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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선 May 10. 2024

당신의 결혼기념일

가족 단톡방에 짧은 글을 올렸다.

결혼 30주년을 맞은 소회를 담아. 

자축 겸 아들들 축하도 받고 싶어서..

큰 아들은 답이 없고 작은 아들은 직업상(직업군인)으로 연락이 안 되는 상황이지만

그래도 만족이다.

사랑한다는 남편의 하트 뿅뿅을 받았으니.


오늘 5.5일은 송 OO 김 OO의 결혼 30주년 기념일! 

사랑하고 믿음직한 두 아들을 얻은 건 큰 기쁨이고 행복이었다. 

그동안도 많이 행복했고 지금도 행복하고 앞으로도 건강하고 행복하자. 사랑해요~~


5.5일(어린이날) 결혼식 날짜를 잡은 것은 나름의 사정이 있었다.

남편과 내가 직업군인이었던 때라 날짜를 잡기에 공휴일 밖에 없어서고

같은 해 결혼을 하게 된 여동생이 있어서다.

여동생은 같은 해 10.1일 국군의 날에 결혼을 했다. 

우리 부부가 그녀의 결혼식에 참석할 수 있는 날이 공휴일인 국군의 날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와 여동생은 같은 해, 어린이날과 국군의 날에 각각 결혼식을 올렸다.

그래서 결혼기념일은 기억하기가 쉽다.

날이 날이니 만큼 그동안은 결혼기념일을 챙길 수 없었다. 

특별한 날 결혼식을 한다는 건, 기억하기만 좋을 뿐 제대로 대접(축하)을 받기 어려운 것 같다.

아이들이 어려서는 어린이날 챙기느라 우리의 결혼기념은 뒷전이었다.

아이들 데리고 놀아주느라 바빴고 결혼기념일이라 말할 여유도 없었다.

아이들이 크기만 기다렸다. 

그래야 우리의 결혼기념일이 대접받을 수 있고. 자축이라도 할 수 있으니까.


어버이날 겸해서 부모님을 뵈러 갔다. 여동생 부부도 왔다.

"우리 올해 결혼 30주년이야. 너네도 같은 해 결혼했으니 30주년이네. 

 언제 이렇게 세월이 흘렀을까?

 열심히 살아온 거 축하해. 30년 살아온 거 너무 대단하지 않냐?"

"아가씨, 축하해요. 케이크이라도 사 와야 하나?.." 

"케이크는 무슨 요. 쑥스럽게.. 

  우리는 올 9월에 결혼 30주년 기념으로 호주로 여행 가기로 했어요.

  언니는 결혼기념일이 언제예요? 몇 주년 되었어요?"

"금혼식 은혼식은 언제예요? 우리는 뭐지? 은혼식인가?"

은혼식은 결혼 25주년으로 남편이 아내에게 은으로 만들어진 선물을 하는 기념일이고

금혼식은 결혼 50주년으로 남편이 아내에게 금으로 만들어진 선물을 한다고 (네이버)가 알려준다.

긴 세월 간 자신과 함께 해줘서 감사하다는 뜻으로.

그럼 우리는 은혼식은 지나갔고 금혼식은 20년 남았네.

우리의 금혼식이 기대된다. 세월이 흐르는 건 싫지만..


부모님의 결혼기념일이 궁금해졌다.

언젠가 한 번 여쭤본 적이 있는데..   엄마는 정확히 기억을 못 하셨다.

결혼생활이 그리 행복하지 못해서 기억을 하고 싶지 않았던 걸까?

너무 오래되어서 기억을 못 하시는 걸까?

그렇게 지금껏 어영부영 부모님의 결혼기념일을 잊고 지냈던 것 같다. 

특별히 챙겨드리지도 못하고.

날짜를 기억 못 하시니 어쩔 도리가 없다는 핑계로.


엄마와 단 둘이 잠자리에서 이런저런 수다를 떨다 보니 시간 가는 줄도 몰랐다.

"엄마는 결혼기념일이 언제신가요?"

"아마 내 기억에 음력 4월 24일인 것 같다."

양력이면 기억하기 쉬었을 텐데...  음력으로 기억하려니 쉽지 않으셨던 것 같다.

(예전엔 모든 기준이 음력이었다)

날짜를 따져보니 5월 31일이다. 엄마의 기억이 맞다면..

"5월 31일이네. 올해 몇 주년이지? 음~~ 큰 오빠를 결혼한 해에 낳고 오빠 환갑이 2년이 지났으니..

 결혼 63주년이네."

"그런 것 같다."


"음력 4월 24일, 5월 31일이 엄마 아버지 결혼 63주년 기념일입니다."

가족들 모인 자리에서 공포를 했다. 

그날 어떤 이벤트로 부모님 결혼기념을 축하해 드릴지 고민해 봐야겠다. 

기억하고 챙겨야 할 날이 하루 더 늘었다. 

그래도 부모님의 결혼기념일을 정확히 알게 된 건 좋은 일이다.

그동안 뭔가 찜찜했었는데..

부모님의 결혼기념일이 언제인지도 모르고 지내는 것이.

어쩌면 부모님도 당신의 결혼기념일을 자식들이 알아주고 축하해줬으면 하는 생각을 하고

계셨을지도 모른다. 

무심한 자식들이라고 속으로 서운해하면서.


친정에서 돌아오는 차 안에서 큰 아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단톡방에 아무 응답이 없어서.. (표현을 잘 안 하는 아들이라 이해는 하지만 살짝 서운해서)

"엄마 아빠 결혼기념일이라고 외가에서 축하 많이 받았는데.

 울 아들은 축하 안 해주나?"

"축하해."

"고마워~~ 용."

겨우 그 한마디를 들었는데도 기분이 좋다.

단톡방에 남긴 내 마음이 아이들에게 전해졌겠지!! 그것이면 된다.


이제는 어린이날 챙길일은 없으니까 오롯이 우리의 결혼기념일로 기억하면 된다.

후일, 아들들이 결혼하고 손주가 태어나면

그때는 또 우리의 결혼기념일이 뒷전으로 밀려나려나? 어린이 먼저 챙겨야 한다고?

그러면 또 어때?

남편과 둘이서 자축하고 즐기면 되지!

잘 살아줘서 고맙고 행복하다고.



지금 행복하자.

happy n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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