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스탤지아

20세기 여름의 잔상- 단편 소설

by 전석표

“아 진짜, 이게 뭐라고 기분이 좋네?”


콘크리트로 된 회색 바닥에 나무 벤치 두 개, 난간에는 펜스가 설치돼 있을 뿐 다른 특징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옥상이었지만 남일은 옥상이라는 장소 자체에서 특별함을 느낄 수 있었다. 말하자면, 그것은 남일만의 낭만일지도 몰랐다.

학교를 배경으로 한 영화나 만화에서 항상 학생들은 옥상에 올라와서 직접 싸 온 도시락을 친구들과 함께 먹거나 한가하게 수다를 떨었다. 남일은 그런 장면을 보면서 “나도 해보고 싶다”라고 부러워했지만, 관심이 생긴 초등학교 때부터 여태껏 학교에서는 옥상 문을 개방해 주지 않았다. 안전상의 이유라는 걸 알면서도 아쉬운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가 없었는데, 그 미련이 오늘을 통해서야 시원하게 해소되었다. 하늘이 탁 트인 공간이 주는 감상은 남일의 솔직한 감정을 모두 토해낼 수 있게 했다. 코로 길게 숨을 들이마시고는, 기지개 켜듯 두 팔을 힘껏 펴들며 남일은 소리쳤다.


“야호!”

“야호!”

“으어어어어어억!”


그러나 그 순간, 옥상에서는 자기 목소리만이 아닌 여자아이의 목소리까지 뒤따라 메아리인 것처럼 울려 퍼졌다. 남일의 함성이 삼 초도 못 가서 놀란 비명으로 바뀌었다.

어깨를 크게 들썩이며 옆으로 몸을 돌린 순간, 남일의 눈이 대차게 흔들렸다. 눈동자 안쪽에 나타난 얼굴을 계속 들여다보던 남일은 조금 시간을 들여 떨리는 음성으로 입을 뗐다.


“노… 노지아?”


어떻게 된 건지, 자신의 시야 앞엔 지아가 있었다.


“오랜만.”


지아는 남일을 향해 뒷짐을 진 채 부드럽게 웃으면서 말했다. 그 상황에서 어떤 사람이었든 마찬가지였겠지만, 노지아에게 방심한 모습을 보여버린 바람에 남일의 얼굴빛은 머리 위의 하늘처럼 똑같이 익어버렸다. 언제부터 보고 있었을까. 완전 무장해제 급으로 좋아하고 있었는데.


“언제, 언제부터 와 있었어 너?”

“방금 막 올라왔어.”

“아…….”


남일은 속으로 너무할 만큼 민망해져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잠시 두 사람 사이에는 정적이 맴돌았다. 그 와중에 어딘가 웃음기를 머금은 얼굴로 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지아의 표정은 더더욱 남일을 숨 막히게 했다. 부끄러워 미칠 노릇이었다. 그러다가 안 되겠다 싶어, 남일은 억지로라도 한마디를 쥐어 짜내듯이 말했다.


“아니, 네가 여긴 왜 올라오는데?”

“그러는 너야말로 왜 올라왔어, 여기?”

“나, 나는.”


지아의 차분한 물음에 남일은 조금 뜸을 들이다가 대답했다.


“하늘을, 보고 싶었으니까.”


어색하게 말하는 남일에게 지아도 바로 대답해 주었다.


“나도 너처럼 하늘을 보고 싶어서 왔는데?”

“이게 뭔 타이밍인지…….”

“뒷모습부터가 딱 전남일이더라.”


지아가 은근히 놀리듯이 큭큭 웃으며 말하는 모습에 남일은 민망함이 폭발해 도망치듯 문밖으로 뛰쳐나가려 했다. 하지만 그 순간, 지아가 뒤돌아선 남일의 손을 붙잡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어디 가시려고? 마저 하늘 구경해야지!”

“안 해도 돼!”

“함성까지 내지른 사람이 퍽이나!”

“아, 진짜…….”


남일은 지아에게 뒷덜미를 잡힌 채 눈앞에 보이는 벤치까지 무력하게 끌려갔고, 그렇게 두 사람은 벤치에 나란히 앉게 되었다.

나 참, 어이가 없다 정말. 가시지 않은 뻘쭘함을 떨쳐내려는 듯이 웅얼대는 남일의 옆얼굴을 지아는 잠시 조용히 웃으면서 바라보았다. 그러고 나서 시선을 하늘로 올린 채 지아가 먼저 입을 뗐다.


