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로 끝나기 전에

20화

by 전석표

고등학교 졸업식 날.

수많은 사람들의 얼굴에 스무 살의 기대감과 떠나보내야 하는 10대의 아쉬움이 공존해 있었다.

마지막이 되는 교실에서 사내는 자신의 친구들과 같이 사진을 남겼다.

“꽃미녀들 찍어줬으니까 이제 추남 라인 들어와! 이 사진, 특별히 폴라로이드 카메라로 찍는 거야! 사진은 그냥 기념하는 의미로 쌤이 가질게!”


교실 뒤편에 옹기종기 모인 친구들이 저마다 포즈를 취했다. 친구들 무리 가운데에 둘러싸인 사내도 어색한 얼굴로 엄지만 치켜들며 입꼬리를 올렸다.


“송의조는, 인조인간이냐? 애들 다 웃는데 활짝 웃어!”


선생님의 말에 사내는 고개를 천천히 돌리며 반문했다.


“하, 요즘 세상 닮은 표정밖에 안 나와서요.”

“입 닥쳐, 찍는다! 하나, 둘, 셋!”


순간을 담아내는 셔터음이 교실 안에 퍼졌다.


“쌤! 한 장만 더요. 눈 감았단 말이에요!”

“그래그래, 이번엔 포즈를 좀 바꿔봐! 준비됐으면 찍는다. 하나, 둘, 셋!”


여러 번의 셔터음이 울리고 나서 사내는 친구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이제 진짜 졸업이네… 스무 살이네.”


사내가 혼잣말처럼 말했다.


“그리고… 입대를 명! 받았습니다! 추웅! 쌔앵느아!”

“뭐야? 야!”


바로 옆에서 장난스럽게 거수경례를 따라 하며 끼어드는 목소리. 지수였다.


“넌 네 친구들이랑 사진 찍어.”

“이미 다 찍었거든요? 설마 나랑은 안 찍겠다? 와… 서운할 뻔.”

“나 그렇게 마음 좁은 사람―”

“입니다. 너 그렇게 마음 좁은 사람입니다.”

“말꼬리 좀 그만 잡으라고…”


투덜대는 사내를 보며 지수는 아무렇지 않게 손을 흔들었다.


“쌤! 저 송군인이랑 사진 좀 찍어주세요! 못생긴 애 옆에서 찍으면 안 그래도 고운 얼굴이 더 돋보이겠지요?”

천연덕스럽게 사내의 옆자리를 차지한 그녀는 카메라를 바라보며 포즈를 취했다. 못 이긴 의조도 어색하게 입을 꾹 다문 채 엄지를 들며 포즈를 잡았다. 표정이랑 포즈가 그것밖에 없는지 사진 찍을 때마다 똑같은 모습이었다. 셔터가 찰칵 하고 닫힌 뒤, 지수가 웃으며 말했다.


“쌤, 저 예쁘게 나왔죠?”

“지수야, 넌 항상 예쁘게 나오지. 근데 의조는 좀, 레고 장난감같이 나왔다.”

“호박에 줄 긋는다고 수박 되진 않잖아요. 저만 잘 나오면 됐어요! 그 사진은 제가 가져갈게요, 쌤!”


그녀의 말장난엔 이미 해탈의 경지에 다다랐는지 사내는 평온한 달마의 표정으로 고개만 내저었다.

복도로 나온 사내는 내려가기 위해 중앙 계단으로 걸었다. 계단으로 가면서 앞을 바라보던 사내의 시선은 밑으로 내려앉았다. 그러는 와중에 지수가 의조의 옆구리를 콕 찔렀다.


“야, 오늘 저녁에 우리 엄마 아빠가 너 데리고 같이 밥 먹재. 그러니까, 시간 비워? 애들이랑 술 퍼먹으러 나가지 말고, 알았냐?”

“어… 그럴 수는 없을 것 같은데. 술은 안 마시는데, 오늘 경험치 6배 이벤트 있어서, 애들이랑 종일 피시방―”

“뭐? 너 우리 부모님 부탁을 거절하겠다는 거야?”

“…라고 말할 뻔했고, 갑니다. 가야죠, 당연히.”

“그래. 말 잘했다.”


건물 밖으로 나오자마자 곧바로 정문 문턱으로 향하는 지수와는 다르게 사내는 문득 걸음을 멈춰 섰다.

이 시간이 지나면, 다시 여기 올 일이 있을까. 내 10대의 마지막 기억만이 남아있겠지. 뒤돌아선 사내는 말 없이, 학교를 바라보았다.

운동장에는 아직 학생들과 그 가족들, 다른 친구들이 종종 있었지만, 건물 안은 사람들이 빠져나가 아까의 모습이 온데간데없이 조용했다.


“야 뭐해! 안 가?”


지수가 멀리서 손을 흔들었다.


“어…!”


사내는 잠시 무언가를 고르고 있었다. 그리고 짧게 결정을 내려 말했다.


“너 먼저 가. 나… 뭘 두고 왔나 봐.”

“뭐? 그런 건 빨리 말하지! 알겠어, 이따 전화해!”


지수가 멀어지고, 입구엔 그만 혼자 남았다. 사내는 숨을 한 번 들이쉬었다. 거짓말이라는 건 스스로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발걸음은 이미 학교 안으로 향하고 있었다.

텅 빈 복도를 향해 천천히 계단을 올라가면서, 사내가 낮게 중얼거렸다.


“…그냥, 마지막으로. 교실이랑 복도… 한 번만 찍고 가자.”


1층, 2층. 그렇게 3층까지 올라왔다. 불과 몇십 분 전과는 전혀 다른 조용한 복도의 풍경이었다. 그럼에도 사람마다의 온기만은 아직까지 남아있는, 아련한 복도. 의조는 자신의 반이 있을 오른쪽 맨 끝이 아닌 전혀 반대의 왼쪽으로 몸을 틀었다. 3학년 2반. 권설화의 반. 발걸음이 굳게 잠긴 교실 앞에 멈춰 섰다.

사내는 창문 너머의 교실 안을 들여다보았다. 한 눈에 들어오는 건 그 애가 썼던 책상 자리였다.


그저 그 애의 빈 자리를 말없이 바라만 보다가 주머니에 있는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열리지 않을 창문을 앞에 두고 그대로 사진을 찍었다. 사진을 찍고 나서도 사내는 물끄러미 교실을 바라보았다. 조용히 책을 읽고 있었을 것만 같은 그 애의 빈 책상을 바라보다가 작게 입꼬리를 올리며 걸음을 뗐다. 외로워진 복도에게 사내의 발소리를 천천히 들려주었다.


사내와 지수의 교실은 맨 끝에 있었다. 그 앞에서 마지막으로 텅 빈 복도를 찍고 갈 생각이었다.

조금씩 확실하게 나아가, 자신의 반으로 다다르고 있었다. 그런데, 가까워지면서 아까와는 다른 무언가가 눈에 보였다. 뒷문이 조금 열려있었다.


“…뭐야. 우리 반만 문을 안 잠갔나. 마지막까지 참 일정하네.”


딱히 대수롭지 않게 여긴 사내는 열려있는 겸 들어가 봐야겠다는 기분이 들었다. 그런 손짓이 좁게 열려있는 문을 바짝 밀었다.

교실 안으로 들어오자, 사내는 놀란 얼굴로 걸음을 멈췄다.


“아…?”


자신의 앞에. 그 애가 서 있었다.


“어….”


설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