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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투잡남 Aug 07. 2020

청년부 공동체의 위기, 그런데 아직도?

잘못된 공동체성 같은 소리는 집어치워라.

  전염병이 퍼지기 시작한 후 벌써 10개월이 넘었다. 공식적으로 이야기가 오간 것은 작년 12월 즈음. 한국에는 2020년 초에 터졌다. 코로나가 터지고 나니 사람들은 난리법석을 떨었고, 그로 인해서 많은 일들이 변화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을 만나는 삶에서 가능한 한 만나지 않는 모임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언택트가 활성화가 되었고, 그 어느 때보다도 프라이빗한 공간을 사람들은 원하기 시작했다. 전염병으로 인해 자신이 감염될 수 도 있다는 두려움에 휩싸여 본능적으로 개인적인 공간을 선호하게 된 것이다.


 일명 끼리끼리 문화가 생각 이상으로 심각해지는 것을 우리는 앞으로 더 심심치 않게 발견하게 될 것이다. 이는 사회에서도 빈번하게 발생하겠지만 교회 내에서 더 심각해지는 것들을 나와 같은 기독교인들은 직접 경험하게 될 것이라 생각한다.




타인을 배척하는 교회 공동체


  현재 교회 내에서 전염병이 퍼지는 일들에 관한 뉴스가 인터넷 포털 메인 기사로 뜨고 있다. 여기저기에서 터지고 있는 사태와 관련하여, 사람들은 비난하고 손가락질을 하고 있는 중이다.


왜 그런 걸까?


  여러 문제들이 교회 내에서 발생했던 것들이 주요한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보다 더 큰 원인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그동안 철옹성처럼 자신들만의 문화를 형성해 온 교회가 안 그래도 미웠는데, 타이밍 좋게(?) 코로나가 교회에서 퍼진 것이다.


그러니 그동안 쌓였던 분노를 표출하게 되는 것이다. 교회로부터 상처를 입고, 교회 내에 존재하는 끼리끼리 문화에 상처를 받은 것들을 교회에 쏟아 붓기 시작한 것이다. 이쯤에서 우리는 질문을 던져 볼 필요가 있다.


사람들은 왜 상처를 입은 걸까?


  교회에 대해서 전혀 1도 모르는 사람들이 교회를 방문하게 되면 기겁하게 된다. 너무나 폐쇄적인 시스템과 그들끼리 어울리는 문화가 사람들의 목을 졸라매는 효과를 가져오는 것이다.


차라리 처음 접하는 문화라서 어색하면 문제가 덜하다. 가장 큰 문제는 새로 들어온 사람이나 교회 내에 있는 그 누군가가 별 볼일 없다면 아주 쉽게 배척한다는 것이다.


반면에 새로 들어오거나 기존에 있던 이들이 일명 잘 나가는 사람이 되면, 엄청난 관심을 갖는다는 것이다. 겉으로는 전혀 아닌 척하는 경우가 대다수이지만, 행동하는 것은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줄 때가 많다.


현재 한국에 존재하는 교회들은 겉과 속이 다른 경우가 넘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네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실천을 하는 사람들을 찾을 수가 없는 것이다.


수많은 교회 청년부는 선교니, 구제니 사람들을 돕는 일에는 관심이 많다. 그런데 내 옆에 있는 이웃 하나 챙기지 못하는 아이러니가 존재한다.


그 결과 교회에 한 번이라도 출석을 했던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은 끼리끼리 문화에 상처를 입고 데어서 교회를 안나가게 되는 모습들을 보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대다수의 교회에서는 끼리끼리 문화를 더 만들려는 듯이 '공동체성'을 강조한다. 모임을 더 만들고, 외부인이 침투하지 못하도록 견고한 성을 쌓는데 혈안이 되어 있다.


그런데 타인을 배척하는 사회 내에서 이루어지는 공동체성은 우리가 역사적으로 알고 있는 '전체주의'성향을 지니게 만들 뿐이라는 것을 모르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스펙에 환장하는 공동체


  나는 블로그에서 내가 여행 다녀온 이야기를 적은 적이 있다. 여행을 다니면서 내가 느꼈던 것은 사람들이 내 직업이나 했던 일에 대해서 물어보기는 하지만, 그 자체만으로 나를 재지 않았다는 것이다.


물론, '여행자'라는 동일한 선상에 놓여 있었기 때문에 그런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내가 느꼈던 것은 그들은 나의 스펙이나 재산에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는 것이다.


한국에 돌아와서도 회사나 기업이 아닌 다른 소모임에서도 나에 대해 그다지 깊숙이 물어보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함께 하고 있는 모임에서 즐거운가 그리고 서로에게 시너지가 일어나는가에 좀 더 관심이 많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최근에는 나의 스펙과는 상관없이 내가 가진 '실력'과 나의 '인성'을 중심으로 나에게 일을 제의했다는 것이다. 어느 학교를 나왔는지, 무엇을 했는지가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내가 잘 가르치는 사람인가? 사람들에게 좋은 가치를 전달할 수 있는가? 로만 평가를 받았다.


