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치필드 여행을 다녀온 후 다시 일자리를 구하는데 매진했다. 집 앞에 있던 커피샵에서 바리스타를 뽑는다길래 이력서를 제출했다. 면접보러 오라했고 도착하자마자 커피를 만들어 보란다. 그래서 배웠던 스킬을 총동원해서 만들었다. 실패했다. 순간적으로 직감했다.
이게 나의 처음이자 마지막 면접이겠구나.
거품이 엉망진창이라 만든 것은 내 몫이 되었다. 누군가 바리스타가 되었다길래 나도 될 수 있지 않을까 싶은 기대감으로 면접을 얻었는데 생각처럼 잘 되지 않았다. 아무래도 실력의 문제가 아닐까 싶어 꼭 가정용 커피머신기를 구매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행복한 별빛미래를 그려나가던 그 어느날 쉐어를 함께하는 못생긴 여성 대만인들로 인해 굉장히 화가 생겼었다. 그 타이밍에 아는 한국인이 생겼고 함께 살겠냐는 제안을 받아 들여 곧장 이사를 감행했다. 이사갈 곳이 생각보다 멀어서 당황했지만 3시간에 걸쳐 이사를 마쳤다. 그러고 나서 얼마나 속이 후련하던지...
커피머신기가 캐슈리나에는 없고 팔머스톤에만 있다길래 찾아 보았다. 정말 열심히 찾았다. 마치 인터넷 세상에서 보물을 찾는 것처럼 열심히 뒤적거렸고 대망의 구매일이 되었다. 호주는 한국처럼 택배시스템이 좋지 못하다. 본인이 이케아가서 물건 사오듯 직접가서 구매해야 한다.
그렇게 260불에 판매하고 있는 드롱기 가정용 머신기를 구매했다. 머신기만 있어서는 커피콩을 갈 수도 없고 대부분 그라인더가 카페에는 구비되어 있기에 확실하게 연습을 하고자 그라인더까지 구매를 결정했다.
100불짜리 그라인더였다. 머신과 그라인더를 들고 오는데 팔이 빠지는 줄 알았다. 으외로 4~5kg짜리지만 은근 내팔을 압박하고 날씨는 덥고 거리는 멀고 바리스타가 되기 위한 과정이라 생각하고 버텼다.
바로 연습을 하기 위해 구매한 다음날부터 커피를 만들어 보기 시작했다. 가정용이라 그런지 생각보다 소음이 좀 컸다. 그리고 압력이 가게보다는 낮아서 생각한 것 과는 다른 에스프레소가 추출되어서 흠칫하기도 했다. 나름 일을 저질러보는 것이 재밌다는 생각마저 들기도 했다.
백수가 된 지 시간이 꽤 흘러서는 안되겠다 싶어서 이력서를 돌렸다. 새로 이사한 곳 근처에 커피샵이 있었고 면접자리가 마련되었다. 이력서를 돌린 다음날 오전 7시에 나가서 면접을 진행했다. 또 바로 커피를 만들어 보라는 것이 아닌가. 이번에는 실패하지 말아야겠다 했지만 대실패를 거뒀다. 아무래도 커피는 취미삼아서 그냥 마시거나 혼자 만드는게 낫겠다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런데 주인장이 다음주 수요일에 나오라는 게 아닌가? 기회가 한 번더 생겨서 굉장히 기뻤다. 그래도 마음을 놓을 수 없어 다시 인터넷과 발품을 팔았다. 이번에는 조금 멀리있는 레스토랑 웨이터 일자리를 얻었다.
면접날이 되었고 내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했다. 딱 하루하고 깨달았다. 오랫동안 일할 수 있을만한 곳은 아닐수도 있겠다고 말이다. 아니나 다를까 하루치 일급만 받고 못하게 됐다. 열심히 했는데 그들 눈에는 아니었었나 보다. 할일 없이 며칠이 지나고 대망의 수요일이 됐다.
다시 일을 하기 위해 나름 깨끗한 옷도 챙겨 입고 머리도 매만졌다. 당당하게 일을 하러갔다. 나와 눈이 마주친 가게주인의 눈빛이 흔들리는게 보인다. 아... 뭔가 이상하다. 생각하고 싶지 않은 일이 일어날 것 같다. 싶은 순간 주인장이 내게 한 마디 했다.
우리 이미 바리스타 구했어
난 1주일 동안 뭘했던 걸까 싶었다. 기회가 이렇게 사라지는구나 싶었다. 솔직한 말로 그 당시에는 면상에 대고 욕을 하고 싶었다. 집에 돌아와 사라지지 않는 분노를 표출했다. 함께살던 룸메이트가 워낙에 성격이 좋아서 나의 푸념을 들어 주었었다. 호주에 와서 느껴보는 배반감이랄까 배신감이랄까 하루종일 기분이 언짢았었다.
그래도 전화위복이라던가 이사한 집에서 만나게 된 형이 한명 있었다. 카지노를 좋아하는 그런 형이었다. 한국으로 돌아갈 타이밍이 되었고 자신이 일하던 설거지파트에서 일해볼 생각이 없냐고 물었다. 당연히 오케이했고 면접이라기보다 하루동안 일을 해보기로 했다. 처음이었지만 물만난 고기마냥 일을 수월하게 처리했다. 떡볶이집에서 1년간 일을 했더니 설거지가 어렵다고 느껴지지 않았었다. 그리고 바로 퇴근 후에 함께 일하자는 문자를 받았다. 할렐루야가 절로 외쳐지던 순간이었다. 그 동안에 고생했던 모든 순간들이 주마등처럼 흘러갔다. 기념으로 스테이크 샌드위치를 만들어 먹었던 기억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