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에 스키클럽이라는 곳에서 대략 한달간 일을 했었다. 일하는 시간 동안 이상한 놈들과 일을 많이 했었다. 그놈들에 대한 이야기를 적어보고자 한다.
1. 어려서 이상한 놈
독일에서 20살이 되자마자 호주로 집값을 벌러온 독일인이었다. 이름은 네큘러스라고... 여자친구와 함께 동반 입사를 했다. 일단 가장 충격적이었던건 다 쓰러져가는 봉고차를 호주에 오자마자 구매를 해서 나름 캠핑카처럼 꾸며 놓았다. 그래서 물어봤다.
혹시 차에서 먹고 자고 하는거냐?
그의 대답은 당연히 예스였다. 집값을 아낄 수 있어서 좋다고 했다. 문제는 빨래를 자주 못하니 당연히 옷에서 쉰걸레 냄새가 좀 많이 났다. 집이 없으니 그럴수도 있지뭐 싶었다. 문제는 일할 때 번번이 나와 부딪혔는데 한 번에 하나의 일에 집중하지를 못하는 눈치였다. 뭔가 굉장히 열심히 하려고는 하는데 정리가 1도 안되는 그런 상황에 계속 봉착했다. 그릇이 닦여야 음식이 담겨 나가는데 거품칠을 하는가 하면 물을 담가 놓고 그릇을 닦아야 하는 상황인데 물을 빼버리는 행위를 반복했다. 그러더니 1주일쯤 지나자 망고농장을 구했다며 바로 여자친구와 차를 타고 사라졌다.
2. 갑자기 브리즈번으로 야반도주한 쉐프 두놈
네큘러스는 그래도 양반이었다. 헤드 쉐프에게 적어도 말은 하고 갔다. 가장 쇼킹하고 참 내가 헤드쉐프였으면 욕지꺼리 했겠다 싶었던 쉐프 2명이 있었다. 물론 나는 그 쉐프들과 죽이 잘 맞았다. 잘 챙겨주기도 했고 잘 도와주기도 했다. 사건의 발달은 이랬다. 10월에는 보통 호주에 할로윈 축제가 거하게 열리는 편이다. 한국도 요새는 할로윈 축제를 즐기고 있지만 호주는 일찍이 축제를 즐기고 있었다. 작년 할로윈에 사람이 많이 왔었던 것인지 헤드쉐프가 말하길 2천명즈음 이곳을 방문하게 될 것이니 음식 준비를 철저히 할 것을 당부했다. 2천인분을 준비하기 위해 1주일전부터 재료를 쟁여 놓기 시작했다. 과일서부터 고기까지 냉장고에 꾸역꾸역 채워 넣었다.
그렇게 꾸역꾸역 준비를 마쳤다. 대략 1주일이 흘렀고 대망의 할로윈 축제 전날이 밝았다. 출근을 했는데 쉐프 2명이 안 보인다. 어찌된 일인가 싶어 헤드쉐프에게 물었다.
2명 어디간거임?
헤드쉐프는 1초도 지체하지 않고 나에게 말했다.
슈발. 그새끼들 브리즈번으로 갔어
2천명이 몰려올 것이라는 압박감과 두려움이 컸던 탓인지 밤중에 야반도주를 한 것이다. 그것도 몰래 바로 짐을 싸서 브리즈번으로 토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얼마나 어처구니가 없고 참 독특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나에게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이탈리아친구들이 다 그런가 싶은 듯한 편견마저 생기도록 만들어 준 장본인들이었다. 나야 뭐 어차피 설거지 담당이니 큰 피해는 없지만 진짜 2천명이 떼로 몰려 온다면 답이 없는 상황에 봉착하는 절체절명의 순간이 닥친 것이다.
3. 할로윈축제가 나에게 해고를 주었어.
그렇게 절체절명의 순간을 맞이하고 나서 할로윈이 되었다. 저녁이 되었고 거진 200명의 사람들만이 스키클럽을 찾았다. 2천명에게 판매할 음식을 쟁여놓고 만들어 두었는데 고작 200명정도가 온 것이다. 한 마디로 "폭망"을 넘어선 "x나 핵망"이었다. 요식업이고 호주의 물가가 월급에 비해 싸다고는 해도 10배에 가까운 손실이 발생했다.
3일이 지났고 헤드쉐프가 나에게 다가와 말을 건넸다. 2주 후면 식당 문을 닫는다고 그러니 2주 안에 나가든지 일을 구하든지 하라는 것이다. 나에겐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리였다. 2주 후에 문을 닫는다니... 다시 백수가 된다는 소리였다. 다행히 한달정도 돈을 벌었고 통장에 돈이 조금이나마 꽂혀 있었다. 새로운 기회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기로 했다. 무덤덤한척 했지만 사실은 무덤덤하지 않았다. 2주 후 결국 나는 그만둘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나중에 시간이 흘러 흘러 내가 접했던 사실은 전혀 달랐다. 문을 닫은 적도 없었고 버젓이 식당을 운영하고 있었다. 훗날 같이 살던 친구가 그 곳에서 일하게 되었는데 문을 닫은 적이 없었음을 알게 됐다.
결국 할로윈 데이에 "x나 핵망" 했고 그 손실을 매꾸기 위해 데리고 있던 직원을 정리한 것이다. 게다가 네큘러스가 나간 이후 설거지 멤버로 리비아에서 이민온 친구를 뽑았었다. 시민권을 가진 이를 데리고 있는 것이 워홀러인 나보다 낫다고 판단했는지 나를 해고했다.
이 때 경험했던 모든 일들이 나로 하여금 새로운 지경과 경험을 가져다 주었었다. 내가 순진하기도 했었다는 생각도 들었고 책임감이 1도 없는 사람들도 있다는 것도 알게 해주었다. 삶이라는 것이 그렇게 내가 생각하는 것처럼 쉽게 흘러가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말이다. 그럼에도 하나가 막히면 또 하나가 열릴 수 있다는 것도 배울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