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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투잡남 Aug 16. 2020

과거의 영광에 사로잡힌 교회들

코로나 시대 속에서 답을 찾지 못하고 방황하는 교회 공동체

  현재 코로나가 교회 내부에서 엄청나게 터져 나오고 있다. 전국의 모든 교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건은 아니지만, 모든 교회가 지탄을 받고 있다. 그리고 깜깜이 전파자들이 생기면서, 공기업, 회사 할 것 없이 확진자가 스멀스멀 등장을 하고 있다. 결국, 8월 15일 현재 다시 사회적 거리두기 2단계로 상향이 되었다. 소식을 접하고 나서 많은 생각들이 머릿속에서 떠나지를 않았다. 인적이 없는 거리에서 혼자 산책을 하다가 나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 보게 되었다.


왜 교회가 지금과 같은 상황이 되었을까?
앞으로 공동체는 어떻게 변할까?
어떻게 해야 할까?

   


3가지의 질문에 대해서 스스로 생각하고 고심하고 또 되짚어 보았다. 그리고는 제 나름대로의 답변을 얻게 되었다.




첫 번째 질문 '왜 지금과 같은 상황이 되었을까?'


  '왜 지금과 같은 상황에 놓인 걸까?' 코로나에 대한 원인보다도 교회가 이렇듯 욕을 먹게 된 이유가 무엇인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열심히 유튜브를 찾아보고 브런치를 뒤적거려 봤지만, 실제적인 대안을 내놓는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다들 궁여지책도 아닌 주먹구구식에 가까운 해결책과 이야기들만 늘어놓았다. 정말 답답했다. 그러다 그나마 도움이 되었던 유튜브의 내용을 보면서 어느 정도 물음에 대한 답을 정리할 수 있었다. 바로, 교회가 지금처럼 지탄을 받는 이유는 사람들에게 전혀 본이 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이와 같은 문제는 하루 이틀의 문제가 아니었고, 오래전부터 큰 문제가 되어 왔다. 다만, 코로나가 퍼지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문제가 수면 위로 드러나게 된 것이다. 자기 아집과 고집으로 똘똘 뭉친 이상한 정치 집단으로 변한 교회들이 늘었고, 자기 살기 바빠 보이는 교회들만 보이게 되었다.


  구조적으로 시스템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인지하면서도 기존의 누리던 과거의 영광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들만이 남게 되었다. 그렇다 보니 확진자가 생기게 되었고, 다른 곳에서 생기는 것보다도 크게 욕을 먼 단체들이 되어 버렸다.


  https://brunch.co.kr/@hosueng/453


두 번째 질문, 앞으로 공동체는 어떻게 변할까?


  장담컨대 한 번 돌아선 교회의 공동체원들은 다시 교회로 복귀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교회라는 장소가 불안한 장소가 되어 버렸고, 온라인으로도 예배를 할 수 있다(?)는 생각이 이미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이 모여야만 된다는 목표의식이 사라지는 시기를 맞이하게 된 것이다.


  전통적으로 교회는 목사와 장로의 권위가 상당히 높았다. 그로 인해 대부분의 성도들은 아무 찍소리도 하지 못한 채 순종을 강요당했다. 코로나 이전에는 교역자의 한 마디에 어쩔 수 없이 사역을 하고, 시간을 소모해야 했었다. 그러나 앞으로는 그와 같은 일들은 사라질 수밖에 없다.


  고로 앞으로 중, 소형 교회들은 앞으로 파산을 맞이하는 시대를 보게 될 수밖에 없다고 본다. 별 다른 직업 없이 온라인으로 일을 할 수 없는 목회자들은 재정난을 겪게 될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교회는 미래에 헌금으로 살아갈 수가 없게 될 수 밖에 없다. 그 이유는 이번에 2차 확산으로도 볼 수 있는 사건으로 인해서 교회에 사람들이 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대형교회도 지금보다 더 축소될 가능성이 높다. 이미 청장년을 포함한 모든 세대가 모이는 것이 불안하기에 대형교회를 찾지 않게 될 것이라는 사실이다. 또한 집에서 온라인 예배로 대신하는 일들이 늘어날 것이기에 교회는 작아질 수밖에 없다.


