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홀러]16편, 절친송별파티

안녕~!

by 투잡남

호주 다윈에 와서 내가 가지고 있던 편견이 산산조각나듯 깨져버렸다. 그건 바로


20살이 넘으면 베스트 프렌드를 사귈 수 없을꺼야


말그대로 편견이었다. 정말 좋은 친구를 사귀는데 있어서 내 나이는 상관이 없다. 내가 그 친구와 친구됨을 원하는지 상대편도 그에 대해 동의하는지에 대한 결론만 있으면 된다. 동의를 결정하게 된 순간 고등학교 친구처럼 몹시 친하게 지낼 수 있게 된다.


나의 경우 두 번째로 살게된 쉐어하우스에서 만난 룸메이트가 그런 존재였다. 다윈이라는 동네가 워낙에 좁아서 급박하게 떠나지 않는 이상 한 두 번쯔음 시내에서 마주치게 되어 있다. 호주에 오기전 4년 전 태국에서 배낭을 한국인에게 도둑맞았던 기억이 있어서 될 수 있는 한 한국인과는 말을 섞지 않으려 했었다. 해외여행 중에 안타깝게도 가장 위협적인 존재가 같은 한국인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있을만큼 한국사람 중에서 좋은 사람을 찾기가 힘들다.


나의 룸메이트는 그냥 맥도날드 지나치다가 얼굴을 보게 됐었다. 그냥 그런 사람이 있는갑다 하고 시내를 지나다녔다. 그런데 으외로 동선이 자주 겹쳤다. 동선이 자주 겹치다가 교회에서 만나게 되었다. 서로 낯선 땅에 온 것이기도 했고 몇 번 대화를 나누다 보니 '아 생각보다 괜찮은 사람이구나'라고 생각이 들었다. 그 당시는 서로 떨어져 살고 있었는데 내가 대만 쉐어 하우스에서 문제를 겪자 쉐어하우스를 같이 살자는 것이 아닌가?


어차피 교회 집사님께서 운영하시는 곳이었기에 살아도 별 문제는 되지 않겠다 싶었다. 그래서 함께 짧은 기간 동안 즐겁게 지냈다. 파티도 같이 열고 대만친구를 또 어떻게 사귀어서 동행하기도 하고 자주 어울려 지냈다.


시간이 흐르다 보니 어느 덧 룸메이트는 한국으로 귀국을 결정하게 되었다. 알게 된지 오래되지 않은 기간이었지만 정이 많이 들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찌저찌 다윈에서 만난 대만친구와 룸메이트는 결혼하여 지금은 아이를 낳고 행복하게 잘 살고 있다. 아무튼 그 당시에 곧 떠날 상황이었기에 한 번도 가지 않았던 스카이 호텔 카지노에 있는 식당에서 친구들과 밥을 먹기로 했다.


곧 떠나갈 친구들도 제법 있었던 터라 서프라이즈 선물을 준비하기로 했다. 바로 개개인마다 사진을 모으고 편집해서 액자로 만들었다. 오피스워크에서 액자를 구매하고 출력을 하는데 액자가 더럽게 비쌌다. 3년 전이었음에도 호주 달러 8$에 육박하는 가격을 자랑했다. 국내에서 현재 3천원을 넘지 않는 액자임에도 다윈이라는 지역의 특성과 더불어 높은 인건비를 보여주는 가격대였다. 물론 다윈지역의 시급이 기본 18불이상이었기에 물건을 구매하는데 큰 불편함은 없었다. 그래도 공산품의 가격이 만만치 않음을 몸소 실감했었다. 친구들과 중간지점에서 합류하여 여권을 내고 호텔로 입성했다. 화려한 빠징코들을 물리치고 식당으로 바로 직진. 카지노로 벌어들인 5천만원을 손해본 형을 알고 있었기에 카지노 따위에는 눈길조차 주지 않기 위함이었다.


케잌치즈.jpg


여러 요리들이 있었는데 애슐리에 비하면 참 안타까운 구성이 아닐 수 없었다. 그래도 이것저것 건져다 맛있게 먹었다. 마지막 후식으로 케잌과 맛있어 보이는 치즈를 골랐다. 케잌은 차라리 원래 단맛에 먹는거고 초코맛이라 잘 먹었다.


그.런.데


치즈를 먹고 바로 내 혀와 비강에 충격이 일었다. 어떻게 하수구 썩는내가 치즈에서 나는건지 이해가 안됐다. 치즈가 맞나?! 싶을 정도로 충격적인 맛이었다. 생긴건 치즈 특유의 고소한 맛이 나겠지 싶었는데 그런 맛이 존재할 수 있다는 걸 그날 또 알게 되었다. (그탓인지 엥간히 이상한 음식이 아니면 요새는 맛있다고 느낀다)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왠지 지금이 아니면 단체사진 하나 못남길 것 같아서 선물을 증정한 후에 한 장을 남기게 되었다.


송별파티.jpg


다들 서른이 채 되지 않은 가장 젊은 날에 다윈이라는 곳에서 다 함께 행복한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또 다시 그 때와 같은 젊고 즐거웠던 순간은 오지 않겠지만 그때의 추억을 오래도록 추억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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