“야, 괜찮아! 혼자 옥상에 온 게 너무 좋아서 그럴 수도 있지! 그럼. 나는 다 이해해.”


남일은 그 말에 일부러 반응하지 않았다. 그 어떤 말도 위로가 될 수 없었으니. 자신이 얼마나 우스꽝스러워 보였을까. 차라리 옥상에 올라올 생각을 하지 말았어야 했나. 자신을 탓하면서 한숨을 쉬던 남일에게 지아는 또 한 번 입을 열었다. 그리고, 그 물음에는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방학 잘 보냈어?”

“그냥 평범했다.”

“궁금해!”

“열심히 놀고, 자고, 운동하고 그랬지 뭘 했겠어.”


멋쩍은 목소리로 말하면서 무심하게 옆으로 고개를 돌리니 자신을 빤히 보고 있는 지아의 얼굴이 있었다. 언제부터 보고 있었던 거야. 남일은 다시 획 하고 앞으로 시선을 옮겼지만, 그 순간에 지아에게 손수건을 돌려주기로 했던 사실을 떠올리자 눈썹을 위아래로 치키며 절로 말이 튀어나왔다.


“아, 맞다.”

“왜?”


남일의 말을 듣고 옆에서 묻는 지아에게, 남일은 바지 주머니에 접어서 넣어둔 손수건을 조심스럽게 꺼내어 건네주면서 말했다.


“이거, 네가 빌려준 손수건.”

“오! 잊지 않았구나!”


손수건을 받은 지아는 오뚝한 코를 킁킁대며 냄새를 맡다가, 눈을 가늘게 뜨면서 남일에게 물었다. 남일은 즉시 발끈했다.


“음, 혹시 제대로 세탁한 거 맞아? 땀 냄새가 여전히 나는 거 같은데.”

“무슨 소리야! 쓰고 나서 내가, 매번 빨았는데!”

“정말? 그럼 내 손수건을 자주 썼다는 말이네?”

“뭐… 뭐야?”


지아의 말에 남일은 당황한 나머지 말을 더듬기만 하다가 결국엔 제대로 대답하지 못했다. 은근슬쩍 지아의 노림수에 걸리고야 만 남일이었다. 그런 남일을 바라보는 지아의 표정에서 웃음기가 사라지지 않았다. 맞다! 지아는 그 말과 함께 허공에 박수를 치며 입을 열었다.


“대회는! 어떻게 됐어?”


물음 뒤로는 “조용한 거 보니까 결과가 영 좋지 않아?”라고 말하며 의심해보려 하는 지아에게, 남일은 먼저 고개를 내저은 다음에 간단하게 대답했다.


“우승.”

“와! 정말 우승했어? 진짜?” 그 순간, 단번에 커진 지아의 동그란 눈매에는 하얀 빛 알갱이 같은 것이 반짝였다.

“한판승. 그냥 운이 좀 따랐던 거지.”


별 감흥 없이 얘기하는 남일에게 지아는 “대박이다. 네가 진짜 우승할 줄은 몰랐어!”라고 제법 솔직하게 얘기했다. 뭐야? 그 말에 언짢은 점을 발견했는지 남일이 눈썹을 살짝 찡그린 채로 물었다.


“그 말은, 날 과소평가하기라도 했단 거야?”

“아니! 그런 뜻이 아니었어.”


지아는 아차 싶었는지 작은 어깨를 움츠리면서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변명했다. 그다음, 다시 눈과 눈으로 마주하더니 지아는 문득 남일을 향해 오른손을 들어 손바닥을 펼쳐 보이며 말했다.


“하이 파이브!”

“갑자기?”


의아해하며 물은 남일에게 지아는 말없이 고개만 연신 끄덕였다. 남일이 한 오 초 정도 고민한 뒤에야 어색하게 왼손을 들어 올리자, 곧 두 사람의 손뼉이 허공에서 가볍게 부딪쳤다.


“우승한 거 축하해! 전남일.”


그렇게 말하면서 미소를 띤 지아의 얼굴은 발간 노을과 잘 어울리는 모습을 하고 있었다.


“뒷북을 거하게 작렬하고 있어. 벌써 몇 주가 지난 일인데.”

