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산문
처음 여기 온 날 밤에 침대에서 손전등 켜고 가족들한테 편지 썼다고 했나? 가족들 편지를 읽어봤다고 했나... 그때부터 대게 정 많은 사람인가 보다 했어. 나는 친엄마와는 연을 끊고 여기 들어왔고. 가족은 나한테 가장 사랑하는 존재기도 했지만, 짐이라는 생각이 더 컸지.
그런데 여기 와서 네가 가족들 보고 싶어 하고, 가족들과 함께 있었던 일들 얘기해주고, 가족들 사진 보여주면서 미소 짓는 얼굴을 보곤 하니까 지금까지 내 생각은 너무 어렸구나, 가족들에게 내가 너무 잘못했구나 하는 생각이 많이 들었어.
가족하고 화해하고 다시 잘 지내볼까, 먼저 손을 내밀어봐야겠다는 마음을 가지게 해준 게 네가 내 옆에 있으면서 나한테 준 가장 큰 선물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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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네가 일주일 전이지? 이제 떠나야 할 것 같다고 나한테 말했을 때, 그게 너무 무서워서 너한테 이말 저말 다해가면서 가지 말라고 뜯어말리긴 했는데 한편으로 너는 여기 있기에는 아까운 사람이라는 그런 생각도 정말 많이 했어. 어른들이 딱 보면 얘는 잘될 아이구나. 그런 말씀을 하시지. 너도 여기보다는 밖에서 더 잘될 거 같다는 생각이 들고.⠀
신이 모든 인생을 한 사람 한 사람 다 지켜보시면서 뜻한 길로 가게 인도해주신다는 말씀이 생각난다. 너는 지금 네가 제일 행복할 수 있는 길로 가는 거 같아. 솔직히 말하면… 어, 그 행복에 내가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이 정말 서운한데… 한편으로는 또 다행이다 싶기도 해.⠀
말주변도 없고 딱히 재미도 없는 내게 먼저 다가와 줘서 고맙고, 너는 내가 지금까지 스쳐 지나 보낸 사람 중에서도 특히 기억에 오래 남을 거 같아. 아프지 말고, 많이 웃고, 건강하게 잘 지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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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0820, 08시. 잠시나마 너를 스칠 수 있어서 가장 행복했던 사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