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민 파파 : 실행력은 만점, 배려심은 빵점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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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민 캐릭터에 빠져 굿즈를 모으다 보니 그 안의 서사가 궁금해졌다. 토베 얀손의 무민 연작소설을 하나둘 도장 깨듯 읽어나가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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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민 밸리에서 가족과 함께 누린 삶은 평온하다. 하지만, 이런 일상은 과거에 무민 파파가 그린 미래와는 달랐다. 그는 배낭에 다 들어가지 않는 짐을 소유하고 더 이상 모험을 떠나지 않는 친구들과 자신은 다르다고 생각했더랬지. 그 시절의 자신이 오늘의 현실을 비웃는다고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무민 파파의 꿈이었던 바다 항해와 드림하우스를 향해 짐을 싸맨 식구들은 등대섬에 자리 잡는다. 새로운 곳에서 존재감을 되찾고자 무민 파파는 사방팔방 손을 걷어붙이는데 그중에서도 등댓불은 애를 먹이는 대상이다. 오랜 시간 그가 고군분투했지만, 결국 바다를 비추는 한 줄기 빛은 전 등대지기이자 현 어부가 돌아오고 나서야 되살아난다. 결국 각자 잘하는 것이 다르고 맞는 자리는 따로 있다는 걸까. 등대지기처럼 많은 것을 경험하고 자신에게 어울리는 자리를 찾아 돌아오는 것 또한 용기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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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증의 캐릭터 미이는 볼수록 영악해서 놀랍다. 촌철살인을 날리다가도 타인의 비밀과 곤경을 순수하게 즐기는 모습은 <킬링 이브>의 빌라넬과 겹쳐 보인다. 무민 부부가 종족을 초월해 친구의 아이를 입양하게 된 경위는 궁금하고, 미이의 말썽까지 포용할 수 있는 인내심은 경이롭다. 무민 시리즈는 피가 통하지 않은 가족, 다양한 형태의 가정을 동화 곳곳에 등장시키는데, 그래서인지 시대를 훌쩍 앞서 나간 느낌이다. 다만, 살림살이에 정성을 다하고 가족, 친구, 낯선 이까지 살뜰히 보살핀 무민 마마의 마음을 식구들이 헤아리지 못하는 건 좀 야속하다. 근 반세기 전 핀란드에도 가부장제가 뿌리 깊게 자리했던 걸까. 무민 마마의 꿈은 뭐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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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크라는 미지의 공포와 마주하는 무민만의 작은 모험도 인상적이다. 두려움을 이겨내고 밤마다 그로크를 찾아가 무민은 천천히 관계를 형성한다. 그러면서 스스로 성장하고 그로크마저 변화시킨다. 편견을 조금씩 허물면 존재의 본질과 마주할 수 있다는 교훈을 순두부 같은 트롤 친구가 일깨워주다니. 역시 무민은 훌륭한 삽화만큼이나 담는 메시지도 깊다! (최강 콩깍지 장착 중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