“뭐야? 내가 이렇게 축하해줬는데 그렇게 말해?”


겉으론 덤덤하게 대답한 남일이었지만, 자세히 보면 입꼬리 끝은 미세하게 올라가 있었다. 지아에게 가장 뒤늦은 축하를 받은 남일은 썩 나쁘지 않은 기분이었다. 그런 사실을 눈치채지 못한 지아만이 벤치에서 몸을 불쑥 일으켜 씩씩대다가 “흥!”하고 보란 듯이 콧김을 불고서 다시 자리에 앉았다.


“네가 삐삐만 있었어도 나도 제때 축하해줄 수 있었어! 어쩌면, 내가 제일 빨랐을지도 모르지!”

“알겠어, 미안해, 미안, 축하해줘서 고마워, 그 손수건도 잘 썼어.”


그제야 원하는 대답을 들었다는 듯 지아는 흡족해하는 표정으로 “그럼 그럼”이라고 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가, 왜인지 지아는 손수건을 다시 꺼내고는 남일에게로 내밀며 말했다.

“그럼, 이 손수건은 계속 네가 써.”

“내가?”


지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응, 이 손수건이 앞으로도 네 행운의 손수건이 돼 줄 지도 모르잖아.”

“나 참, 순수하다고 해야 할지, 나 미신같은 거 안 믿는다.”


어느새 손바닥 위에 곱게 포개진 손수건, 일부러 툴툴거리는 남일이었지만, 손수건은 그렇게 다시 남일의 주머니로 들어갔다. 그런 모습을 흡족한 듯 미소 지으며 바라본 지아에게 남일이 묻게 되었다.


“넌 방학 때 뭐 안 했어?”

“어? 나?” 물음에 놀랐는지 지아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남일을 바라보았다.

“할머니네 내려갔잖아. 담양. 어휴, 참 멀리도 갔다.”

“단양, 단양, 단양! 단양이라고!”

“그래 단양. 가서 뭐 했는지 나한텐 뭐 얘기해줄 거 없어? 친구들이랑은 삐삐로 그런 얘기 실컷 나눴을 거 아냐.”

“너 궁금해?” 지아가 흐물흐물 입꼬리를 올리며 물었다. 남일이 장난스레 “얘기 안 해줘도 뭐 그만이긴 한데”라고 건성으로 반응하며 귀를 후비자 지아가 남일의 팔뚝을 주먹으로 때렸다.

“그래, 재밌는 얘기 있으면 좀 들려줘 보던가.”


맞고 나서야 대답을 정정한 남일에게, 지아는 물어봐 준 것에 기쁘기라도 한 것처럼 신이 난 얼굴로 재잘대기 시작했다.


산책길에서 본 논밭에서 뱀이 튀어나오는 바람에 필사적으로 도망친 일.

소시지를 먹으면서 걷다가 한참 뒤에 뒤를 돌아보니 고양이 세 마리가 뒤따라오고 있었던 일.

밤하늘에 떠오른 별이 너무나도 많아 마루에 앉아 감상하고 있다가 손등에 거미가 내려앉아 있던 건 모르고 있었던 일.

일 년 만에 다시 본 할머니 이웃집 진돗개가 자신을 보자마자 알아보지 못하고 크게 짖어서 온종일 상심이 컸던 일.

할머니와 읍내로 나가 장을 보는데 잠시 한눈판 사이에 할머니가 사라지는 바람에 심장이 철렁했던 일.

할머니 어렸을 적 사진을 보는데 지금의 자신과 너무 똑같이 생겨서 놀란 일.

밤에 혼자서 산책을 나섰는데 반딧불이가 엄청 많이 모여있는 곳을 보고 너무 좋아 거기에서 뛰어놀았던 일.

잠자리를 잡으려고 잠자리채를 힘껏 휘둘렀다가 실수로 벌집을 건드린 바람에 소리를 지르며 도망쳤던 일.

할머니 저녁밥 차리는 걸 도와주려고 했다가 하나도 도움이 되지 못해서 결국 야단만 맞았던 일.

저녁 하늘의 별똥별을 보고서 그 자리에서 바로 소원을 빌었던 일.

마루에 누워있다가 절로 낮잠이 들었는데 저녁 시간에 돌아온 할머니가 자신을 보자마자 기절한 걸로 오해하고 뺨을 수차례 맞은 일.

