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수준에서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이었어.
아파텔: 아파트+오피스텔의 합성어로, 20~30평대 아파트의 통상적인 구조와 흡사한 주거용 오피스텔
6천만 원으로 수도권에 집을 살 수 있다고?
작년까지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수도권에 내 집을 사기 위해선 적어도 5-6억 쯤은 모아야 한다고. 그랬던 내가 우여곡절 끝에 일산의 아파텔 분양권을 샀고, 2025년 입주 예정이다. 미리 경고(?)하자면 투자를 권유하는 글이 절대 아니다. 오늘은 90년대생 션대리가 수도권에 내 집 마련의 꿈을 이루기까지의 좌충우돌기를 풀어보려 한다.
6천만 원. 퇴사 후 약 2년간 크리에이터 활동으로 생긴 수입을 열심히 저축한 결과 모인 돈이었다. 그때 나는 뭔가를 사기보다 이 돈을 시드 머니 삼아 더 큰돈을 벌고 싶었는데, 내가 생각해낸 수익 창출 방법은 생뚱맞게도 샐러드 가게 프랜차이즈 사업이었다. 아마 어딘가에서 “초기 비용 몇 천으로 프랜차이즈 가맹점 오픈 가능” 이런 광고 문구를 봤겠지. 그렇게 장사나 사업에는 백지상태였음에도 꽤나 진지했어서, 프랜차이즈 강의도 듣고 가게 오픈 상담까지 했다.
그런데 막상 상담을 해보니 가게 오픈 비용이 다가 아니었다. 기존에 되어 있던 상가의 인테리어 비용, 자릿세 등 권리금 명목으로 1억 정도가 추가로 필요했다. 그러니까 가게를 내는 데 실제로는 1억 6천이 드는 것이었다. 2022년 기준 서울의 식당 개수는 약 14만 개. 힘들게 모은 6천만 원으로 그 수많은 식당 중 하나를 오픈하기에도 턱없이 부족하다 생각하니 힘이 쭉 빠졌다.
“총각 여기 한번 보고 가요-”
샐러드 가게 자리를 보러 간 목동 사거리에서 소득 없이 상담을 끝내고 터덜터덜 집에 돌아가는 길, 한 아저씨가 나를 불러 세웠다. 뭔가 싶어 돌아보니 처음 들어보는 (브랜드) 오피스텔 홍보관이었다. 시간도 남겠다 한번 둘러나 보자 하는 마음으로 홍보관에 발을 들였다. 홍보관은 한산했다. 보아하니 아저씨도 남는 게 시간인 것 같았다. 아저씨는 내가 가진 자본이며 집을 살 계획이 있는지 이것저것 꼬치꼬치 캐묻더니 현란하게 영업을 시작했다.
아저씨 덕분에 알게 된 사실 첫 번째. 오피스텔 매매가의 10%만 있으면 오피스텔을 (일단) 계약할 수 있다는 것. 참고로 2021년은 부동산 매매가가 치솟을 대로 치솟은 시점이었는데 아파트가 너무 비싸니 요즘 2030대는 오피스텔에 투자를 많이 한다고 했다. 처음에 매매가의 10%를 계약금으로 내고 오피스텔이 지어지는 동안 나머지 90%를 천천히 마련하면 된다는 것이었다. 중도금에 대해서도 무이자 대출 지원이 많이 나온다고 했다. 그 오피스텔은 매매가가 3억 정도였는데, 아저씨 말에 따르면 3천만 원만 있어도 오피스텔을 분양받을 수 있다는 거였다. 심지어 나는 가지고 있는 6천만 원으로 오피스텔 2 채도 살 수 있는 상황이었다.(다시 한번 말하지만 나는 부동산에 대한 지식이 전무했기 때문에 취득세에 대한 개념조차 없었다)
그날 새벽, 곧바로 오피스텔을 짓고 있다는 공사장으로 향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에 또 가서 임장이랍시고 집 보러 온 척 맞은 편의 오피스텔에 들어가 보기도 했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의 나는 좋은 투자처를 찾았다는 생각에 취해 있었다. 그런데 막상 낮에 가서 보니 홍보관에서 봤던 화려한 느낌은 온데간데없었으며 취객들이 길에 널브러져 자고 있는 등 동네 자체가 낙후된 느낌을 풍기는 곳인 데다 역에서도 꽤 멀었다. 알고 보니 그 오피스텔은 1년 넘게 분양이 안 된 호실이었다.(서울 도심 한복판에 복층형 원룸이 오랜 기간 분양이 안된 건 분명 그만한 이유가 있지 않을까?) 그러니 아저씨 입장에서는 호구가 제 발로 들어온 격이었다.
하지만 그 모든 발걸음이 영 헛수고만은 아니었던 것이, 그 망해가는 분양관에 들어가지 않았다면 지금까지도 오피스텔 청약이나 분양권에 대한 개념 없이 몇 억은 있어야 집을 살 수 있는 줄로만 알았을 것이다. ‘그’ 문자를 받고도 ‘에이 뭐야’하며 그저 넘겼을 게 분명하고.
