을 뛰고도 출구는 찾지 못했지만, 어딘가 구석에 열려있던 문으로 들어간 주인공이 그 안으로 몸을 숨기고는 입이 아닌, 코로 겁에 질린 숨결을 긴박하게 토해냈다.


“하아… 살았다.”

“휴… 나 진짜 심장 멎는 줄 알았어.”


드디어 숨 좀 돌리겠구나 하며, 둘도 그제야 맘 편히 숨을 골랐다.


“이거… 너무 잘 만든 거 아니야?”

“응… 이 정도면 돈값 한다….”


쪼그라든 심장을 달래며 게임의 몰입도에 감탄을 늘어놓고 있는데, 그때 둘의 귓가로 낯선 목소리가 들려왔다.


―위를 절대로 올려다보지 마세요.


둘의 몸에 다시금 소름이 돋아났다.


“어떡해…! 위로 보면 안 된대…!”


설화는 입을 두 손으로 막고 눈을 꽉 감았다. 잠깐 고요가 찾아왔을 때, 그녀가 아주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의… 의조야, 너는… 지금 눈 뜨고 있어?”

“아, 아니… 나도 감았어.”

“그, 그러면… 우리 같이 볼까? 하나둘셋 하면…?”

“응. 그러는 게 낫겠다. 그대로 멈춰 있으면 게임이 안 끝날 것 같아.”

“응… 그럼, 나 준비할게.”

“하나… 둘….”


셋까지, 카운트를 센 뒤 천천히 패드 버튼을 누르며 조심스레 눈을 떴다.


―끼이이이이어어어어어어?!


주인공의 시야가 천천히 위로 향하자, 어둠 속에서 길게 늘어진 머리와 피눈물 흘리며 웃는 얼굴이 화면을 가득 뒤덮었다.


“꺄아아아아아악!”

“으아아아아아악!”


둘의 비명이 완벽히 겹쳤다. 특히 의조의 목소리는 발로 레고를 밟은 사람이 내는 비명과도 같은, 상상 이상으로 처절한 소리였다.


‘…어!’


정신없는 와중, 의조는 갑자기 온몸이 멈춰버린 것 같았다. 설화가, 의조의 팔을 꽉 끌어안고 있었다. 팔에 전해지는 체온. 손끝의 힘. 조금 떨리는 숨. 고글 너머로 표정은 보이지 않아도, 소녀가 얼마나 놀랐는지, 얼마나 의지하고 있는지 그 감정이 온전히 전해졌다. 의조의 가슴이 또 한 번, 깊숙하게 내려앉았다.


스크린에 엔딩 화면이 떠오르고 조명이 되살아났다. 둘은 천천히 고글을 벗었다. 그제야, 설화는 아직도 자신의 손이 의조의 팔을 꽉 붙들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