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지원 민간임대' 처음 들어본다고요? 일단 들어와
올해 6월, 인천으로 이사를 왔다. 지방 촌놈이 서울에서 직장 생활을 시작했던 게 엊그제 같은데 처음으로 서울을 떠나 살게 된 것이다. 그래 봤자 서울에서 1시간 거리라지만, 언제나 직주 근접이 우선이었던 나에게 서울을 벗어나 사는 건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내가 이사 온 곳은 전용면적 69제곱미터(약 30평)의 브랜드 아파트로, 1억 초반의 보증금을 냈다. 잠깐, 지난 글에서 일산 주거용 오피스텔 분양권을 샀다고 하지 않나, 오늘은 아파트에서 산다니, 돈 자랑인가? 아니면 부동산 쟁이인가? 의문이 생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부자도 아니고 부동산에 재능도 없으며, 운 좋게 알게 된 주거 지원 제도를 활용해 아파트로 이사를 한 거다. (조건만 맞다면) 정말 좋은데 의외로 사람들이 잘 모르고 있는 제도라 브런치 글에서 공유하고자 한다.
넓은 집으로 옮겨야겠다는 생각이 든 건 퇴사 후 프리랜서를 시작하고나서부터였다. 코로나 역병으로 대부분의 시간을 집에서 보내게 되면서 12평 투룸이 어느 순간 답답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직업이 뷰티 컨텐츠를 주로 제작하는 크리에이터 생활을 하다 보니 제품, 조명, 카메라 등 촬영에 필요한 물품들이 늘어났고 게다가 반려견 로이도 나날이 커가니 투룸도 좁아지게 된 것이다. (분명 원룸 오피스텔에서 투룸으로 이사 갈 땐 엄청 넓어졌다고 좋아했었는데)
나는 가끔 조카도 봐줄 겸 부산에 살고 있는 친누나 집에 가곤 한다. 누나 집은 아파트였는데, 거실에 앉아만 있어도 숨통이 트였다. 걸어서 10분 거리에 해변 공원이 있어서 로이와 바다를 보면서 산책도 할 수 있었다. 거실 소파에 앉아있다가 번뜩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나 부산에서 살까?’
안 될 이유가 없었다. 고정적으로 출근할 직장도 없고, 서울에는 일 있을 때 가면 되잖아? 심지어 부산은 집값도 서울보다 저렴하고. 나는야 노빠꾸 션 대리. 올해 초, 부산에 머무르는 일주일 동안 누나 집 근처 부동산에 전화를 돌리고, 아파트 임장까지 했다. 해운대 쪽이 아니었기 때문에 가격도 서울에 비해 저렴했고, 컨디션도 훨씬 좋았다. 한 아파트를 계약하기 직전까지 갔다가 너무 성급하게 결정하는 것 같아 일단 서울로 돌아왔다.
서울로 돌아오니 살고 있던 집에 대한 애정이 이미 식을 대로 식은 상태였다. 촬영 컨디션도 마음에 안 들고, 로이도 누나 집에서보다 답답해하는 것 같았다. 어떻게든 아파트로 이사를 가고 싶었다. 하지만 부산으로 이사 가기엔 어떤 불편함이 있을지 가늠이 안되니, 대체재를 찾기 시작했다.
인생은 타이밍이라 했던가. 때마침 지인이 아파트로 이사를 했다며 집에 초대를 해줬다. ‘아파트’와 ‘이사’라는 키워드에 눈이 번쩍 뜨였다. 나도 이사 계획이 있다고 이것저것 물어보니 공공지원 민간임대 아파트라 시세보다 싸게 이사했다고 알려주었다. ‘공공지원 민간임대’란 단어를 처음 들었을 때는, 솔직하게 말하자면 ‘임대’라는 단어에 대한 편견이 있었다. 왠지 소득 조건이 까다롭거나 주거 퀄리티가 다소 떨어지지 않을까 걱정이 됐다. 그런데 막상 친구 집에 가보니 완전 신축인 데다 심지어 이름 있는 건설사에서 지은 브랜드 아파트였다.
알고 보니 공공지원 민간임대란, 정부에서 주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건설사에 지원을 해주고 새로 짓는 아파트를 무주택자들에게 8~10년간 시세보다 저렴하게 임대해주는 지원 제도였다. 쉽게 말해 새로 짓는 아파트에 반전세로 들어가는데, 정부 지원을 받아 저렴하게 들어갈 수 있었다. 조건은 오직 무주택자일 것. 대신 유주택자가 되면 바로 집을 빼야 한다. 단, 매매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임대 개념이기 때문에 8~10년간 살다가 기간이 끝나면 집을 비워줘야 한다. **(단지마다 모집 조건이 다르므로 공고문 확인은 필수)
공공지원 민간임대의 좋은 점 첫 번째. 대단지 아파트에 시세 대비 저렴한 가격에 입주할 수 있다.
