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로 돌아가는 사람에게

단편 소설

by 전석표

“악! 아, 아이 X놈 새끼!”


상쾌한 하루를 도모하고자 자판기 커피를 뽑아 들었는데, 그만 깍듯이 모셔야 할 선임의 얼굴에 그대로 뿜어버리고 말았다.

‘괜찮으십니까, 죄송합니다!’라는 말이 입에서 튀어나오기 전에 더 먼저 솟구친 말이 있었다. 늘 그렇듯, 변명보다 푸념이 먼저 나왔다.


“저보고 이승까지 출장을 갔다 오라고요?”


아침부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들었다. 옆 부서에서 처리해야 할 일을 왜 우리가 대신 해야 하는가. 내 질문에 선임은 간곡히, 그러나 익숙한 어조로 말했다.


“그래, 부탁 좀 하자. 옆 부서 난리 난 거 몰라? 망자들 데려오라 했더니 이승에서 사고만 치고 다녀. 시말서만 백 장이야, 백 장! 그래서 당분간 출장 금지래. 그렇다고 윗선에서 가만히 있겠냐. 우리라도 도와줘야지. 안 그러면 나까지 날아간다고.”

“아니, 그건 걔네 사정이지 왜—”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아니, 애초에 내가 말할 틈을 주지 않으려는 듯 선임이 다급히 말을 잘라 들어왔다.

“야, 이제 와서 짬 차는 네가 해야지. 다른 애들은 아직 멀었잖아. 딱 이번만 좀 봐줘라.”


피로가 눌러앉은 눈빛을 마주하며, 나는 결국 한숨을 삼켰다.


“하… 알겠습니다. 까라면 까야죠, 뭐.”


인도사자 대신 내가 이승으로 간다니, 참 세상 끝난 일이다.

죽은 지 십 년이 지났지만, 그 세월 동안 단 한 번도 ‘살아 있는 세상’을 다시 보고 싶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나는 저승의 재판사자다. 망자를 심판하고, 그들의 다음 생을 결정하는 일. 감정에 휘둘려선 안 되는 직업이다.

그런데 오늘따라 그 원칙이 영 자신이 없다.


명패를 받아 들고 내려온 곳은 진해였다.

봄이 막 피어나는 도시였다. 따뜻한 바람이 옷자락을 스쳤고, 병원 앞에는 벚꽃잎이 눈처럼 흩날리고 있었다. 나는 명패를 바라보았다.


‘망자: 한예리. 1992년생. 사망 사유, 다발성 장기 부전.’


너무 젊었다.

그녀는 창가 옆 침대에 누워 있었다. 햇살이 그녀의 얼굴을 스치고 지나갔다. 살아 있는 사람이라기보다, 이미 빛의 일부처럼 보였다. 그 빛이 흩어지기도 전에, 문이 열리고 어린 목소리가 들려왔다.


“엄마! 나왔어!”


여덟 살쯤 된 남자아이가 환하게 웃으며 뛰어왔다.

나는 무심코 고개를 들었다.


“엄마…?”


그녀에게 그런 존재가 있다는 사실이, 이상하게 마음을 흔들었다.

아이는 학교에서 있었던 일, 친구 이야기, 급식 메뉴까지 하루의 모든 장면을 조잘조잘 쏟아냈다. 대답 없는 엄마에게 그는 그저 오늘 하루를 선물하듯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런데 잠시 후, 나는 아이의 시선이 자꾸 내게 향하는 걸 알아차렸다.

죽음을 앞둔 자가 아닌 이상, 이승의 사람은 저승사자를 볼 수 없다. 하지만 그 아이는 분명히, 지금 내 눈을 똑바로 보고 있었다.


“사자 아저씨죠?”


결국 몇 분 뒤, 아이는 겁도 없이 내 곁으로 다가와 그렇게 물었다. 그리고 나는 대답했다.


“…그래. 저승사자다.”

“그럼, 저랑 잠깐 얘기할 수 있어요?”


