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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호


결론적으로, 제한 코타드 식당이 개업을 하려는 조짐을 보이기 6주 전이었기 때문에 나는 계약을 깨지 않았다. 그동안, 나는 호텔 X에서 일을 했다, 한 주에 4 일은 카페테리아에서, 하루는 4 층에서 웨이터들과, 하루는 식당에 나갈 식기를 설거지하는 여자를 대신했다. 내 쉬는 날은, 운이 좋았다, 일요일이었다, 하지만 누군가가 아프면 그날도 일을 해야만 했다. 근무시간은 아침 7 시부터 점심 2 시까지, 그리고 저녁 5 시부터 9시까지 열 한 시간이었다; 하지만 식당 설거지까지 할 때면 14 시간을 일해야 했다. 파리의 접시닦이들의 평범한 기준에 비하면, 내 근무시간은 보기 드물게 짧은 시간이었다. 이 삶의 오직 어려운 점은, 무섭도록 덥고 답답한, 미로 같은 지하실들이었다. 지하실만 제외하면, 호텔은 크고 제대로 정돈되어 있었다, 아늑하게 여겨졌다.


카페테리아는 좌우 20피트, 7피트 그리고 높이는 8 피트 정도 되었고 매우 더러웠다, 커피 항아리나 빵 자르는 도구들로 가득 차 있어 누구도 이것들과 부딪히지 않고는 움직일 수가 없었다. 이 곳을 밝히는 곳은 단지 희미한 전등 하나뿐이었고, 네, 다섯 개의 가스화로 들은 맹렬하게 붉은 숨결을 내뿜었다. 온도계가 하나 있었는데, 절대 화씨 110도 밑으로는 떨어지지 않았고 낮 동안에는 130도까지 올라가기도 했다. 한쪽 끝에는 다섯 개의 엘리베이터가 있었으며, 반대 끝 쪽에는 우유나 버터를 보관하는 얼음 벽장이 있었다. 얼음 벽장에 한 발자국만 들여놔도 온도의 100도는 단번에 떨어 뜨릴 수 있었다. 그곳은 그린란드의 얼음 산과 인도의 산호해변에 대한 찬가를 기억나게 해주었다. 나와 보리스를 제외하고도 2 명이 더 카페테리아에서 일을 했다. 한 명은 마리오였는데, 덩치가 크고, 흥분을 잘 하는 이탈리아 사람이었는다-그는 오페라 가수의 몸짓을 가진 도시 경찰 같았다- 다른 한 명은, 털이 많고, 무례한 짐승이었는데 우리는 그를 마자르 사람이라 불렀다. 내 생각이지만 그는 트랜슬배니아 사람이었거나 아마 더 먼 어느 딴 나라의 사람이었을 것이다. 마자르를 빼고는 우리는 모두 덩치가 컸다, 바쁠 때는 끊임없이 서로 부딪혔다.


카페테리아의 일은 예측할 수 없었다. 우리는 절대 게으름을 필 수가 없었는데, 진짜로 일이 폭발하는 건 한 번에 두 시간 씩이었다.-우리는 바쁜 시간을 '발사'라고 불렀다- 첫 번째 '발사'는 8 시에 찾아왔다, 손님들이 잠에서 깨 아침을 주문할 때다. 8 시에는 갑작스러운 소음과 외침들이 지하실 전체에 걸쳐 터져 나온다. 종들은 여기저기서 울리고, 푸른 앞치마의 남자들은 복도를 뛰어다니며, 우리의 엘리베이터들은 굉음과 동시에 내며 내려온다, 그리고 5 층 전체에 있는 웨이터들은 이탈리아 말로 욕하며 수직 통로에 대고 소리치기 시작한다. 우리가 했던 모든 업무가 기억은 안 난다, 하지만 커피나 차 그리고 초콜릿을 끓이고, 음식은 주방에서, 와인은 창고에서, 과일 같은 것들은 식당에서 가져와야 했다, 빵 썰기, 토스트 굽기, 버터 덩어리를 말기, 잼의 양 재기, 우유 깡통 따기, 설탕 덩어리 세기, 계란 삶기, 포리쥐 요리하기, 얼음 깨기, 커피 갈기 등이 포함되어 있었다. - 이 모든 것을 100 명에서 200 명의 손님 분에 맞추어했다. 주방의 크기는 30 야드 정도 되었고, 식당은 60에서 70 야드 정도 되었다. 엘리베이터를 통해 올려 보내는 모든 것은 숙박권에 포함되었기에, 숙박권은 제대로 보관해야만 했다, 만약 설탕 한 덩이라도 없어지면 문제가 됐다. 이 것 외에도, 직원들에게 빵과 커피를 제공해야 했고, 윗 층에 있는 웨이터들에게 음식을 가져다주었다. 전체적으로, 복잡한 일이었다.


