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낭을 짊어지고 부푼 마음으로 여행길에 올라 신나는 마음으로 싱가폴에 도착했다. 기분도 좋고 일찍 일어나긴 했었지만 나의 여행길을 충분히 만족시켜 준 것으로 충분했다. 싱가폴을 가장 처음 여행지로 택했던 이유는 동남아 국가 중에서도 당연 가장 경제적으로 풍족한 나라였을 뿐만 아니라 그 더운 곳에서도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궁금했다. 하지만 오랫만에 여행을 떠나는 여행길이다 보니 긴장을 했던 탓일까. 아니면 여행을 떠나기 전까지 무리했던 탓인지 나는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보고야 말았다.
공항 화장실에서 변을 보았는데 변기통이 새빨갛게 물드는 것이 아닌가. 순간적으로 너무나 걱정이 되었다. 식은땀이 절로 났다. 왠지 가족들에게 알리면 여행을 떠날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아픈 것이 우선이 되었어야 했으나 여행을 포기할 수 없었다. 20대를 보낸 나에게 있어서 여행은 꿈 자체였으니까. 그래서 마중 나와준 누나에게 아무말 없이 세이 굿바이를 외치고 결국 싱가폴 가는 비행기에 올랐다.
내 몸이 무척 걱정되었지만 이것저것 비행기를 타서 핫초코도 마시고 싱가폴 창이공항에서는 배가 고파서 밥도 먹었다. 게스트 하우스에서는 조식도 챙겨 먹었다. 그러나 출혈은 여전히 멈추지 않았다. 왜 출혈이 계속해서 멎지 않는 것인지 점점 더 공포가 확산되었다. 그래서 게스트하우스 근처에 있는 싱가폴 병원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돈을 조금 들여서라도 일단 몸을 살펴야 할 것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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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을 뒤적거려보니 한국인 의사가 근무하는 탄셍톡이라는 병원을 찾아낼 수 있었다. 그러나 처음 가 본곳이고 싱가폴에서 병원을 방문해 본적도 없었다. 한 시간 여동안 어디에서 진료를 받아야 하는 것인지 어떻게 받아야 하는 것인지 병원 내부를 휘젓고 다녔다. 드디어 진료를 받을 수 있었는데... 우선 가격이 굉장했다. 예약이 되어 있을 경우 진료비만 50달러, 예약이 되어있지 않았던 나는 70달러를 지불해야만 했다. 그렇게 70달러를 지불하고 세상을 전부 잃은 표정을 하고 진찰실로 들어갔다.
들어가서 내가 아는 영어를 총 동원하여 나의 상황에 대해 설명을 했다. 다행히 나의 하의를 내리고 내 엉덩이를 보여주어야 할 의사는 잘생긴 남자 의사였다. 나에게 옆으로 누워서 하의를 반쯤 벗고 있으라고 말해주었다. 세상 잃은 표정으로 누워서 제발 별일 아니기를 여행을 할 수 있기를 바라고 기도하고 마음을 졸였다. 굉장히 기묘한 자세로 진찰을 받고 드디어 의사 소견이 시작되었다.
내가 무엇을 먹었는지 어떻게 생활하는지 물어 본 의사는 나에게 무엇인가 단어를 건넸다. 하지만 내가 못알아 들었고 구글링을 통해 무엇인지 다시 설명하기 시작했다.
blar blar blar Pile Up blar blar blar
다른 이야기들은 귀에 들어오지 않았는데 유독 "Pile Up"이라는 짧은 문구가 귀에 꽂혔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단언데... 기억이 나질 않았다. 프로레스링에서 들었던 생각이 오버랩되면서 생각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스마트폰을 꺼냈고 영어사전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빵터졌다.
PILES 란 = '치질'
치질을 뜻한다. 내가 걸렸던 질병은 추후 한국에서 알게 되었는데 정확히는 '치열'. 화장실에서 오랜시간동안 앉아 있어서 생긴 좋지 못한 습관으로 인한 질병이었다. 3시간을 거쳐서 치질약을 처방 받았고 나는 날아갈 것 같은 기분으로 센토사 섬으로 발길을 옮겼다.
싱가폴에서 내가 깨달았던 교훈은 단순했다. 생각보다 내가 걱정하는 일들이 커보여도 막상 살펴보면 큰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큰일이 아님에도 내 마음이 먼저 겁을 먹게되니 내 몸이 내 마음에 반응하여 내 몸이 똑같이 나타나게 되더라는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대로 생각을 말하는대로 말한 것을 실천하는대로 실천한 것을 인생으로 옮기면 내가 된다는 것을 싱가폴에서의 짧은 여행길 동안 깨닫지 않았었나 스스로를 뒤돌아 보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