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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션대리 Dec 15. 2022

프리랜서의 성과 측정은 어때야 할까?

목표 설정이냐 한계 설정이냐 / 목표라는 함정

여러분은 이상적인 목표 vs 실현 가능한 목표 어느 쪽을 선택하는 편인가요?


크로스핏을 꾸준히 했던 적이 있다. 크로스핏은 스쿼트, 데드리프트 등 여러 종류의 동작을 단기간에 고강도로 행하는 운동이다. 크로스핏에서는와드를(W.O.D : Workout of the day 당일 운동 루틴) 제한 시간 내에 최대한 많이 수행하거나 최대한 빨리 종료하는 등 제한된 시간 내에 나의 최대치 기록을 측정하는 운동이다. 운동이 끝나면 그날 나의 기록을 커다랗게 화이트보드에 써 놓는다. 본질적으로 내 한계에 도전하는 운동이라 할 수 있다.


“너 지난번에 40kg 들었지? 그럼 오늘은 5kg 높여서 45kg 들어보자.”

그날 와드의 목표는 과거의 나. 지난 운동 기록을 기준으로 목표치를 한 단계 높여서 설정한다. 예를 들어 지난번 와드에서 40kg 10개를 들었다면 이번에는 45kg를 10개 이상 하는 게 목표. 아니 정확히 말하면 10개를 넘어 최대로 몇 개 들 수 있는지를 측정한다. 대부분 크로스핏에 오는 사람들은 과거의 나를 넘어서는 것을 목표로 설정하고 제한된 시간 동안 나의 최대치를 뽑아내려고 한다. 그러다가 무리를 해서 부상을 당하곤 한다. 크로스핏에서 부상이 잦은 이유다.

크로스핏 박스(=크로스핏을 하는 공간)에 가면 두 부류의 사람들이 있다. 엄청나게 빡세게 운동하는 사람과 적당히 빡세게 운동하는 사람. 저 사람은 선수인가 하는 킹리적 갓심이 들도록 욕에 가까운 괴성을 내뱉으며 미친 듯이 운동을 하고 있는 사람이 있는 반면 나는 나의 길을 가겠다, 하며 자신만의 페이스로 운동을 하는 사람이 있다. 나는 후자의 크로스피터(였)다.


<강철부대>를 본 적 있는지? <강철부대> 시즌1에 나오는 박 군을 보며 나와 비슷한 캐릭터라는 생각을 했다. 박 군은 머리 쓰는 전략가 캐릭터다. 모래사장에서 보트를 들고뛰는 미션이 나왔다면 다른 팀들이 무작정 보트부터 들 때 박 군은 미션을 가장 힘을 덜 들이고 수행할 수 있는 효율적인 방법을 찾는다. 물가가 아닌 딱딱한 모래 쪽으로 뛰는 방향부터 정하는 식이다.

나는 웬만해서 무리를 하지 않는다. 1인 체제로 일을하고 있는 입장에서 나의 부상은 곧 회사의 잠정 휴업이므로 머릿속엔 ‘절.대.무.리.금.지'라고 입력해두고 운동을 한다. 크로스핏에서 주어진 시간 안에 내 최대 운동량을 하는 형태의 운동이 있는데(AMRAP), 그 운동을 할 때면 머릿속으로 역산을 한다. ‘아 이 무게로 1분 안에 몇 개씩 하면 20분 안에 목표치를 채울 수 있겠다.’ 운동을 할 때도 가장 효율적으로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방법을 찾으려고 애쓴다.