나는 잠시 망설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공원으로 나가자 봄바람이 부드럽게 불었다. 아이의 목소리가 바람 사이로 흘러들었다.


“우리 엄마, 예쁘죠?”

“…그래, 예쁘더라.”

“근데 많이 아파요. 너무 아파서 이렇게 누워 있어요.”


나는 대답 대신 묵묵히 아이를 바라봤다. 고사리 같은 손끝이 떨리고 있었다.


“아저씨, 우리 엄마… 데려가실 거예요?”

“…그래. 곧, 그럴 거야.”


아이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 울 줄 알았는데, 이상하게도 담담했다.


“엄마는 착한 사람이에요. 저를 혼자 키웠어요. 어릴 때부터 아빠도 없었는데, 엄마는 힘들다고 한 번도 말한 적 없어요.”


아이의 목소리가 작게 떨렸다. 그리고 이내 울음이 터졌다.


“근데요… 엄마 없는 세상은 너무 무서워요. 엄마가 내 세상인데, 그 세상이 사라질 것 같아요….”


지금의 우는 모습이 지극히 정상적인 여덟 살 아이의 모습이라고 생각했다. 엄마의 죽음을 앞에 둔 아이의 모습은, 차라리 지금 이 모습이 맞다.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저 그 곁에 앉아 있었다. 사자가 아니라, 한때 인간이었던 나로서.


“있잖아, 왜 사람이 죽으면 ‘돌아가셨다’고 하는지 아니?”

“…왜요?”

“원래 사람은 하늘에서 살다가, 땅으로 잠시 소풍을 오는 거래. 그래서 다시 하늘로 가면, ‘돌아가셨다’고 하는 거야.”

“정말이에요?”

“정말이지. 저승사자는 거짓말 안 해.”


그때 아이의 눈에 눈물이 반짝였다. 그 반짝임이 봄 햇살보다 더 눈부셨다.

그날 밤, 그녀는 세상을 떠났다. 나는 시계를 보며 그녀의 마지막 숨을 셌다.


“커헉—”

“엄마! 엄마!!!”


아이는 울부짖었고, 그녀의 몸은 조용히 멎었다. 나는 영혼이 된 그녀를 향해 말했다.


“한예리 씨. 이제 가셔야 합니다.”


그녀는 자신의 몸을 내려다보다가,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저… 죽은 거죠.”

“네. 이제 괜찮아요. 다 끝났습니다.”


그녀는 울면서 말했다.


“아이한테 너무 미안해요. 아직 여덟 살밖에 안 됐는데, 저 없이 혼자 살아야 해요….”


그녀의 눈물이 공기 속에 흩어졌다.

나는 잠시 망설였다. 그러다 문득 떠올랐다.


‘환생 대신… 천사로 보내면 어떨까.’


“예리 씨.”


그녀가 고개를 들었다.


“환생하면 전생의 기억은 모두 지워집니다. 아들에 대한 기억도요. 그런데… 천사가 되면, 기억을 잃지 않고 아이 곁을 지켜줄 수 있습니다.”


내 말의 의미를 깨달은 그녀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그럼 천사가 될게요. 그 아이 곁을, 영원히 지켜줄게요.”


며칠 뒤, 그녀는 천국으로 떠났다. 눈부신 빛 속에서 마지막으로 나를 향해 인사했다.


“사자님, 정말 감사합니다.”

“원래 안 되는 건데… 이번만 봐드립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아이를 잘 지킬게요.”


그녀는 웃었다. 살아 있을 때보다 더 따뜻한 미소였다. 나는 잠시 그 자리에서 하늘을 바라봤다.

벚꽃잎이 흩날리는 진해의 밤이었다. 그녀의 빛이 천천히 사라질 때, 나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에휴, 또 시말서 각이네.”


그래도 오늘따라 그 말이 조금은 덜 무거웠다.

그리고 발걸음을 돌렸다. 다시 저승으로, 봄을 뒤로 한 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