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담화 하지 않기 위해

해야 할 말을 해요

by hosu네

결혼 전 상견례에서, 시부모님은 굉장히 앞서가는 발언들을 많이 하셨다. 명절에 안 와도 된다! 너희들끼리만 잘 살면 되지. 서로 자녀의 자랑 배틀을 하던 상견례 장에서 마무리가 어떻게 그렇게 나왔는지는 모르겠지만, 큰 문제는 없었고 결혼도 잘 마무리되었다.


첫 명절이었다. 그때는 우리 부부가 수도권에 살 때여서 오랜만에 부산에 내려가는 거였다. 시부모님 댁에서 자야 했는데, 그런 건 처음이니 꽤나 긴장해 있었다. 그리고 당시에는 시부모님 댁에 시아버지의 형제들도 다 모였다. 아마도 그날 작은 아버지, 작은 어머니는 그 집에 처음 들어온 며느리가 궁금했으리라.


거슬리는 것들은 당연히 있었다. 시어머니는 나에게 앞치마를 주었지만 남편도 앞치마를 했고, 작은 어머니들은 명절에 집에 오면 자기 방에 들어가 잠을 자던 남편이 전을 부친다는 걸 보고 놀렸다. 자기 와이프 힘들까 봐 안 하던 걸 하네. 기독교 시부모님이 시할머니 돌아가실 때까지는 차례를 지내신다고 해서 알겠다고는 했지만, 나도 그동안 명절이면 누워서 받아만 먹던 사람이라 이리저리 들리는 말이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그래도 가만히 잘 있던 내게 불을 붙인 건 작은 아버지 한 분의 말씀이었다.

"출가외인인데, 이제 여기가 네 식구다. 친정보단 여길 더 챙겨야지. "

와우. 나는 순간 오래간만에 속이 확 타는 걸 느꼈다. 너무 화가 나있던 내 모습을 보고 남편이 일부러 강아지 산책을 시킨다고 같이 나왔다. 강아지와 함께 어딘지도 모르는 길로 정처 없이 걷다가 눈물이 났다. 왜 아까 앞에서 받아치지 못했지? 난 원래 그런 사람이 아닌데.


나는 알았다. 이미 지나간 순간이라 더 이상 그분들에게 뭐라 하진 못할 것 같다. 하지만 난 이 일을 두고두고 기억하면서 누군가에게 뒷담화를 하겠지. 그렇다면, 난 이제 결코 뒷담화 만드는 일을 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 엄마가 듣고 안타까울 일은 전혀 만들지 않을 것이다. 쟤 왜 저래하고 말릴 일을 만들면 모르되.


이후 나는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했다. 제사 이야기를 꺼내는 시부모님 앞에서 저는 기독교예요. 어머니 아버지도 기독교시잖아요. 저 안 가요.라고 이야기했고, 추석에 동생과 엄마가 모두 해외여행을 가게 되어 아빠만 집에 남자 그럼 우리 아빠 외로우니까 난 이번 명절엔 안 가겠다. 남편 너는 너희 집에 가라고 말했다. 시어머니가 명절 음식을 하시면 '힘들잖아요. 사 먹어요. 제가 사 올게요.'를 반복했다. (결국 최근엔 사서 먹었다)


내게 내 뒷담화가 들려왔다. 가끔 남편이 시가의 입장을 전달했다. 남편은 좀 좋은 게 좋은 거다 주의라-이것도 자기 집의 이야기니 그럴 거라고 생각한다-시부모님이 뭐라고 하면 힘들어했다. 그래서 남편에게는 아무 말 말라고, 내가 말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시부모님의 불만이 있는 것 같을 때 방문하면 또 그런 이야기를 꺼내지 않으셨다. 내가 먼저 굳이 꺼내기도 뭐 해서 나는 또 즐겁게 맛난 걸 먹고, 재미나게 이야기하고 돌아왔다.


한 번 시어머니가 내가 말씀하신 적이 있다. 너는 대단하다. 네가 하고 싶은 말 다 하고.


우리 시어머니는 정말 오래 일을 하셨다. 가사뿐만이 아니라, 맞벌이로 늦게까지 돈을 버셨다. 그러면서 그 집안의 큰며느리로 가사도 도맡아 하셨다. 기독교이심에도 차례, 제사 빠짐없이 다 하셨다. 나는 우리 시어머니가 항상 안쓰럽다. 내가 좀 더 능력이 있었으면 시어머니 여행도 같이 가고 싶을 만큼. 그런데 이 애정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결국 내가 뒷담화 할 일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내가 정말 하고 싶은 말을 다 하는 건 아니다. 이걸 말하지 않으면 우리 엄마 아빠 앞에서 별로야!라고 말할 것들을 말할 뿐이다. 우리 엄마 아빠가 어디 가서 내가 할 말도 못 하게 가르치지도 않았지만, 내가 어디 가서 사회성 떨어지게 아무 말이나 막 하게 가르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내가 이렇게 마음을 먹고 나서 나는 남편의 가족들이 좀 더 가깝게 느껴졌다. 그렇게 옆에서 뭐라 타박하던 작은 시부모님들은 코로나 이후로 모이지도 않는다. 제사를 그렇게 귀하게 여겼으나 안 하고도 모두 잘 살고 있다. 누군가 힘들어 유지가 되는 모임은 결국 파투로 끝난다. 도리? 내가 생각하는 도리란 남편과 행복하게 잘 사는 것이다. 그 외는 다 부차적인 것들이 아닌가. 그리고 그 기본이 잘 갖춰져야 남편의 가족도 좋아 보이는 게 아니겠는가. 내가 할 말도 하지 못하는데 어떻게 내가 행복할 수가 있겠는가. 나의 세상에선, 옳은 것이란 그런 것들이다.




작가의 이전글비가 오는 날 무얼 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