계산을 해 보니 한 사람이 하루에 15 마일을 뛰거나 걸어야만 했었다, 하지만 이 일은 육체적인 것보다 정신적인 면이 더 컸다. 그 어떤 일도, 겉으로 보자면, 이 멍청한 부엌일 보다 쉬운 건 없었다, 하지만 한 번 바빠지면 놀라우리만치 어려웠다. 많은 일 사이를 종횡무진 뛰어다녀야 했다-정해진 시간 안에 카드 한 묶음을 순서대로 정리하는 것과 같다- 토스트를, 예를 들자면, 만드는 중이었다, 갑자기 쾅! 홍차, 롤 빵과 각기 다른 세 가지 종류의 잼 주문이 실린 엘리베이터가 내려온다, 그리고 동시에 쾅! 다른 엘리베이터가 으깬 계란, 커피 그리고 왕귤을 요구하며 내려온다. 계란을 가지러 주방으로, 과일을 가지러 식당으로 뛴다, 번개처럼 뛴다, 토스트가 타기 전에 돌아와야 한다, 그러면서도 커피와 차를 기억하고 있어야만 한다, 게다가 이 많은 주문들 외에도 다른 주문들은 여전히 밀려가고 있다. 그리고 동시에 웨이터 한 명이 쫓아와서는 없어진 탄산수로 시비를 건다, 그러면 그 사람과 말싸움을 하고 있게 된다. 보통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두뇌를 필요로 하는 일이다. 마리오는, 정말 그렇다, 믿을 수 있는 카페테리어가 되기 위해선 족히 일 년은 걸린다 했다.


8시부터 10시 사이는 광란의 시간대였다. 어떤 때는 우리 5분밖에 못 살 사람들처럼 행동했고, 어떤 때는 주문이 멈춰 갑작스러운 소강상태가 찾아왔다, 그 순간만큼은 모든 것이 차분해지는 듯했다. 그러면 우리는 바닥에 쓰레기를 치우고, 새 톱밥을 자빠뜨렸다, 그리고는 와인이나, 커피나 홍차를 사발로 들이켰다-젖어있기만 하면 그 어떤 거라도 마셨다. 우리는 자주 얼음덩어리를 깨서 입에 넣고 일 하는 동안 빨아먹었다, 가스난로에서 나오는 열기는 메스꺼웠다. 하루에 2리터가 넘는 물을 들이켰다, 몇 시간만 지나면 앞치마 조차도 땀으로 흠뻑 젖었다. 가끔은 절망할 정도로 일에 치이고는 했다, 그럴 때면 몇몇 손님은 아침도 못 먹고 떠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마리오가 우리를 잘 이끌어 주었다. 그는 카페테리아에서 14년을 일 해 왔었고, 일과 일 사이에서 1초도 절대 허투루 쓰지 않는 실력을 갖추고 있었다. 마자르는 정말 멍청했고 나는 경험이 없었다, 그리고 보리스는 게으름을 피웠는데, 어느 정도는 절룩 다리 때문에 그랬고, 한 편으로는 웨이터였던 그가 카페테리아에서 일한다는 창피함 때문이었다, 하지만 마리오만큼은 경이로웠다. 마리오는 대단한 팔을 카페테리아를 가로질러 뻗어 커피 주전자를 채우고 다른 한 손으로는 계란을 삶았으며, 동시에 토스트를 보며 마자르에게 윽박을 질렀다, 그리고 이런 틈들 사이사이에 가곡 리골레토의 몇 소절을 부르고 있었다, 경의로움 그 이상이었다.


주인은 그의 가치를 알고 있었다, 우리들처럼 한 달에 500 프랑이 아닌, 한 달에 천 프랑을 받았다. 열 시 반에는 아침의 대혼란이 끝이 났다. 그러면 우리는 카페테리에의 식탁을 북 북문 질러 씻고, 바닥을 닦고 놋그릇에 광을 냈다, 그리고, 한가해진 아침에는, 한 명씩 담배를 피우러 화장실에 갔다. 이 시간이 한산한 시간이었는데- 그나마 상대적으로 그런 시간이다, 하지만, 단 한 번도 방해를 안 받고 보낸 적은 없었다. 손님들의 점심시간은, 열 두시부터 두 시 사이였고, 아침시간같이 또 다른 혼란의 시간이었다. 대부분은 주방에서 음식을 가져오는 일이었는데, 끊이지 않는 요리사들의 싫은 소리를 의미했다. 이 시간즘되면 요리사들은 화로 앞에서 네, 다섯 시간 땀을 흘린 것이고, 그들의 성질도 적당히 열이 올라 있을 때다.


