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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투잡남 Sep 25. 2018

"내가 경험한 네번째 직업"

- 핸드폰 액정 하나에 웃고 울며 지냈던 그날들...

  대학을 졸업하고 진로의 기로에 서있었다. 필리핀에서의 1년을 기점으로 캐나다 유학을 가고 싶었지만 사실상 캐나다로 유학갈 자금이 없었다. 나는 기독교 동아리에서 활동했기에 대학생들과 좀 더 어울리고 싶어 간사를 잠시 해볼까 고민했지만 기본급 없이 스스로 영업을 해야하는 간사의 삶은 실질적으로 녹록치 않아 보였다. 내가 굉장히 해보고 싶었지만 돈 앞에 나도 무릎을 꿇고 말았다. 그래서 일단은 회사를 들어가기로 마음을 굳혔었다. 영상편집은 아니었지만 컨텐츠 회사로 사실 처음에 입사하고 싶었었다. 대학교수님께 의뢰 했으나 자리가 없다는 답변을 얻었다. 그때즈음 1전공 교수님께서 전화를 주셨고 오창과학단지라는 곳에 있었던 핸드폰 액정 업체에서 일을 하기 시작했다.


  사실 나는 슈퍼공돌이는 아니지만 그냥저냥 공돌이었다. 그런데 공돌이쪽 직업이 당시에는 별로 매력적이지 않아서 나는 내가 하고 싶은 공부와 일만 하고 살았었다. 영상편집이 배우고 싶어서 영상을 배웠고 영상을 배우다보니 복수전공이 하고 싶었었다. 같은 학부가 아니라서 전과는 불가하여 복수전공을 하려 했지만 수강신청이 참 어려웠었다. 그래도 지성이면 감천이요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고 아는 지인을 통해 수업을 신청했고 영상에 관련했던 조명, 스토리, 기획등등을 마음껏 배울 수 있었다. 평생 편집쟁이로 살라나 싶었던 내 인생은 으외의  길로 돛을 돌렸고 그렇게 선택한 것이 생산관리였다.


 나에게 있어서 생산관리라는 직무는 처음들었었고 생소했었다. 입사당시에는 100명조금 안되는 규모의 회사였는데 어찌저찌 긴장된 마음을 추스려 취업에 성공하기는 했다. 그 선택이 3년을 머물게 할거라고는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점이긴 했지만...


  생소하다보니 생산관리가 정확히 무슨 일을 하는지 몰랐다. 그렇게 내게 처음 주어진 일은 공장에 있는 물건을 파악하는 업무였다. 나는 대학생활 내내 창조적인 행위를 일삼았었다. 그러다 보니 꼼꼼함은 저멀리 안드로메다에 있었다. 단순한 업무임에도 타부서들로부터 까이기 시작했다. 정말 단순한 일이었다. 물건이 몇개가 어디에 있는지 파악하는 것. 내가 꼼꼼함을 +1만 더하면 얼마든지 할 수 있는 것들이었지만 나에겐 +1이 없었다. 그렇게 3개월 6개월이 지나면서 퇴사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매일같이 하는건 옷 갈아입고 물건 파악하고 원자재가 들어오면 파악하고 데이터를 남기는게 내 하루의 일과였다. 다행히 야근은 하지 않았다. 야근은 하지 않았지만 한달에 한번 공장내에 있는 재고실사를 진행했다. 재고실사가 있는 날은 밤새워 일을 해야만 했었다. 퇴직서를 정말 쓰고 싶었다. 이런 일 하려고 내가 이런 회사에 들어왔나 싶을 정도였으니까.


  1년쯤 지났을 때 차장님께 퇴사하고싶다라고 말씀을 전해드렸다. 그러나 차장님으로부터 돌아왔던 한 마디.


"좀 만 더 버텨봐~"


1년이 지나 2년차가 되었다. 내 밑에 정식직원들은 아니지만 쫄따구도 생겼다. 작은 인사관리와 부서관리의 직무가 내게 생긴 것이다. 가끔씩 스트레스가 쌓일때도 있었지만 생산부서의 관계가 좋아 같이 놀땐 놀고 먹을 땐 먹고 나름 회사안에 문화생활 복지도 생겼다. 그래서 그렇게 한달에 한번씩 밤새우기는 했지만 2년이 흘렀다. 2년차에 다시 그만둘 생각이었다. 회사는 처음 입사했을 때보다 이익이 몇 배로 뛰었다. 그만둘까도 싶었지만 3년차까지는 버티기로 결심했다.


3년차가 되고 나니 쫄따구들이 더 늘었다. 그러나 즐거움이 쫄따구들이 늘어난만큼 늘지는 않았다. 적금통장에 돈은 절로 쌓였지만 더 이상 나에게 있어서 발전이라는 단어를 찾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퇴사를 결심했다.


 사람이라는게 적성에 맞지 않아도 혹은 생소했던 업무라도 3년이 되니 나름 익숙해지고 나름 자리를 잡게 되는 것을 20대에 경험했었다. 그렇지만... 세월이 흘러 좋은 점과 아쉬운 점들이 남았다. 좋은 점은 최근에는 연락을 드리고 있지는 않지만 가끔씩 연락을 취하는 차장님과 상무님이 생겼다. 인생의 멘토같은 분들이 생겼다. 두 번째는 즐거운 추억들도 꽤 많았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 추억이 돋아날 때가 종종 있다. 세 번째는 그 종잣돈으로 떡복이가게를 열어서 운영해볼 수 있었다는 것이다(?) 지금에 와서 돌이켜 보면 3년이라는 시간이 헛되지 만은 않았더라는 것.


하지만 장점이 있으면 단점도 존재한다. 단점은 딱 한가지다. 내가 정말로 해보고 싶었던 일을 겁없이 시도하지 않았던 것이다. 할 수 있는 시기였고 지금보다 고정비가 적게 소비되었던 그 시기에만 할 수 있었던 것을 겁없이 시도하지 않았던 것이 조금은 후회로 남았다.


결론적으로 사람의 인생은 결국 선택에 달려 있다. 내가 관심있는 일을 선택할 수도 있고 혹은 내가 하고 싶지는 않지만 어쩔 수 없이 경제적 이유로 선택을 내리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 글을 보게될 당신에게 나는 이런 말을 해주고 싶다. 이왕이면 해볼까? 라고 생각이 드는 일을 택하기를... 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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