닭백숙을 해주시길래 맛있게만 먹었는데 그 닭이 병아리 시절부터 보았던 닭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기분이 묘했던 일.

할머니가 세상을 떠나는 꿈을 꾸고 울면서 깬 자신을 할머니가 계속 품에 안아주었던 일. 여름임에도 그 품은 너무나도 따뜻해서 편안했다고. 나란히 앉은 옥상 나무 벤치에서 지아는 남일과 눈동자를 마주하며 자신의 방학 이야기를 아낌없이 들려주었다.


남일은 그 시간이 한 시간을 넘어갔다는 걸 알았을 땐 놀랐지만, 중간에 멈추려고 말하기에는 이미 계속 재잘대고 있는 지아의 표정은 너무나도 기분 좋아 보였다. 아마 삐삐를 통해 연락을 나누었다면, 그 너머의 표정은 이런 얼굴이 아니었을까. 그것을 지금 눈앞에서 보고 있는 거라고 생각하니 남일은 지아의 얘기를 끝까지 들을 수밖에 없었다. 특별한 건 없이 소박하고 사소한 이야기들. 어쩌면 그렇기에 거부감 없이 편안하게 와닿는 말들. 남일은 그렇게 귀를 기울였고, 두 사람의 하늘은 보라색으로 물들어갔다. 서로의 얘기를 나누는 동안 옥상은 두 사람만의 세계가 되는 것을 허락해주었다.


“아이고! 벌써 시간이 이렇게!”

“실컷 얘기 잘만 해놓고 이제야 새삼스레 뭘 그래?”

“그래도! 이렇게 시간이 후딱 흐를 줄 알았나.”


남일은 어이없다는 듯 헛웃음을 지으며 말했지만, 지아는 정말로 놀란 듯했다. 이윽고 서둘러 자리를 정리한 두 사람은 같이 옥상 문을 열고 나와 계단을 내려갔다. 내려가는 동안에도 얘기는 이어졌다.


“다시 생각해봐도 네가 옥상을 갈 거라곤 생각도 못 했네.”라고 말한 지아에게 남일이 그 전까지의 상황을 설명해주자 지아는 또 한 번 놀란 얼굴로 “그래?”라고 남일에게 말했다.


“오늘은 점심에 애들이 거의 안 왔어. 그래서 굳이 끝나고 와서 정리할 것도 없겠다 싶어서 그냥 쉬었지. 나한테 손수건 돌려주려고?”


그 물음에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 남일에게 지아는 “그랬던 거였군”이라고 말하면서 밝게 웃고는 고개를 두어 번 끄덕였다.

본관 밖으로 나온 두 사람은 그 자리에서 바로 인사를 나눴다. “바래다주지 않을래?”라고 말할 것 같았던 예상과 다르게 지아는 “오늘은 체육관 안 가? 더 늦기 전에 조심해서 가”라고 말하면서 남일을 향해 먼저 손을 흔들었고, 남일도 “어, 간다. 너도 잘 가고”라고 대답하면서 손바닥이 보이도록 들었다. 그런 뒤에 뒤돌아서 정문 쪽으로 걸어가려는 척하던 남일의 뒤통수에는, 오 초 정도 매우 짧은 시간이 지났을 때 지아의 부름이 들려왔다.


“전남일!”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자 지아는 이렇게 말했다.


“2학기에도 잘 지내보자잉.”


그런 말을 건네는 지아의 얼굴에는 지아 자신만의 순수한 웃음기가 떠올라 있었다. 남일이 어떤 말을 건네려 하기도 전에 지아는 어떠한 대답을 들으려고 한 말은 아니었다는 듯 바로 몸을 획 돌리며 앞으로 걸어갔다. 그 걸음은 굼뜬 점 없이 가볍고, 기분이 좋아 보였다. 뒤에서 하나로 산뜻하게 묶은 긴 머리칼의 주인은 서서히 남일의 시야 안에서 작아져 가더니 곧 풍경 가운데로 빠져들며 사라졌다. 남은 자리에서는 부드럽고 잡다한 주변 소리만이 다시 남일의 귓가를 두드렸다. 한참 그 자리에 머물고 있던 남일은 머릿속에서 어느 말을 연신 되풀이하다가 그것을 입 밖으로 내뱉어냈다. 입꼬리는 아주 미세하고 올라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