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홀러]15편, 빡센 나날

짤리고 재취업, 한잔의 커피, 퇴근시켜줘

by 투잡남

오전에 일했던 곳에서 짤렸다(?). 사정이 있어서 땜빵으로 일을 했던 것이었고 어쩔 수 없이 오전잡이 사라졌다. 그래도 몇 주간 나의 지갑을 아주 두둑히 채워주던 짭짤한 일자리였는데 좀 아쉬웠다. 몰래몰래 남는 초밥도 많이 싸가기도 했었고... 아침밥도 줬던 곳이다. 음식점치고 꽤 좋은 복지를 제공해 주던 곳이어서 좀 아쉬웠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일자리에 관한 것은 고용주 마음이다.


안그래도 호주에 올때 환율이 1300원이었는데 너도나도 국가마다 양적완화를 시행했던 시기였다. 이 후 나는 3자리수로 환율이 떨어지는걸 곧 경험하게 되었다. 이럴수도 있구나... 싶었다. 어찌됐건 돈을 더 모아야 여행을 할 수 있는 상황이기는 했다. 다음을 기약하며 기념으로 커피샵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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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커피를 가장 많이 소비하는 나라답게 작은도시였던 다윈에도 꽤나 많은 커피샵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대부분 커피가격은 4-5불정도로 타 도시에 비하면 조금 비싼 가격이다. 가격과는 상관없이 커피에 대한 자부심이 있는 나라여서인지 어디를 가든 기본적으로 라떼아트를 만들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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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푸치노를 시켜서 마시는데 참 달콤했다. 동네에서 그래도 그나마 나은 커피를 판매하는 곳이었다. 항상 일찍 문을 닫는 곳이어서 방문하고 싶었던 찰나에 마감시간과 간신히 겹쳐 한잔 마셔볼 수 있었다. 36도가 넘는 곳임에도 차가운 커피를 파는 곳은 시내에 있는 글로리아진스를 빼고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래서 따뜻한 라떼와 카푸치노를 많이 마셨다. 그게 습관이 되었는지 한국에서 카페를 가도 나는 사시사철 따뜻한 라떼와 카푸치노를 주로 마신다.


그렇게 또 하루 이틀을 보냈다. 피들러스에서는 나에게 더이상 긴시간을 할애하지 않았다. 저녁 5시 - 10시 30분까지 이어지는 짤막한 시간만이 나에게 존재했다. 그냥 일없이 살게 되나보다 했는데 오전에 일하던 곳에서 짤린지 이틀만에 연락이 왔다. 다시 나와줄 수 있겠냐고 하시길래 무조건 Okay. 굳이 다른 곳 가봐야 돈벌기가 녹록치 않음을 너무도 잘 알았기에 바로 오전부터 재출근을 했다. 갔다 드릴뻔했다가 다시 옷을 입고 롤밥을 만들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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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잡을 받고 다시 또 주말이 됐다. 내가 일하는 피들러스는 주말에는 정말 바쁘다. 눈코뜰새 없이 음식주문이 들어오고 재료가 왔다갔다 한다. 설거지도 많다. 그런데 연초라서 손님이 없겠지 싶었는데 끝없이 밀고 들어오는 것이 아닌가. 역대급으로 많이 온게 손에 꼽는데 그 중 하루였다. 10시반이 넘도록 설거지가 한참 밀려 있었던 것. 스프를 담았던 냄비도 닦아야 하고 요리를 볶아낸 후라이팬도 닦아야 했다. 집기류들도 물론 다 닦아야 했고 우리가 사용하는 행주도 정리하고 쓰레기도 비워야 했다. 물론 항상 하던 일들이다. 그런데 그날은 달랐다. 단 한개도 사용하지 않은 집기류가 없었을 정도였으니까...


그렇게 일이 끝나고 자전거를 타고 오면서 터벅터벅 참 많은 생각을 했었다. 여행은 어디부터 어디로 가야할 지에 대한 행복한 고민. 몸은 정말로 고되고 팔도 붓고 밥을 잘 챙겨먹어도 에너지도 모자라서 살이 빠지는 중이었지만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 때가 참 즐겁고 자유로움을 만끽했던 시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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