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샥 축글 _ 열 한 번째 글
'천만다행'이라는 표현이 가장 적절할 것 같다. 대한민국 대표팀은 우즈베키스탄을 홈으로 불러들여 펼친 월드컵 최종예선 5라운드에서 졸전을 펼친 끝에 후반 84분 터진 구자철의 역전골에 힘입어 2:1 승리를 거뒀다. 패배해도 변명거리가 없을 답답한 공격력과 불안한 수비력이 오늘 경기에서도 지속됐지만, 슈틸리케 호는 다행히도 오늘 경기의 목표였던 승점 3점을 획득하는데 성공했다.
5경기 3승 1무 1패라는 성적과 함께 올해의 최종예선 일정을 마무리한 슈틸리케 감독을 향한 두 가지 시선이 대립하고 있다. 오늘 승리를 통해 '생명 연장'에 성공한 슈틸리케 감독을 조금 더 믿어줘야 한다는 '유임파'와 오늘의 승리에도 슈틸리케 감독을 경질해야 한다는 '경질파'가 팽팽히 대립하고 있는 양상을 띄고 있다.
글의 결론을 미리 스포일러하자면, 필자는 내일 아침 "[오피셜] 슈틸리케 감독 전격 경질"이라는 헤드라인의 기사가 네이버 메인에 올라오기를 희망하는 입장이다. 대표팀이 러시아로 가기 위해서, 혹은 러시아에서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서의 실패를 또 다시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는 슈틸리케 감독의 미래에 대한 신중한 결단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필자는 두 달 전, "슈틸리케는 융통성 있는 감독이다."라는 제목의 글을 작성했었다. 최종예선 3-4차전을 위한 대한민국 대표팀의 명단이 발표된 직후, 슈틸리케 감독이 그간의 비판 여론에 대해 수긍하고 본인의 잘못을 인정하는 모습을 보며 그를 융통성 있는 감독이라고 평가했었다. 하지만 카타르 전부터 오늘 우즈벡 전까지 대표팀의 경기를 지켜본 결과, 슈틸리케 감독의 융통성은 그게 전부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술적 융통성의 부족, 그것이 슈틸리케 감독의 옹호자였던 필자가 '경질파'로 돌아서게 됐던 계기이다.
대한민국은 월드컵 출전에 의의를 두는 나라가 아니다. 2002 월드컵 4강 신화 이후 대표팀을 향한 팬들의 눈높이는 급격히 높아졌다. 대표팀은 팬들의 눈높이에 언제나 완벽하게 부응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팬들의 눈높이를 좇으며 차근차근 세계무대에서의 경쟁력을 키워나가는 중이다. 2006 독일 월드컵에서는 토고를 상대로 월드컵 원정 첫 승이라는 성과를 이뤄냈고, 2010 남아공 월드컵에서는 원정 첫 16강이라는 업적을 달성했다. 비록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서는 홍명보 호가 1무 2패의 성적을 거두며 실패를 경험했지만, 그 실패가 2018 러시아 월드컵을 준비하는 대한민국의 눈높이와 경쟁력을 2002 월드컵 이전으로 돌려놓지는 않았다. 대한민국의 2018 러시아 월드컵 목표는 여전히 원정 첫 8강 진출이다.
하지만 슈틸리케 감독은 러시아에 가기도 전부터 고전을 펼치고 있다. 오늘의 승리를 통해 조 2위로 올라서며 조금의 여유가 생긴 것은 사실이지만 아직 월드컵 진출을 확신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중국, 시리아, 카타르, 이란, 우즈베키스탄을 상대로 매 경기 고전을 펼치고 있는 슈틸리케 호의 '무전술 경기력'이 가장 중요한 문제점이지만, 필자는 또 다른 문제점으로 슈틸리케 감독의 미미한 야망에 대해 지적하고 싶다.
"선수들이 경기 결과를 뒤집은 점에서 만족한다. 실점 이후에 냉정함을 잃지 않고 실점 전 플레이를 선보이면서 정당한 승리를 거뒀다. 상대보다 더 많이 뛰고 볼 점유율을 높게 가져갔다. 세밀함이 떨어질 수 있지만, 전체적으로 만족스럽다."
슈틸리케 감독은 오늘 경기에 대해 스스로 '만족스럽다'라는 평가를 내렸다. 우즈베키스탄을 상대로 가까스로 역전승을 거둔 우리 대표팀의 모습이 정말 만족스러운 모습인지 강한 의문이 든다. 상대는 우즈베키스탄이었다. 대한민국은 대표팀이 역사를 통틀어 우즈베키스탄에게 패배한 적은 단 한 번뿐이었다. 그런 상대를 홈으로 불러들여 어렵게 거둔 승리에 만족을 표한 인터뷰는 실망스러울 뿐이었다.
"감독으로서 말이 필요 없을 정도로 완벽한 경기를 펼쳤다고 생각한다."
지난 금요일, 캐나다 전 이후 슈틸리케 감독이 했던 말이다. 결과만 보면, 대한민국 대표팀이 캐나다를 압도하며 승리를 거뒀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캐나다의 객관적인 전력이나 캐나다가 보여줬던 경기력을 감안한다면, '완벽한 경기'라고 평가하기에는 적절하지 않았다. 경기 내내 캐나다를 압도하고도 두 골 밖에 기록하지 못한 점은 분명히 아쉬운 부분이었다. 하지만 슈틸리케는 스스로 완벽한 경기였다고 평가했다. 대표팀 감독의 평가 기준이 팬들의 기대보다 아래에 있음을 스스로 드러낸 것이다.
리더의 이러한 태도는 팀 전체에도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 아시아를 통틀어 가장 뛰어난 선수 층을 보유한 대한민국 대표팀의 감독이라면, 더 높은 곳을 바라보아야 한다. 지금의 대한민국 대표팀에는 '우리는 충분히 더 좋은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는 팀이다.'라는 자신감을 심어줄 수 있는 야망 있는 감독이 필요하다. (물론 슈틸리케 감독보다 역량이 높아야 하는 조건이 선행되어야 한다.)
우즈베키스탄에게 고전 끝에 승리한 경기력이 만족스럽고 캐나다를 상대로 거둔 2:0 승리는 완벽하다고 스스로 평가하는 감독에게 계속해서 우리 대표팀을 맡기는 것에 심한 우려가 든다. 지금까지 아시아 최종예선에서 보여준 무기력한 모습만으로도 충분한 경질 사유가 될 수 있지만, 능력과 더불어 야망도 없는 감독에게 시간을 더 줘야할 이유는 없다.
러시아로 가는 길을 보다 순탄히 하기 위해서도 슈틸리케 감독보다 더 능력 있는 감독을 모셔야 하며, 러시아에서 우리의 눈높이에 맞는 또 다른 성과를 달성하기 위해서도 슈틸리케 감독보다 더 야망 있고 능력 있는 감독을 찾아야만 한다. 슈틸리케 감독의 대한민국 생활에 마침표를 찍어주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