그게 합리적이고 똑똑한 생각인 줄로만 알았다

그날도 (내가 세운) 목표량을 채운 후 잠깐 숨을 돌리고 있는데 (쉬는 타이밍까지 계산해뒀다) 크로스핏을 함께 하고 있는 다른 사람들이 운동하는 게 눈에 들어왔다. 그런데 그들은 나와 달리 모두 RXD(최대 강도)를 하고 있었다. ‘무리'라는 단어는 애초에 배운 적이 없다는 듯  ‘따지지 않고’ ‘할 수 있는 만큼’ 자신의 한계에 도전하고 있었다. 그에 반해 나는 같은 운동을 하고 있지만 수를 쓰고 있는 느낌이랄까.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효율을 따지며 똑똑한 척하다가, 굴레 안에 스스로를 가둔 것 같았다.


목표란 이름으로 한계를 설정한 게 아닐까?

내 MBTI는 ESTJ. 목표를 설정하고 달성하기 위한 계획 세우는 걸 즐기는 성향이다. 회사원으로서는 최고의 성향이었다. 회사가 제시한 목표를 얼마나 이루었는지 성과를 평가하고 결과에 따라 고과와 인센티브를 받는데, 고과만 높게 받아도 회사원으로서의 책임은 다한 것이다.

그런데 프리랜서가 되고 보니 설정한 목표를 이루는 것만으로는 충분치가 않았다.

한 달에 월 천만 원 벌기의 목표를 세운다고 예를 들어보자. 일이 잘 풀려서 일주일 만에 수입을 천만 원 넘게 만들었다면 그 달은 ‘목표치 달성’했으니 나머지 3주는 반려견 로이를 데리고 여행을 가거나 휴식을 즐긴다. 체력이 좀 남아도 목표를 이루면 무리하지 않고 남는 시간을 편하게 보내려고 한다.

비즈니스 관점에서 보아도 매년 과도한 성장은 자칫 위험할 수 있다. 올해 15% 성장을 했다면 내년에는 30% 성장을 해야 ‘성장세를 유지’한다고 말할 수 있을텐데, 션님이라는 브랜드를 올해만 하고 끝날 게 아니므로 매번 내 최대치의 에너지를 써서 콘텐츠를 만들기보다 눌러주는 구간도 필요하다.


이게 뭐가 문제냐고? 문제랄 건 없다. 솔직히 평범 이상으로 노력하는 삶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냥, 스스로에 대한 아쉬움이 남는다. 이러한 방식으로 일하면 워라밸은 유지되겠지만 내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을까? 어쩌면 나는 목표를 빙자한 한계를 정해놓고 그 한계 안에서 안주하는 삶을 사는 게 아닐까? 100을 하려고 하는 게 아니라 적당히 ‘80점만 넘으면 좋겠다'  하고 스스로 한계를 정해놓고 만족하는 삶을 살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워라밸이 마냥 좋은 것일까?

회사원 중에서도 워라밸을 지키면서 근무 시간 내에 할당 업무량을 끝내고 퇴근 이후엔 취미 생활을 하거나 휴식을 취하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퇴근 이후에도 커리어를 위해 업무 관련 공부를 더 이어 나가거나 내가 완벽히 일을 끝내고 싶어서 자발적으로 일을 더 열심히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연봉을 두 배로 높일 가능성이 있는 사람은 어느 쪽일까? 본질적으로 성장과 안정은 함께 갈 수 없다.

내게 아쉬운 것들 중 하나는 유튜브다. 채널을 오픈한 지 4년이 넘었지만 생각만큼 구독자나 조회수가 잘 나오지 않는다. 함께 유튜브를 시작한 유튜버 친구들은 날이 갈수록 유명해지고 돈도 많이 벌고 있다. 잘 나가는 친구들을 보면 자극을 받고 한계를 뛰어넘을 생각을 해야 하는데, 나는 ‘내 목표는 요 정도니까 됐어.’ 라고 현 상태에 만족하는 편이다. 채널 성장을 위해 내 시간과 노력을 얼마나 투자하고 있나. 다시 한번 반성해본다. 효율을 따지다가 목표라는 이름 아래 내 한계를 스스로 만들어버린 게 아닌지. 답이 없는 고민이 깊어지는 밤이다.


모든 일은 내년에 내가 알아서 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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