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세랑 월드에서 평생 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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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여운 미스터리 <보건교사 안은영>, 동화적 상상력이 빛나는 <덧니가 보고 싶어>, 포근한 SF 단편집 <목소리를 드릴게요> 등 정세랑의 작품은 다 사랑스럽다. 에세이 <지구인만큼 지구를 사랑할 순 없어>도 특유의 색깔을 담아 환경에 대해 안온하지만 단호하게 이야기한다. 이 중에서 <시선으로부터>를 우선 정리하는 이유는 심시선이라는 뿌리에서 뻗어나간 이상적인 가족을 통해 재미뿐 아니라 삶에 대한 통찰도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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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을 기점으로 모든 혈육을 잃은 심시선은 하와이, 뒤셀도르프를 거쳐 고국으로 돌아오는 인생의 여정에서 자신이 선택한 남자들과 가정을 이룬다. 그 과정은 자신이 누군가의 대상으로만 소비되지 않으려 혹은 함부로 다뤄지는 상황에 자신을 방치하지 않으려는 절박한 선택의 연속이다. 피가 이어지든 아니든 그의 영향을 듬뿍 받은 자녀, 손주들은 험난한 세월을 헤쳐 살아낸 삶의 훈장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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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주기를 맞아 평범하지 않은 방식으로 심시선을 기리기 위해서 심시선 주니어들이 하와이에 모였다. 사실 이들은 외부의 상황과 겪은 사건으로 인해 각기 다른 어려움을 안고 산다. 더없이 풍요로워 보이는 21세기에도 여전히 차별과 폭력은 존재하고 이는 개인의 가치관을 뒤흔드는 흔적을 남기기도 한다. 그럼에도 79년에 거쳐 자신만의 색깔을 세상에 가감 없이 드러낸 심시선처럼 이 대가족에겐 충분히 아파하고 다시 일어서는 힘이 있다. 시선으로부터 퍼져나온 이 유기적인 에너지는 끈끈하게 연대하는 애정이 되어 읽는 사람의 마음도 녹이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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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작가의 말에서 정세랑 작가는 작품 속 인물 심시선처럼 평생 글을 쓰겠다는 문장을 남긴다. 이는 반가운 성명이자 지면에 새겨진 선언이다. 장르와 형식을 넘나들며 따스한 상상과 사회의 민얼굴을 끊임없이 결합해온 정세랑 월드에서 오래오래 살 수 있다는 희망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