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의 자유를 지키는 직업적 사명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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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종 영어 공부의 일환으로 자막 없이 영화를 보려고 하는데 <더 포스트>만큼은 장렬하게 실패했다. 번번이 메릴 스트립의 고급스러운 옹알이 화법은 장벽이 된다. 심지어 정치, 시사용어가 마구 등장하니 결국 자막을 켤 수밖에. 영화는 실화를 기반으로 '펜타곤 페이퍼’를 보도한 워싱턴 포스트와 그 오너 케서린 그레이엄을 다뤘다. 잘 몰랐던 베트남 전쟁 관련 역사와 미국 언론 투쟁기를 접할 계기가 되어 감상 후엔 이런저런 검색을 하며 상식에 살을 덧붙여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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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케서린)는 남편의 부재로 의도치 않게 워싱턴 포스트의 수장 자리를 맡게 되고 회사의 중역들 의견에 휩쓸리며 그야말로 마스코트 같은 존재로 전락한다. 벤 브래들리가 '펜타곤 페이퍼' 특종 건을 들고 오기 전까진 말이다. 30년에 걸쳐 은폐된 전쟁과 관련된 진실은 정부의 아킬레스건이었고, 회사의 존폐가 걸려있는 문제 앞에서 케이는 안온한 생활이나 지위보다 신문사로서 조직의 본질을 우선하며 진짜 언론인으로 거듭난다. 여성 리더가 희귀한 시절, 마지막에 대법원을 나서는 주인공과 그를 바라보는 여자들의 동경의 눈빛은 시대가 변하고 있음을 암시한다. 다른 이사진과 달리 진지하게 케이와 안건을 공유하는 브래들리가 일궈낸 언론의 자유 역시 값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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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심은경이 교포 역할로 열연한 <신문기자>라는 영화도 떠올랐다. 실시간으로 모든 것이 공유되는 시대에도 여전히 은폐되는 진실은 존재하고 권력으로 대중의 눈을 가리는 나라도 많다. 언론인을 묶어 '기레기'로 멸칭하는 사람도 많지만, 여전히 펜의 힘을 믿고 세상을 바꿔나가는 그들의 사명감 덕에 그런 표현의 다양성마저도 보장되는 것이 아닐까. 커리어가 인생의 전부는 아니지만, 긍정적인 변화를 만들어내는 직업적 사명감에 대한 고민이 깊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