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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호 Sep 23. 2017

19

하루는, 호텔 X에서 5주에서 6주를 지난 뒤였다, 보리스가 말도 없이 사라졌다. 저녁이 돼서야 리볼리 거리에서 나를 기다리던 그를 찾을 수 있었다. 그가 기뻐하며 내 어깨를 쳤다. 


'드디어 자유네, 내 친구! 내일 아침 일을 그만둔다고 알려도 좋아. 러시아 식당이 내일 문을 연다네.'


'내일이요?' 


'음, 아마 하루나 이틀 동안은 이것저것 정리해야 될지 모르지만. 여하튼! 카페테리아 일은 안 해도 돼! 드디어 시작일세, 친구! 전당포에서 이미 내 연미복도 찾아 놨어.'


그의 태도가 너무나 쾌활했기에 분명 뭔가 잘 못 되고 있음이 느껴졌다, 게다가 나는 편하고 안정적인 호텔 일을 그만두고 싶지 않았다. 그렇지만, 나는 보리스에게 약속을 해놨기에, 사표를 냈고, 다음 날 아침 7시에 러시아 식당으로 갔다. 문이 잠겨 있었기에, 나는 보리스를 찾아갔다, 보리스는 또 숙소에서 도망 나와서는 그 호와 니버트에 방을 잡고 있던 중이었다. 전날 밤 만난 여자와 함께 자는 그를 볼 수 있었다, 그의 말로는 '동정심이 깊은 여자'라고 했다. 식당에 관해서는, 모두 정리가 되었다고 했다. 문을 열기 전 자잘한 몇 가지만 확인하면 된다 했다. 


열 시에 보리스를 침대에서 끌어내, 가게 문을 열었다. 보리스가 말한 손 봐야 할 '자잘한 것들'이 쌓여 있는 게 한눈에 보였다. 한 마디로, 지난 마지막 방문 이후로 손 본 게 하나도 없었다. 주방에 쓸 스토브는 도착하지 않았고, 수도와 전기도 들어오지 않은 데다가, 도색, 목공, 청소 모두 마무리가 되어야 했다. 기적이 아니고는 10일 안에 개업할 방법이 없었다, 물건들은 외관만 봐도 개봉도 하기 전에 부서져 버릴 듯했다. 어떤 일이 있었는지 너무 빤했다. 사장은 돈이 부족해서, 전문직공들 대신 식당 직원들을(나를 포함 총 네 명이 있었다) 쓰기로 한 것이다. 그는 거의 공짜로 우리를 부려 먹었다, 웨이터들은 급여를 못 받았고, 나에겐 급여를 줘야 했지만, 식당 개시 전까지 밥을 주지는 않았다. 사실상, 사장은 개시 전부터 식당 일을 시켜 우리들로부터 몇 백 프랑이나 등쳐 먹었다. 보리스와 나는 아무것도 얻지 못하고 좋은 직장만 날린 꼴이 되었다. 


보리스는, 그럼에도, 희망이 넘쳐났다. 그의 머릿속에는 한 가지 생각밖에 없었다, 그건, 드디어 웨이터가 되어 연미복을 다시 입는 기회였다. 결국 실직자가 될 수 있음에도 이 희망에 10일간의 무임금 노동을 꺼리지 않았다. '참아보게!' 그는 계속 이렇게 말했다. '모든 게 정리될 거야. 식당이 문을 열 때까지만 기다리게, 그러면 모두 돌려받을 수 있어, 견뎌내게, 친구!'


우리에게는 인내가 필요했다, 며 칠이 지났지만 식당 개시를 위한 진척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우리는 지하실을 치우고, 선반을 고치고, 벽의 도색을 하고, 목조 제품을 광내고, 천장을 하얗게 칠했으며, 바닥을 착색했으나, 배관, 전기, 가스관 같은 중요 작업이 완료되지 못했다, 주인이 요금을 낼 요량이 없었기 때문이다. 분명히 그는 한 푼도 없었다, 얼마 안 되는 요금도 내기를 거부했고, 돈을 부탁하면 신속히 모습을 감추는 요령이 있었다. 사장의 수완과 귀족적인 태도는 그를 상대하기 매우 어려운 사람으로 만들었다. 구슬퍼 보이는 빚쟁이들은 시도 때도 없이 그를 찾아왔고, 우리는 지시받은데로, 퐁텐블로, 성 클라우드, 아니면 다른 장소들을 말해주었는데 모두 먼 거리에 있는 곳들이었다. 그 기간 동안, 나는 점점 더 굶주렸다. 호텔을 나올 때 30프랑이 전부였다, 다시 마른 빵 식단으로 돌아가야만 했다. 처음에 보리스가 사장으로부터 60프랑을 선금으로 짜내긴 했었다, 하지만 보리스는 그 돈의 반을 연미복을 수선하는데, 나머지 반은 동정심이 넘친다는 그녀에게 써 버렸다. 그는 매일 3프랑을 두 번째 웨이터인 줄스에게 빌려 빵을 샀다. 언젠가부터는 담배를 살 돈 조차도 없었다. 