입주 가격은 지역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확실한 건 현재 시장에 형성된 전세가보다 저렴한 편이다. 내가 지금 입주한 곳은 P사의 아파트인데, 반전세 가격이 보증금 1억 3천5백(+ 월세 535,000원)이었다. 서울에서 1억 초반으로 전세를 구하려면 구옥이나 교통편이 안 좋은 곳으로 가야 할 텐데, 심지어 방 3개에 화장실 2개짜리 아파트에 살 수 있다니.
두 번째, 전세 사기 걱정이 없다. 이 제도의 경우 집주인이 메이저 건설사이기 때문에, 그 회사가 부도나지 않는 이상 내 돈을 못 돌려받을 걱정도 없다. 또, 2년마다 계약을 갱신하는데(이것 역시 단지에 따라 1년인 경우도 있다) 5% 이상 전세금을 올릴 수 없도록 되어 있어서 집주인이 전세금을 갑자기 올려서 집을 나가야 하는 경우라든가 전세 사기 걱정도 없었다. 쓸수록 광고 같아지는데 내가 직접 발품 팔아 찾아본 정보이다. 그래서 모든 단지 조건에 안 맞을 수 있다.
세 번째, 집단대출도 받을 수 있다. 1억 3천5백 중 80%를 대출받고 내 돈은 딱 2천만 원 들었다. 특히나 프리랜서로서 전세대출이든 일반대출이든 대출을 받으려면 매우 까다로운데, 이번 경우는 건설사 입장에서도 3500세대를 대단지 아파트에 한 번에 입주시켜야 하다 보니 집단으로 대출받을 수 있는 제도가 있었고, 신용불량자가 아닌 이상 대출을 수월하게 해 줬다.
네 번째, 신축 아파트라서 최신식 인프라를 누릴 수 있다. 보안은 물론이고, 전기차 충전기가 심하다 싶을 정도로 많고, 조경도 신경 쓴 티가 팍팍 났다.
알아볼수록 신청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2022년 1월 기준) 입주자 모집 공고가 올라온 곳을 찾아보니 인천 부평에 공공지원 아파트가 이미 완공이 됐고, 2022년 5월부터 입주 가능자를 모집하고 있었다. 때마침 내 투룸 전세 계약은 6월 말까지였다. 이렇게 타이밍이 좋을 수가. 이건 나더러 입주를 하라는 계시였다.
신청은 청약 홈에서 할 수 있는데, 당첨 경쟁률이 꽤 치열한 편이다. 여기서 나의 꿀팁. 신청할 때 세대 타입을 고를 수 있는데, 판상형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아파트 타입이고 타워형은 상대적으로 비선호되는 타입이다. 나는 사람들이 경쟁률이 비교적 낮을 것 같아 보이는 타워형 타입에 신청했고 다행히 바로 당첨이 됐다. 살고 있던 전셋집도 금방 빠져서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인천으로 이사를 하게 됐다.
지난 글에서 말했듯이 2025년 입주할 일산의 주거용 오피스텔 분양권을 받아둔 상태라, 3년 동안 살고 일산으로 이사 갈 예정이다. (파워 J이니 일단 계획은 그렇다.) 그래서 적어도 3년이란 시간 동안 이사 걱정은 할 필요가 없게 됐다. 아파트에서 살아보는 경험을 해볼 수 있다는 것도 좋은 점이다. 또, 아무래도 서울에서 멀어지다 보니 걱정을 했는데, 애초에 기준을 부산으로 잡았던 사람이라 인천이면 선녀처럼 보인다. 그리고 생각보다 부평에서 서울 진입할 수 있는 도로나 대중교통이 잘 되어 있어서 크게 불편하지 않다.
이번에 이사를 하면서 또 한 번 부동산에 있어 무지했던 스스로를 반성했다. ‘임대’라는 단어가 들어간다는 이유로 찾아보지도 않고 소득 제한이 있는 게 아닐까 편견을 갖고 있었지 않나. 사실 서울 집값이 비싸다고 불만만 얘기했지 이런 제도를 찾아볼 생각도 하지 않았다. 조금만 찾아보면 서울 행복주택(SH), 서울 영구임대(LH) 등 청년층 대상으로 주거 지원 사업이 꽤 많다. 전세금 비싸다고 월세를 낼 것이 아니라 본인의 조건이 맞는 정책이라든가 상품에 대한 공부를 스스로 했으면 좋겠다. 적어도 오늘 글을 읽은 분들이 ‘공공지원 민간임대’, 나아가 부동산 제도에 대해 관심 가지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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