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려 4년전의 워홀 생활이었지만 지금보니 사람사는 곳은 별반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문뜩 들었다. 처음으로 취업했었던 피위스 엣더 포인트를 떠나 스키클럽이라는 곳에서 설거지를 하며 2014년 10월 한 달을 보냈다.
워낙에 먹고 사는 게 힘들었던 시절이라... 아 지금이 왜 더힘든지는 나도 모르겠다. 아무튼 그당시에 1불, 5불에 왔다갔다 하던 시절이었다. 그래서 처음 갔던 회사에서 돈을 늦게 입금해서 굉장히 화를 내며 이메일을 작성했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지금 생각해보면 조급했었다. 많이 조급했었다.
지금도 외식을 즐기는 편은 아니지만 그 당시에는 임금에 비해 밥값이 쌌음에도 불구하고 돈을 아끼기 위해 직접 음식을 해먹었었다.
까르보나라는 항상 쉽게 만들어 먹을수는 있었지만 맛은 그다지 별로였다. 나는 옛날에도 지금도 볶음밥을 좋아하는건 아니지만 만들기가 편해서 자주 만들어 먹었었다. 그래서 워홀을 하는 중간에도 볶음밥은 항상 주메뉴로 자리잡았었다. 때로는 스페셜한 음식을 만들어 먹기 위해서 깐풍기를 만들었는데 닭강정을 연성하기도 했었다.
스키클럽이라는 곳에서 일하다 보니 친구들도 몇몇 늘어났었다. 그 중 한명이었던 영국에서 온 귀여운 아가씨 제니가 마지막으로 일하는 날이라 집으로 초대를 하기도 했었다. 너구리굴이 따로 없었다. 내가 왜온건가 싶었던 그런 날도 있었다.
비수기라고 알고 갔는데 끊임없이 발전하는 동네 중 하나라서 그랬을까... 식당은 매일 저녁 사람들로 가득그득했었다. 그와 동시에 그릇들도 엄청나게 몰려왔고 내손은 매일 쭈구리를 면할 수 없었다. 여행을 가기 위한 몸부림의 나날이 매일같이 이어졌다.
때로 알게된 친구들과 우연히 놀러도 갔었다. 석양이 지는 주말마켓에서 밥도 먹고 공연도 보고 이야기도 나누기도 했다.
친구들과 그럭저럭 행복한 시간을 보내기도 했지만 역시 사람 사는 곳이라 문제가 있었다. 당시 나는 처음으로 들어간 쉐어하우스에서 6명정도가 함께 살고 있었다. 3명이 여성, 3명이 남성이었다. 문제는 3명 모두 대만인 여자애들이었는데 싸가지가 없었다. 매 사사건건 시비를 털고 말을 걸어도 대놓고 무시하는 어처구니를 보여 주었고 나는 결국 이후에 쉐어하우스를 옮길 수 밖에 없었다.
이미 오래전의 이야기였고 블로그에 글을 남겼던 흔적이 있어서 길게는 적지 않을 생각이다. 나는 요즘 뜨문뜨문 잊혀져 가는 나의 가장 젊은 날에 대해 생각해 보고 싶을때가 많다. 그 여행기를 떠올려 보고 싶을 때가 있다. 그때의 나의 이야기들을 지금의 내가 되짚어 보면서 생각을 갖는 그런 여행기들을 앞으로 계속 올릴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