두 시에는 갑작스레 자유의 몸이 되었다. 우리들은 앞치마를 팽개치고 코트를 챙겨 입고는, 잽싸게 문 밖을 나선다, 돈이 있었을 때는, 가까운 술집으로 뛰어 들어갔다. 불구덩이 지하실에서 거리로 올라오면, 뭔가 이상했다. 마치 북극 여름의 극 할 정도 맑고 찬 공기 같았다. 음식과 땀의 악취 이후 맡는 휘발유 냄새는 정말 달콤했었다! 가끔 같이 일하는 웨이터들과 요리사들을 술집에서 만나고는 했다, 그들은 살갑게 굴었고 술도 사주었다. 안에서야 우리는 그들의 노예였지만, 일을 하지 않는 시간에는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가 호텔의 기본 예의였다, 욕설도 마음에 담지 않았다.


5시 15분 전에는 모두 호텔로 되돌아 갔다. 6시 반까지는 주문이 없었다, 우리는 이 시간을 식기구에 광을 내거나, 커피 기구들을 닦거나, 다른 이상한 일들을 하는 데 사용했다. 그러고 나면 하루 중 가장 장엄한 혼란이 시작되었다, 저녁식사 시간이었다.- 아주 잠깐만이라도 졸라가 되어 이 저녁시간을 그려 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상황을 요약하자면 100 명에서 200 명의 각자 5 또는 여섯 가지의 각기 다른 코스요리를 주문한다, 50 명에서 60 명의 사람이 이를 위해 요리하고 시중을 들고 후에 청소까지 해야 한다, 요식업을 경험 한 사람이라면 이게 무슨 뜻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이 시간대에 일이 두배일 때는, 전 직원이 녹초가 되고, 많은 직원들이 취해 있게 된다. 정확한 기억 없이도 이 장면에 대해서는 몇 장이고 쓸 수 있다. 종업원들은 좁은 복도를 이리 뛰고 저리 뛴다, 부딪힘, 고함, 얼음덩어리, 상자, 쟁반과의 고군분투, 열기, 어두움, 결판을 낼 시간도 없음면서 분노에 차 곪아가는 말싸움 등등-어떻게 표현을 할 수가 없다. 지하실에 처음 온 사람이라면 미치광이들의 소굴에 들어왔다고 생각할 수 있다. 나중에 되어서야, 호텔의 일을 이해했고, 나는 혼돈 속의 질서를 볼 수 있었다.


8시 반이 되면 일이 확 하고 멈춘다. 9시까지는 자유가 아니었지만, 우리는 바닥에 대자로 드러누워 버리고는 했다, 누워서 다리를 쉬게 했는데, 너무 지쳐 물을 마시러 얼음창고까지는 가지도 못 했다. 가끔 부지배인이 맥주 몇 명을 들고 내려왔다, 고된 하루를 보낸 날은 호텔에서 한 명의 맥주를 사주고는 했다. 우리에게 주어지는 음식은 그저 그랬지만, 주인은 술에서 만큼은 짜지 않았다. 매일 하루 2리터의 와인을 허락해주었다, 접시닦이에게 2리터가 주어지지 않으면 3리터를 훔친다는 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에겐 남은 술도 있었기에, 너무 많이 마시고는 했다- 하나 좋은 점은, 적당히 취하면 더 빨리 일하는 것처럼 느껴졌다는 거다.


4일이 이런 식으로 지나갔다, 남은 이틀 중 하루는 괜찮았고, 하루는 더 심했다. 이런 삶의 한 주가 지나자 나는 휴가가 필요했다. 토요일 밤이었고, 우리 호텔 술집에 있는 사람들은 취하기에 바빴다, 쉬는 날 전이었던 나도 합류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모두 자러 갔다, 취했고, 새벽 2시였으며, 정오까지 늦잠을 자려했다. 5시 반즘 갑자기 누군가가 나를 깨웠다. 호텔에서 보낸 야간 경비원이 내 침대 옆에 서 있었다. 옷들을 벗겨내며 나를 거칠게 흔들었다.


'일어나!' 그가 말했다. '거하게 마시셨구먼, 그래도 여하튼, 호텔에 사람이 부족해. 오늘 일해야 돼.'


'내가 왜 일을 해야 합니까?' 나는 저항했다. '오늘은 내 휴무 라구요.'


'휴무, 어쩌란 말인가! 일이 있으면 해야지. 일어나!'


나는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허리는 마치 부러지고 머리는 뜨거운 숯덩이로 가득 찬 것 같았다. 나는 오후 근무를 제대로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지하실에 한 시간 정도 있자, 완벽히 멀쩡해진 나를 발견했다. 마치 뜨거운 터키탕에 들어간 것 비슷한데, 창고의 열기 속에서는 얼만큼의 술이라도 땀으로 쏟아 낼 수가 있었다. 접시닦이들은 이를 알고 있었고, 믿고도 있었다. 와인을 몇 리터든 들이마셔도, 숙취가 오기 전에 땀으로 빼낼 수 있는 권한은 그네들이 가진 삶의 낙 중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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