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안 변한다. 과학적으로도 증명됐다.
결혼하려는 사람이 특별하고 소중한 건 당연하다. 평생을 반려자로서 배우자로서 생각하는데 소중한게 당연하다. 그런 사람이 몸무게도 신경써주고 관리까지 해준다는데 얼마나 고맙겠는가. 근데 도를 지나친다. 특정 몸무게를 넘지 말라니, 이건 관리가 아닌 그저 본인이 좋아하는 몸무게를 강요하는 거다. 관리라는 이름하에, 도와주고 싶다는 마음으로 심하게 독촉하고 스트레스까지 주는 행동은 본인 욕심 채우려는 것 뿐이다. 그저 고집이고 아집일 뿐이다. 본인이 원하는 데로 모든 걸 맞춰달라고 하는 것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다른 상황은 볼 필요도 없을 듯하다. 몸무게까지 관리하려는 사람에게 굳이 맞춰줘야 하는 이유가 뭘까. 그 사람이 원하는 몸무게를 억지로 유지하고 고통받으며 살아야 하는 이유는 대체 어디 있을까. 만약 몸무게 관리를 못하게 되면 싸움이나 이별밖에 없는 건가. 사람 그 자체를 보고 만나는 게 아니라 자기 기준에 맞춰주고 이를 지켜줄 사람을 찾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따.
이런 사람에게 자신을 희생하고 맞춰줘야 할 이유는 어디서 나오걸까? 알 수 없다. 무슨 이유가 됐던, 다른 사람을 조종하고 자신의 기준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하는 건 집착이고 소유이다. 사람은 소유할 수 없는 것 아닌가. 자신의 기준을 벗어나면 언제든지 버릴 준비가 된 건 아닌지도 생각해 봐야 한다. 버린다는 말이 조금 그렇지만 그 사람 입장에서는 그렇게 생각이 될 수도 있다. 그리고 기준을 벗어 났을 때 그 기준을 지키지 못 했다고 당신을 괄시하고 비난 할지 모른다.
자기 기준을 정하는 건 좋다. 줏대를 정하는 것도 좋다. 하지만 그 기준을 타인에게 엄격하게 일방적으로 적용해서는 안된다. 자신의 기준을 다른 사람들이 맞춰주고 부응해준다면 고마워해야 될 일이지, 그 기준을 벗어났다고 싫은 티를 내고 기준안에 억지로 쑤셔 넣어 재단하려는 행동은 올바른 행동이 아니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누군가는 희생할 때 누군가는 기준만을 앞세울 수 있다. 그런 상황이 두 사람에게 맞고 행복을 가져온다면 누가 뭐라 하겠는가. 하지만 기준을 세우는 사람 따로, 조건과 생각없이 기준을 따르는 사람 따로 존재하며 평생을 두 사람이 행복하게 살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기준을 세우는 사람이 필요하긴 하다. 사람마다 성격이 다르기에 누군가는 이끌고 누군가는 보조하는 역할을 맡을 수 있다. 하지만 어떤 기준 이전에 먼저 서로의 동의가 이뤄줘야 하는 것 아닐까?
다른 한쪽의 동의 없이 기준을 세워놓고는 무조건적인 복종을 따르라는 건 독재다. 누가 그에게 독재할 권리를 주었는가 묻는다면 그 사람을 맹목적으로 따르는 사람이라고 하겠다. 사랑하기에 복종한다면 반대로 사랑하기에 의견을 묻고 동의를 구하고 기준을 함께 세워야 맞는 것 아니겠는가. 함께 하자고 결혼하고 사랑하고 연애하는 것이지 누가 누구를 복종시키고자 하는 게 아니지 않은가.
사람을 달라지게 하는 법은 없다. 본인을 낮추고 상대방에게 맞춰주거나 스스로 깨닫는 방법밖에 없다. 사람은 원래 서로 잘 안 맞는다. 맞춰가는 수밖에 없다. 고치겠다는 불가능한 생각은 오만하기 그지없다. 누군가 본인의 성격을 고쳐놓고 말겠어라고 말한다면 뭐라고 대답해 주겠는가. 맞춰주고 양보하고 인내하는 수밖에 없다.
우리 모두는 단점을 용인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물론 반대의 경우도 있다. 장점을 더 크게 보고 단점을 작게 보아준다면, 본인의 단점을 이해해주고 장점을 봐주는 사람이라면 우리는 상대편에게 똑같이 해 줄 수 있어야 한다. 그럴 사람이고, 본인이 그래 주고 싶은 사람이라면 함께 해도 나쁘지 않을 듯하다. 그렇다면 반대편도 당신에게 그리 해줄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서로가 서로의 단점 보다는 장점을 보려고 할 때 함께하고, 더 나아가 평생을 함께 사는게 아닐까 한다.
비단 연애만의 문제가 아니다. 인간은 단점만을 지적하는 사람과는 누구도 친해지고 싶어하지 않는다.
에세이 : 사랑을 하는 걸까 연애를 하는 걸까
저자 : Ko H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