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화
서로를 바라보는 두 눈에도 당혹스러움이 가득했다.
“첫눈을 왜 이놈이랑 맞아! 아, 짜증 나 진짜!”
“설화랑 첫눈 맞아야 하는데! 아아악!”
둘은 함께 표정을 망가트리며 애꿎은 땅바닥을 거세게 찼다. 불만 가득한 서로의 목소리가 하늘로 치솟으면서 뒤엉켰다. 첫눈이라는 낭만적인 단어와는 극도로 거리가 먼 현장이었다.
지수는 결국 울컥하며 의조에게 소리를 질렀다.
“너 때문에 내 첫눈 버렸잖아! 아, 진짜 기분 잡쳤어!”
“아니, 왜 당연하게 너만 기분이 나쁠 거라 생각하는 거냐? 내년엔 좋은 일이 가득 일어나려나 액땜을 이렇게 해.”
“너 지금 말 다 했냐?”
“아니 장난이야.”
하여간에 성질은 매번 지가 먼저 내놓고서 왜 나만 항복해야 하는 건데. 정색에 바로 꼬리를 내린 의조는 지수의 눈치를 보며, 속으로만 웅얼댔다.
그렇게 집 근처에 다다를 즈음, 의조는 갑자기 핸드폰을 꺼내더니 하늘을 향해 손을 뻗어댔다.
“오, 이 사진 잘 나왔다.”
“웬 사진?”
지수의 눈엔 그저 돌발 행동으로만 보였다.
“이렇게라도 설화 보여주게, 첫눈 왔다고.”
“우욱! 오글거려. 왜? 아주 오겡끼데스까도 같이 보내줘. 설화상! 오겡끼데스까아, 와타시와! 겡끼데에에에스!”
“너 진짜 상관 마라.”
속을 삭삭 긁는 시비에도 의조는 애써 아랑곳하지 않고 사진에만 집중했다. 그 자리에서만, 수십 장을 찍었다.
마치 순애보를 펼치는 것 같은 소년을 옆에서 찬찬히 보더니, 지수는 문득 입꼬리를 올렸다. 장난기가 거의 걷힌 표정이었다.
“…좀 귀엽다, 네가 이런 거 하는 거. 설화도 알아야 할 텐데. 네가 얼마나 좋아하는지.”
그 말에 의조는 속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게나 말이다, 설화의 마음이… 내 쪽으로 와주면 얼마나 좋을까.
지수를 먼저 집으로 보내준 소년은 홀로 길을 걸어가면서 잘 나온 사진들을 골라냈다. 스무 장 가까이 찍은 사진 중에 그나마 사진답다고 할 게 겨우 다섯 장 남짓이었다.
“하… 사진 감각 진짜 없다.”
투덜대면서도, 그는 정성껏 제일 예쁘게 담긴 하늘을 골라냈다. 그리고 잠시 숨을 고르더니, 소녀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설화야! 지금 첫눈 내려, 너도 얼른 봐봐!]
전송 버튼을 누르고 나니, 뒤늦게 쑥스러움이 훅 올라왔는지, 소년은 볼을 긁적이며 혼자 실실 웃었다.
“아… 진짜. 오늘 같은 날에 왜 또 첫눈이 오냐고… 화랑 같이 맞았으면 딱 좋았을 텐데.”
혼잣말처럼 새어 나온 말 뒤로, 짧은 한숨이 붙었다. 크리스마스에 이어, 또다시 아쉬움이 남는 하루였다. 그래도, 답장이 오길 바라는 마음 하나만은 선명했다. 의조는 양손을 주머니에 넣고, 하얀 눈을 밟으며 종종 걸음으로 집 쪽을 향했다.
사람들도 꽉 차 맨바닥을 보기가 힘든 도시의 거리. 저마다의 얼굴엔 설렘과 기대가 가득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 속에서 의조의 표정만은 유독 피어나지 못했다.
“지금부터 카운트! 10! 9! 8!”
10초 뒤면 새해다. 1월 1일이다. 스무 살이 된다. 어른이 된다. 누구에게나 낭만일 수 있는 순간이었지만서도, 의조만은 마치 풍경 속의 이방인처럼 그 안에 섞여 들지 못하는 이유가 있었다.
