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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투잡남 Sep 27. 2018

"내가 경험한 다섯 번째 직업"

- 우유배달원

  대학교 1학년 시절. 나는 겁 없는 신입생이었다. 도서관에서 부딪혀 책을 떨군 선배님을 번호를 따는 행동을 취하는가 하면 '한번 과대나 해볼까?'싶은 마음에 과대를 무턱대고 지원하기도 했었다. 동아리 활동 외에 또 다른 동아리에서(?) 음향 엔지니어로 활동하기도 했었다. 무려 이 모든 일들이 1년이라는 시간 동안 내가 벌였던 행위들이었다. 후회는 없었고 나름의 재미와 즐거움이 녹아 있었다. 2학기가 시작되던 해에 조금 안면이 생긴 선배님이 기숙사 총담당이었다. 나를 좋게 봐주셨는지 우유배달 알바를 해 볼 생각이 있는지 나에게 물어왔다. 아침 6시 ~ 7시 30분까지 일하고 우유는 공짜로 마시며 당시 한 학기로 50만 원가량을 받을 수 있는 알바였다. 내가 다닌 학교는 멀리 있었고 나는 용돈이 필요했다. 이미 과대와 설거지 알바를 겸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했다.


  학교 기숙사에는 총 4개의 동으로 기숙사가 존재했다. 4개의 동이었지만 남녀가 구분되어 있었으므로 총 8개의 구역으로 나뉘어 있었다. 배달원은 4명으로 구성되어 남 2 녀 2의 조합이었다. 그렇게 첫날에 불려서 하루 4개의 박스에 해당하는 우유를 배달해야만 했다. 매일같이 새벽 1~2시 놀다가 늦게 잠들었던 나였지만 6시가 되면 어김없이 피곤 하 눈을 비비고 기상해야만 했다. '내가 왜 이 일을 하고 있는 걸까.'라고 생각하다가 보면 우유 박스가 내 앞에 고스란히 놓여 있었다. 3박스는 가장 큰 구역에서 나누어 주어야 했고 1박스는 가장 작은 구역에 나누어 주어야 했었다. 그러나 1주일간은 배달하는 시간이 너무나 오래 걸렸다. 나는 수업 시작이 평균적으로 9시였고 간혹 설거지 알바도 아침에 종종 끼어 있었다. 고로 아침시간이 오면 전쟁과도 같은 하루가 눈앞에 펼쳐졌던 것이다. 내 친구들은 밤새워 게임하는 이상한 놈들이 제법 많았는데 나에게 1교시 수업을 위한 알람을 요청하기도 했었다. 그러다 문뜩 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는 한 마디가 있었다.


어떻게 하면 좀 더 수월하고 빠르게

할 수 있을까?


나는 나만의 시스템을 구축하기로 했다.  (이때의 경험이 훗날에 생산관리사무원으로 일할 때 큰도움이 되어주었다.) 우선적으로 총 내가 돌리는 방의 개수를 엑셀표에 그려 보았다. 층별로 10개의 방이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고 각 방별로 마시는 음료의 개수와 종류를 각각 방마다 적었다. 어디에 어디로 무엇을 배달 해야하는지 깨달았으니 다음에 내가 해야 할일은 간단했다. 4박스가 도착하면 미리 1박스는 걸어내려가서 날라야 하는 기숙사의 개수만큼 덜어 내고 3박스에 층별로 나누어줄 것들을 3분간 정리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1주일을 우유배달을 했더니 입고, 출고가 명확해졌을 뿐만 아니라 배달하는 속도가 향상될 수 있었다. 2시간 이상 걸리던 일을 50분안에 해치울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된 것이었다. 그래서 가장 먼저 정리하고 문 앞에서 다른 사람을 기다리는 여유까지 가질 수 있었다.


  누군가는 내게 이렇게 질문할 수도 있다. 


"그래서 뭐?"


  우연히 얻어 걸린 일이었고 단순히 알바라는 개념을 이루기 위한 하나의 행위였지만 나름대로의 시스템을 갖추는 연습을 시작할 수 있었다. 시스템을 갖추고 나니 고단한 시간을 줄일 수 있었다. 시간을 줄이고 나니 아침시간이 더 이상 괴롭지 않게 되었다. 훗날 제조업에서 내가 경험했던 일들이 사용되어질 수 있었다.


  우리가 경험하는 것들은 잘만 모아본다면 하나의 선이 되고 정육면체를 이룰 수 있다. 1차원적인 경험이 2차원적인 선이 되어 나에게 도움이 되고 3차원적인 꿈으로 나타내어질 수 있는 것이다. 고로 간단한 업무라 할지라도 나름의 시스템을 갖추는 연습을 하는 것은 성장하는데에 있어서 굉장히 중요한 덕목이다.


  지금 하고 있는 일에서 무엇인가 하나라도 시스템화하는 연습을 한다면 당신의 소중한 시간적 가치를 줄일 수 있다. 만일 그렇게 만들어낸 소중한 가치를 회사측에서 고용측에서 내놓으라 한다면 박차고 나오기를 바란다. 당신이 만든 시스템이라는 컨텐츠는 귀중하고 당신의 시간은 그보다 더 소중하기 때문에 그렇다. 작은 일이라도 시스템화 할 수 있는 당신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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