교회는 있는 그대로 대하지 않는다.


기업 내부가 아닌 외부에서 프리랜서로 발가벗겨진 상태의 나에 대해서 있는 그대로 파악하는 사람들이 교회 밖에 더 많다는 것을 느꼈다.


그런데 교회 내부에서는 그렇지가 못하다. 스펙에 관한 기준이나 재산이나 급여에 관한 관심이 일반 소모임보다도 더 많다는 것이다.


'돈 많은 사람'인지 '외모가 출중한 사람'인지를 놓고 판가름을 하는 것이 가장 심하다고 볼 수 있다. 혹은, 그 사람의 직장이 꽤 괜찮은 직장인지 직업인지를 심도 있게(?) 관찰하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구분을 짓기 시작하고, 끼리끼리 문화를 더 심하게 만들어 간다. 자신과 연관성이 있거나 마음에 드는 사람은 자기와 한 편을 만들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하는 것이다.



끼리끼리 를 더 부추기는 교회


  더 큰 문제는 교회에서 일명 사역(사역이라 부르고 노동이라 칭하겠다)을 한다는 교역자들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만난 교역자들 중에는 정말 괜찮은 사람들도 꽤 있다.


나는 모든 교역자들을 대상으로 비판할 생각은 없다. 다만, 내가 비판을 하게 되는 교역자들은 자신들의 목적이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끼리끼리 를 부추기는 부류이다.


말은 청년부의 발전을 위해서라고 하지만, 솔직히 말해 청년부 한 명이 줄어들면 영업실적이 감소하는 것과 같이 반응하는 경우가 많다.


까놓고 말해서 교역자들 입장에서는 '교회가 직장'인 셈이다. 그러니 당연히 실적에 압박을 받는다. 아닐 것 같지만 이미 교회 내에 침투한 회사 시스템을 살펴보면 회사와 다를 바가 없다.


보험회사나 판매직을 가보면 안다. 수많은 이벤트와 선물 제공과 모임을 만드는 것이 상품을 팔고 책을 판매하기 위함이라는 것을 말이다.


교회에서 그와 같이 사람을 모으기 위한 새신자 전도 운동이라는 명목으로, 혹은 프로그램을 운영하면서 사람들의 관심을 모으는 것이다. 한 명의 등록된 교인을 모으기 위해서.


그리고 끼리끼리 문화를 만들게 되면 마치 회사의 부서들처럼 관리하는 것이 좀 더 수월해진다. 자신의 입맛에 맞는 사람들을 골라서 일을 시킬 수 있고, 움직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조직을 개편하듯이 모임을 바꾸고, '순'이라는 개념을 만들어 회사의 조직처럼 만드는 것이다. 나는 선교단체에도 몸을 담았던 사람이지만, 대학 내에서의 순은 교회나 회사의 조직과는 달랐다.


일단, 영업에 대한 실적 압박을 받을 필요가 없는 곳이었다. 단체 자체 내에 영업실적이 존재했지만, 적어도 학교 내에 동아리였기에 부담이 없었다. 그저 함께 더 즐거운 시간을 보낼 동지라는 생각만이 존재했다.


그래서 더 순수했고 진정한 공동체의 모습을 만들어 갈 수가 있었다. 그러나 교회는 그렇지 않다. 교회를 운영하기 위한 자금들이 교인들의 헌금에서 나오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그렇다 보니 기업을 운영하듯이 청년부를 교역자들이 운영을 하는 것이다. 아니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구조적인 문제가 존재하는 것이다. 만일, 그것이 아니라고 내 글에 대해 반박을 한다면 나는 물어볼 것이 있다.


교역자를 사례금 없이도 계속할 수 있겠는가?


라고 말이다. 사례금 없이도 할 수 있다면 인정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과연 돈 한 푼 안 받고 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라고 생각한다.




  나는 교회 청년부도 교역자들도 교회 내에서만 생활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교회 내에서만 생활하니 생각하는 사고방식이나 메커니즘이 모두 교회 내의 문화를 따라가게 된다.


성경에서 말하는 예수님의 길이 아니라 교회 안에 '새로 생긴 문화'에 의한 사고방식만을 지니게 되는 것이다. 이는 폐쇄적인 생각을 갖게 만들고 상대편을 배척하는 심각한 우려를 낳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내 글을 일게 되는 기독교인들이 있다면, 또 교역자들이 있다면 생각해 보아야 한다. 지금의 코로나가 던져진 세상에서 교회 공동체는 어떤 해답을 내놓을 수 있을지, 또 어떻게 해야 할지 말이다.


교회 내의 모임을 활성화하는 것에 목을 매지 말고, 어떻게 혼란스러운 이 세상에 빛이 될 수 있을 것인가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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