크리스마스 이후로 설화를 보지 못했다. 연락 또한 닿지 않고 있다. 그 생각 하나가, 사람들 사이에서 소년을 유독 고립시켰다.
“해피 뉴이어!”
“와아! 스무 살!”
“야 난 곧 군대 간다니까!”
주변은 환하게 웃고 떠들었다. 그 속에서 의조만은, 10대의 마지막을 함께 나누고 싶었던 그 아이를 떠올리고 있었다.
“술집 가자, 가자!”
“오늘 필름 끊겨도 서로 책임은 없다, 알겠지!”
흥에 취한 친구들의 발걸음이 술집으로 향했다. 의조도 그 흐름을 따라 걸었다. 그러나 손은 자연스레 주머니 속의 핸드폰을 더듬었다.
[설화야. 새해 복 많이 받고… 스무 살 된 거 축하해. 나중에라도 꼭 보자.]
그리고 밤은 술과 웃음으로 흘러갔다. 소년이 있는 테이블에선 좀처럼 웃음이 끊이질 않았다. 속은 허전했지만, 친구들과 계속 있다 보니 어느 정도는 누그러진 의조도 술잔을 들었다. 취기가 머리까지 오른 소년은 비틀거리며 정류장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너무 많이 마셨다. 집 가자마자 자야겠어.”
걷는 건 가능했지만, 몸은 분명 무거웠다. 발끝이 조금씩 흔들렸다. 정류장에는 많은 사람이 집으로 돌아가기 위한 첫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자리에서 의조는 익숙한 실루엣을 보았다.
“어? 김지수?”
고개를 돌린 지수는 이미 취기가 오른 얼굴로 히죽 웃었다.
“뭐야. 여기서 다 모이네.”
“얼마나 마신 건데?”
“나? 몰라, 이씨. 내가 어떻게 알아.”
“봐도 답 나오네…”
잠깐 실랑이를 하던 중 정류장 앞으로 버스가 도착했고, 둘은 같은 버스에 올랐다. 이윽고 함께 내린 의조는 지수를 집 앞까지 바래다준 다음에야 자기 집으로 향했다.
혼자가 된 소년은 눈 쌓인 길바닥에 자신의 발자국을 새기며 걸었다.
느린 걸음으로 걷는 의조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향해 입김을 불어대는 심심한 장난을 쳤다. 걷다가, 소년의 손이 옷 주머니 안으로 향했다. 몇 초가 안 지나 다시 밖으로 나왔는데, 그 손에는 핸드폰이 쥐어져 있었다. 화면엔 소년이 알고도 보고 싶지 않던 날짜가 뚜렷했다. 1월 1일.
“하아.”
짧은 한숨이었지만, 들려오는 마음은 깊었다.
크리스마스도, 첫눈도, 새해도 모두 설화와 함께하고 싶었는데, 모두 놓쳐버렸다.
“연락은… 왜 안 오는 걸까. 일부러 피하는 걸까.”
입 밖으로 나온 말은 곧바로 가슴을 찌르고 되돌아왔다.
“혹시… 내가 너무 티를 냈나? 그걸 알아채고 거리를 두는 건가… 아니면….”
답을 구해봐도, 끝은 똑같았다. 답은 없었다. 정확하게 말하면, 지금은 알 수 없었다.
“아, 힘들다, 힘들어.”
화면을 꺼버린 소년은 핸드폰을 원래 있던 주머니에 깊숙하게 넣었다. 착잡함이 소년의 마음을 무겁게 눌렀다. 그 무게는 점점 더 소년의 어깨에 내려앉았다.
연락이 오겠지, 오늘은 연락이 올 거야. 그 믿음을 붙들고 있던 것도 이제 거의 끝이 보이고 있었다. 핸드폰을 들여다 보는 거조차 두려워진 지 오래였다. 혹시 정말로, 자신을 피하는 거라면. 그 생각만큼은 아무리 해도 견딜 수가 없었다. 그래서 소년은 애써 믿기로 했다.
사정이 있겠지. 지금은 어쩔 수 없어서 그러는 거겠지. 그게 아니라고 생각하면 가슴이 너무, 아팠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