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들 보고 싶다. 자주 와라!! 기다린다.
“오기 힘들어도 자주 왔으면 좋겠어.”
부모님 계시는 구미에서 이틀을 보내고 왔다.
여동생의 시어머니가 돌아가셔서 조문을 갔는데, 간 김에 부모님도 뵙고 작게(?) 효도도 했다.
그분은 20년 넘게 치매로 요양원에 계시다가 91세에 돌아가셨다. 호상이라고는 했지만 가족조차 못 알아본 채 가셨으니 자식들의 슬픔과 아쉬움은 더 깊었다.
오래전 갑작스럽게 시아버지의 장례를 치렀다. 돌아가시기 전 암 수술을 받으시고 건강을 회복하셔서 안심하고 있었는데 점심을 드시고 소파에 누워서 주무시듯 그렇게 가셨다. 곁에 아무도 없이 홀연히 가시는 길이 얼마나 외롭고 무서웠을까 생각하니 아쉽고 서운함이 더 컸다. 어버이날 찾아뵙겠다고 약속하고 불과 일 주 정도를 남겨두고 가셨으니 그 황망함은 표현할 수 없었고, 잘해 드린 것은 생각이 안 나고 못 해 드린 것만 기억이 나서 많이 울었다.
부부군인이라 바쁘다, 훈련이다 하면서 찾아뵙지 못했던 것이 후회스러웠다. 살아계실 적에 좋아하는 음식
한 번 더 대접하고 모시고 여행도 많이 다녔어야 했는데!
이런 아쉬움과 후회를 경험한 남편은 ‘부모님 살아계실 때 한 번이라도 더 뵈러 가자고 하는데 거리가
멀다, 바쁘다, 애들 시험이다는 핑계로 다음에 다음에 가자를 외친 것은 딸인 나였다.
짧지만 이틀을 부모님과 시간을 보내고 오니 마음이 흡족하다.
찾아뵐 때마다 기력이 예전 같지 않으신 것만 같고 소파에서 자주 졸고 계시는 아버지의 모습이 애잔하고
울 엄마도 나날이 야위고 작아지시는 것 같다.
4년 전 작은 아들이 육사 합격한 기념으로(맞벌이 시절, 작은 아이를 3~4년 키워주신 보답이다.)
엄마께 스마트폰을 사드렸는데 이참에 새로 바꿔드렸다. 이번에는 아들 졸업 기념으로..
자식들 돈 쓰는 것이 아까워 연신 미안해하면서도 좋아하신다. 핸드폰 새것으로 바꾸고 기분이 업되신 부모님을 모시고 김천으로 나들이를 갔다.
날씨도 좋고 가수 김호중의 모교가 있는 '김호중 길' 주변의 연못을 산책했다. 사진도 찍고 꽃구경도 하고
사람 구경도 하고~ 코로나 때문에 집에만 계셔서 많이 답답했는데 야외로 나오니 너무 좋다고 하신다.
사진을 찍어보면 팔순을 훌쩍 넘긴 부모님의 모습이 점점 변해가는 것만 같아 마음이 아프다.
건강도 늙어가는 모습도 한 해 한 해가 다른 것이 느껴진다.
다음 날 점심은 뽀얀 미역 국물에 새알심을 넣은 찹쌀 수제비다.
작은 오빠와 맏딸인 내가 좋아하는 음식이라고 특별히(?) 준비하셨다고 한다.
엄마는 자식들, 손주들 좋아하는 음식은 기억하고 계시다가 맞춤형으로 해주신다.
큰 아들은 OO, 작은 아들과 큰 딸은 찹쌀 수제비, 어느 손주는 갈치조림, 누구는 도라지 무침 등등
힘들고 귀찮아도 자식 손주 좋아하는 음식 하나라도 더 해먹이고 싶은 엄마의 마음이다.
우리 집도 큰아들은 김치찌개를, 작은 아들은 된장찌개를 좋아하고 작은 아들은 뭐든 잘 먹는 반면
큰아들은 편식을 하고 조금만 먹는다. 아들 둘 키우는 것도 성격과 식성이 달라서 힘이 드는데
울 엄마는 오 남매의 자식과 10명의 손주들이 좋아하는 것을 어떻게 기억하시는지 놀라울 뿐이다.
현관까지 따라 나오시며 '자주 와. 건강하라'며 눈물을 글썽이신다.
자식을 보내는 부모 마음은 늘 서운하고 아쉬움뿐이다. 또 오겠다고 약속하지만 언제 다시 찾아 뵐 수 있을지? 몇 시간 거리는 일도 아닌데 바쁘다며 내 몸 조금 편하자고 자주 뵈러 가지 않는 자식의 이기심이다.
'천안에 잘 복귀했습니다. 부모님과 형님들 덕분에 잘 쉬다가 왔습니다. 부모님 항상 건강하시고
오래오래 저희 곁에 계시기를 기원합니다.' (남편이 가족 단체방톡에 글을 올렸다.)
'알겠어 오기 힘들어도 자주 왔으면 좋겠어.' (울 엄마의 답변이다.)
그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자식들 보고 싶다. 자주 와라!! 기다린다.
두렵고 겁이 난다. 부모님이 우리 곁을 떠나가실 날이 언젠가는 올 것이란 사실이.
언젠가는 올 그날이 아주 아주 먼 미래이기만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