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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투잡남 Oct 17. 2019

비난보다는 응원을 해야 하는 이유 3가지

비난에 익숙한 사회

   안타까운 소식이 들려 왔습니다.


설리가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되었습니다.


가끔씩 이해가 되지 않는 행동을 했던 것도 사실이지만,


설리에게 쏟아진 비난과 야유는 엄청났습니다.


설리보다도 더 악질인 사람도 많고,


문제가 있는 사람들도 많았는데 그보다 더 강한 비난들이 쏟아졌습니다.


무슨 잘못을 그리 많이 한 것인지, 그 사람에게 쏟아진 야유와 비난이 참으로 무서웠습니다.


또, 25살이라는 꽃다운 나이에 삶을 마감한 것도 참으로 안타까웠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왜 우리가 비난보다는 서로 응원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자 합니다.






응원은 사람을 살리는 약초이기 때문이다.


  비난은 사람을 죽이는 독입니다.


반면에 응원은 사람을 살리는 약초가 됩니다.


안타깝게도 현재 대한민국 사회는 응원을 하는 모습도 있기는 하지만,


서로 비난하는라 무척 바쁜 모습입니다.


비판적인 시각으로 사회를 발전시키는 것이 아니라 나의 뜻과 다르거나 나와 다르면 비난의 화살을 쏟아냅니다.


안타까운 것은 이와 같은 모습들이 가정 내에서도 빈번하게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아이들은 칭찬을 들으면, 자기가 잘하는 그 무엇인가를 더 보여주려고 노력합니다.


글이 지난번보다 낫다고 칭찬을 하면, 적으라고 하지 않았는데도 혼자 열심히 적어서 보여줍니다.


오늘같은 경우 피아노 콩쿠르 대상을 탄 아이에게 고생했다고 했더니,


즉석에서 연주를 보여주었습니다.


그만 하라고 할머니가 이야기를 해도 끝까지 연주를 마치는 모습을 보여 주었습니다.


감동이었다는 이야기를 건넸을 뿐인데, 응원을 받으니 기분이 좋아 계속 보여주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저 고생했다는 말 한마디와 정말 감동적이다! 라는 메세지를 던졌을 뿐이었습니다.


그 말 한마디에 얼굴이 상기되고 표정이 밝아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앞서 말씀 드린대로 사람들은 대부분 응원보다는 왜 못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더 많이 들었습니다.


'힘내라! 넌 정말 멋져~! 할 수 있어!'라기 보다는 하지 말라는 것들이 더 많았습니다.


혼나거나 '너는 왜 그모양이니!'라는 이야기를 은연 중에 더 많이 듣고 자라왔습니다.


비난이 가정에서부터 시작된 것입니다. 그 화살을 받았던대로 사람들도 똑같이 다른 누군가에게 날리게 된 것입니다.


그렇기에 여러분 서로에게 '할 수 있다! 내가 있다! 힘내라!'는 응원의 메세지를 던지시기를 바랍니다.



응원해주는 한 사람만 있어도 사람은 삶을 살아간다.


   사람은 삶이 극도로 극심하게 힘들어지면 극단적인 선택을 내리게 됩니다.


특히, 우울증에 빠진 사람들의 경우 하지 말아야 할 선택을 내립니다.


수능이 다가오는 11월에는 학업 스트레스로 고층에서 뛰어 내리는 학생들의 이야기도 많고,


마음이 다쳐서 삶이 지쳐서 삶을 포기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하지만 잘 생각해보면 그들에게 응원해주는 누군가가 있었다면, 과연 그와 같은 선택을 내렸을지 의구심이 듭니다.


단 한 사람이라도 그들의 편이 되어주었다면 아마도 극단적인 선택을 하려고 하진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응원하는 사람들보다  벼랑끝에 있는 사람들에게 비난하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다고 생각이 듭니다.


날이 갈수록 젊은층의 자살률이 높아지는 것이 그 증거입니다.


가장 꽃다운 나이를 살아가지 못하는 사람들이 더 이상 발생하지 않도록,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응원단이 되어주는 것이 필요할 것입니다.


없던 에너지도 생겨나기 때문이다.


  응원의 메세지를 받은 사람은 자신 안에 뭔가 꿈틀거리는 에너지를 느끼게 됩니다.


'응원'의 메세지 안에는 사람으로 하여금 긍정적으로 만드는 묘한 에너지가 있기 때문입니다.


많은 분들이 아는 실험 중에


사랑한다고 말하고 마시는 물과 욕을 하고 먹는 물의 결정구조가 다르다는 것을 알고 계실 것입니다.


사랑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물의 결정구조는 완벽하여 1급수가 된다는 이야기를 말입니다.


즉, 응원의 메세지는 몸의 60%가 물로 이루어진 사람으로 하여금 완벽한 상태로 만든다는 것입니다.


반면에 비난의 목소리와 여론의 지탄을 받게 되면, 사람으 점차 독에 스며들게 됩니다.


죽어가는 것입니다.


단지 우리의 메세지를 응원의 메세지로 바꾸는 것임에도 한 사람을 살릴수도 죽일 수도 있는 것입니다.






 지금의 사회의 모습은 미쳐버린 개인들의 향연이 펼쳐지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서로에 대한 다름을 인정하지 않고 서로의 이득을 위해 물고 뜯는 투견장의 모습을 방불케 합니다.


합리적인 의심과 대화를 통해 조율하는 젠틀한 모습이 아닙니다.


어떻게든 상대편을 물어 뜯으려는 무서운 모습입니다.


더 무서운 것은 누군가 튀거나 별나다고 생각을 하면, 그 사람에 대한 마녀사냥이 이루어지는 것도 무시무시합니다.


개인으로서 이와 같은 사회를 단번에 뜯어 고칠수는 없겠지만,


저라도 주변에 있는 지인들에게 응원의 메세지를 전달한다면 지금보다는 더 나은 사회를 만들어 갈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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