샐러드 사업도, 오피스텔 투자에 꿈도 모두 깨지고 낙심한 상태로 집에 돌아가는 길, 띠링- 문자 한 통이 왔다. “일산 신축 아파텔. 6억 초반. 계약금 10% 중도금 무이자 잔여호실 추첨” 이런 키워드가 적혀 있었다. 평소 같았으면 광고 문자겠거니 하고 그냥 넘겼을 텐데, 왠지 이번엔 전화를 걸고 싶어졌다. 알고 보니, 2년 전 직장인 시절 회사 근처에 집을 알아볼 때 번호를 드렸던 부동산 실장님이었다. 실장님은 마침 홍보관 오픈 날이니 한번 와보라고 했다. 뭐에 홀린 듯 영등포에서 바로 일산까지 내달렸다. 홍보관은 사람들로 가득했다. 당시 홍보관에 모여 있는 사람들 중 나시에 크록스 신고 땀에 절어 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아주 무더운 8월이었다). 1900세대의 대단지에 모델하우스도 A, B, C타입으로 나뉘어 있는 게 아파트와 별반 차이가 없었다.
불과 3일 전의 나라면 이런 데는 몇 억은 있어야 살 수 있다며 꿈도 못 꿨겠지만, 나는 오피스텔 영업왕 선생님께 속성 과외를 받아 오피스텔에 대한 개념이 잡혀 있는 상태이지 않나. 당장 매매 금액의 10%만 있으면 이 오피스텔을 살 수 있는 거다(무이자 대출이 된다는 전제 하에) 두 번의 실패 끝에 찾아온 기회라니. 책자만 받았는데도 기분이 좋았다.
2021년, 30대 초반 미혼인 나에게는 신축 아파트를 살 수 있는 방법이 딱히 없었다. 당시 아파트는 현실적으로 공급 물량도 없었는 데다 대출 과정도 매우 까다로웠다. 청약 점수 역시 안드로메다 순위로, 추첨의 행운만을 기대해야 하는 입장이었다. 그런데 그 아파텔은 곧 청약 홈에서 ‘초치기’를 앞두고 있었다. 초치기란 공식 청약 이후 계약을 포기하는 분들이나 잔여 세대가 나오면 정해진 시간에 수강 신청하듯 일정 금액을 입금해, 입금자 순으로 번호표를 나눠주는 방식이었다. 결론적으로 나는 초치기에 성공했고 내가 원하는 타입의 적정한 평수를 분양받게 됐다. 비록 2025년 3월에 입주 가능한 ‘분양권’일지라도 집을 샀다는 사실만으로도 안도감이 들었다.
올해 들어 부동산 정책이 크게 바뀌면서 아파트 값이 3~4억이 떨어졌다, 거래가 절벽이라는 등 안 좋은 소식도 여기저기서 들린다. 내가 분양받은 아파텔 오픈 단톡방에서는 매일 시장 상황에 불안해하는 카톡이 올라온다. 아파텔 분양권 구매가 잘한 일인지 아닌지에 대해서는 사람마다 생각이 다를 거라 생각한다. 나는 결론적으로 불안하지는 않다. 잘한 선택이든 못한 선택이든 선택에 대한 책임은 내가 지는 것이므로. 값이 떨어진다고 한들 어차피 내가 실거주할 목적으로 샀기 때문에 언젠가는 오르겠지, 생각한다. 자본금도 없고, 아파트 공급도 없으며 청약은 안드로메다 점수였던 나에게는 아파텔은 당시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었다. 또 어떤 유튜브에서는 아파텔이 비싸다, 왜 사냐는 의견도 있지만, 내게 아파트를 살 수 있는 선택지는 없었기 때문에 후회하지 않는다.
또, 비록 후회할 결정이라 하더라도, 새로운 세상에 눈을 뜨게 된 계기가 되었다. 분양권만 갖고 있는데도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완전히 달라졌다. 무주택자일 때는 유주택자들을 덮어두고 시기의 대상으로만 바라봤는데 이제는 내가 유주택자의 입장에서 경제, 정치 뉴스를 보게 됐다.
종종 생각한다. 내가 샐러드 가게 상담을 받지 않았더라면, 그 오피스텔 분양관을 지나가지 않았더라면 과연 분양권을 살 생각을 할 수 있을까? 다소 시작이 생뚱맞기는 했지만 곧바로 행동으로 옮긴 나 자신을 칭찬해주고 싶다. 또, 무엇보다 중요한 건 책임질 수 있는 선택을 하는 것. 무리하게 대출을 있는 대로 받아놓고 감당을 못하는 사례를 종종 보는데, 그건 너무 위험하다는 생각이 든다. 내 선택의 결과는 3년 뒤에 알 수 있을 테니, 기회가 된다면 3년 후에 이와 관련된 글을 또 써보도록 하겠다.
아, 적어도 이 경험을 통해 '부동산'에 대해서 덮어두고 '아 몰랑' 하지 않게 되었다. 이런 게 으른의 삶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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