  어쩌면 대형 교회들도 폭삭 내려앉는 일들을 보게 될 것이라 생각한다. 이미 큰 금액을 지불하면서 유지해 온 건물 임대료와 빚들이 교회를 옥죄이는 덫으로 남게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저주를 하는 것이 아니라 물질 중심주의로 살아온 교회의 민낯이 드러난 것이라 볼 수 있는 것이다.


세 번째, 어떻게 해야 할까?


  이번에 교회들이 대처하는 모습을 보면서 기가 찰 노릇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온라인으로 모임을 돌리고, 예배를 하면 된다는 구시대적인 발상에 어이가 없었다. 그것이 가장 최선이라고 말을 하고 있는데, 과연 그럴까? 아무리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더라도 사람은 사람을 만나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이다.


  온라인이라는 공간은 아무리 좋아도 대면하는 것만큼 좋을 수는 없다. '코로나 때문에 못 만나는데 어떡하냐?'라고 묻는 교역자나 목회자나 성도가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내가 그들에게 그리고 내 질문에 대한 답은 심플하다. 교회를 쪼개면 된다.

  

  무슨 이야기인가 싶을 수도 있는데, 정말 교회 단위 자체를 10명 미만으로 쪼개서 모이는 것이다. 일반 교회에서는 10명 정도가 한 순에 배치가 되는데, 과거의 방식이 아니라 10명이 나가서 별도로 마련된 공간에서 모여 예배를 하고 순모임을 하는 것이다.


  10명이 많다면 5명으로 줄여서 교회를 만드는 것이다. 즉, 교회의 규모 자체를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그리고 그 규모를 줄인 교회끼리 연합회처럼 온라인에서 연합을 하는 것이다. 큰 규모의 교회가 아니라 가장 작은 단위의 교회를 만들어 연합을 이루고 함께 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현재 모든 교회들은 어떻게든 교회에 붙잡아 두기 위해 과거의 시스템으로 운영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리고 지금의 모습을 비추어 볼 때 교회를 쪼개서 분할해서 작게 운영할 생각이 교역자들에게는 전혀 없다고 본다. 그 까닭은 하나의 교회에 수백 명이 모이게 되면, 그 공동체에는 '권력'이라는 것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권력이라는 것은 사람들이 모이면서 생기게 되는데, 그 모든 권력이 교회에서는 교역자들에게 쏠리게 된다. 게다가 교회는 회사나 기업의 모습을 벗어나지 못했기에 교회는 교역자에게 있어서 회사와 다를 바가 없기 때문이다. 즉, 청장년들이라는 교회 성도들을 활용해 일을 해나갈 수 있는 권력이 주어지는 것이다. 그 권력의 맛은 달콤해서 내려놓는 게 어려운 법이다.


  과거의 한 때, 집단적으로 모여서 기도하고 예배하고 모임을 하는 것이 공동체성을 키워 나갈 수 있는 시대가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과거다. 지금은 코로나 시대라는 뉴 노멀 시대를 살아가야 한다. 많은 인원이 모이는 것이 답이 아닌 시대라는 것이다. 그렇기에 교회는 아주 작은 단위로 쪼개져야 하는 때가 온 것이다. 하지만 '권력'이 존재하기에 전혀 그럴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안타까운 것은 사회와 기업은 그 어디보다도 빠른 속도로 코로나 시대를 대비하고, 4차 산업 혁명 시대를 준비하면서 헤쳐 나가고 있다. 그러나 교회는 과거의 영광을 잊지 못한 채 과거의 방법론만을 강구하고 있다. 단순히 온라인으로 예배하고 온라인으로 순모임을 하면 된다는 지극히 단순한 생각에 박수를 보낼 수밖에 없었다.


  청년들 중 온라인으로 전화로 순모임을 한다고 모이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는 안타까운 현실에 마음이 참담하다. 문제는 소규모로 모임을 쪼개서 모일 생각이 있는 성도들 또 한 많지 않다는 것이다. 어떻게 확실하게 될지 알 수는 없지만... 교회 내에서 생기는 권력을 타파하고, 작은 모임으로 전환하지 않으면 사회로부터 낙인이 찍히는 시대를 우리는 피하지 못하게 될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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