주방장은 상황이 잘 진행되는지 가끔 확인하러 왔는데, 그녀는 주방에 기본적인 솥과 냄비만 있는 걸 보면 매번 눈물을 흘렸다. 줄스는, 이등 웨이터였는데, 확고하게 일 돕기를 거부했다. 마자르 사람으로, 굉장히 언변히 좋고, 약간은 까만 피부에, 날카로운 모습이 인상적인 남자였다. 그는 의대생이었지만, 돈이 부족해서 실습을 그만두었다. 다른 사람이 일 할 때 수다를 떠는 취향이 있었고, 본인 자신과 자기가 겪은 모든 경험담을 말해 주었다. 그는 공산주의자 같았고 갖가지의 이상한 이론을 가지고 있었다(일하는 게 왜 잘 못 됐는지 숫자를 가지고 증명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대부분의 마자르 사람이 그렇듯, 자존심이 격하게 강했다. 자존심이 쌔고 게으른 사람은 좋은 웨이터가 될 수 없다. 줄스의 가장 큰 자랑거리는, 자기가 일했던 레스토랑에서 그를 모욕한 어떤 손님의 목에 수프를 부어버리고, 해고 따위는 기다리지도 않고 바로 식당을 박차고 나왔다는 거였다. 


하루가 지날수록, 줄스는 사장이 우리에게 부리는 술수 때문에 점점 더 격분하게 됐다. 그는 분을 못 이겨 말을 더듬고, 연설하듯 말하는 습관이 있었다. 주먹을 흔들고 주위를 서성거리며 나에게 일을 하면 안 된다고 선동하려 했다. 


'그 빗자루 내려놔요, 멍청한 양반아!' 당신과 저는 자랑스러운 종족입니다. 저 빌어먹을 러시아 농노처럼 무임금에 일해서는 안돼요. 정말이지, 이렇게 사기당하는 건 나한텐 고문이나 다름없어요. 내 이런 적이 몇 번이나 있었는데, 누군가 5닢이라도 사기를 치면, 구토를 했습니다, 그래요, 분노로 구토를 해버렸다고요.'


'게다가, 이봐요, 난 공산주의자라고요. 빌어먹을 부르주아들! 내가 안 해도 되는 일을 하는 건 본 사람이 있나요? 없지요, 난 노동 따위로 나를 피곤하게 하지 않습니다, 당신들 같이 멍청한 사람들처럼, 하지만 나는 훔칩니다, 나의 독립성을 증명하기 위해 말이지요.' 나를 개처럼 취급해도 된다고 생각한 사장이 운영하던 식당에서 일을 했었습니다. 그래서, 복수로 우유 깡통에서 우유를 훔치고는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하게 다시 봉해 놓았죠. 밤낮으로 우유를 훔쳤습니다. 매일같이 4리터의 우유를 마시고, 거기에 더해서 크림 반리터도 먹었습니다. 주인은 우유가 어디로 사라지는지도 모르고 어쩔 줄 몰라하더군요. 우유를 원해서 그런 게 아니에요, 이해하시겠습니까, 나도 싫어요. 제 원칙이었습니다, 단순히 제 원칙이었을 뿐입니다.'


'근데, 3일이 지나자 배가 끔찍할 정도로 아파 오더군요, 그래서 의사에게 찾아갔습니다. '그동안 무엇을 드셨습니까?' 의사가 물었습니다. 대답을 해 줬지요, '하루에 4리터의 우유와 반리터의 크림을 마셨습니다.' '4리터요!' 그가 말하길, '당장 멈추시오. 계속 마시면 속이 다 망가져 버립니다. '제게 중요한 게 뭔지 아십니까?'라고 대답했습니다. '나에겐 원칙이 전부입니다. 내 몸이 부서지는 한이 있어도 그 우유들을 마셔 버릴 겁니다.' 


'아쉽지만, 다음 날 우유를 훔치다 주인에게 걸렸습니다. '넌 해고야, ' 그리 말하더군요, '이번 주 주말에 나가주게.' '실례합니다만, 사장님, ' 내가 말했지요, '오늘 오전에 떠나겠습니다.' '아니, 그렇게는 안 되지, ' 그가 말하길, '이 번 토요일까지는 그냥은 못 보내주지' '좋습니다, 사장님, ' 그러고는 속으로 생각했지요, '누가 먼저 지쳐 떨어지나 봅시다.' 그렇게 일을 시작했고 식기들을 깨기 시작했습니다. 첫날에는 9장의 접시를, 다음 날에는 13장을 깼습니다. 그러고 났더니 사장은 제 마지막 모습을 보며 기뻐하더군요.' 


'아, 난 당신이 아는 그런 러시아 농민이 아닙니다...'


열흘이 지났다. 상황이 좋지 않았다. 결국 돈도 바닥이 났고, 방세는 몇 날을 밀려 있었다. 우리는 텅 비고 우울한 식당에서 빈둥거렸다, 배가 너무 고파 남은 일도 처리할 수 없었다. 오직 보리스만이 식당이 개시할 거라 믿었다. 그는 급사장이 될 생각만 했고, 사장의 돈이 주식에 묶여 있어 매도할 적절한 순간을 기다린다는 이론도 만들어 냈다. 열흘째 되던 날에는 먹을 것도 담배도 없었다, 주인장에게 선불을 주지 않으면 일을 계속할 수 없다고 전했다. 매번 그랬듯 침착하게, 사장은 급여를 주겠다고 약속했다, 그러고 나서는, 그의 습관에 따라, 사라졌다. 집에 돌아가는 길이었지만, 밀린 방세 때문에 마담 F를 마주할 자신이 없었다, 그리하여 어느 대로의 의자에서 하루 밤을 보냈다. 정말이지 불편했다-의자의 팔거리가 등을 아프게 했다-그리고 생각보다 더 추웠다. 이 러시아인들의 손에 나를 맞긴 것이 얼마나 바보 같은 짓이었는지 생각할 수 있었던 충분한 시간이 있었다, 새벽과 출근 사이는 정말 길고 지루한 시간이었다,      


그렇지만, 아침이 되자, 행운이 다시 찾아왔다. 보아하니 사장이 그의 채권자들의 이해를 얻어낸 것이다. 사장은 주머니에 돈을 채워 돌아왔고, 내부수리가 진행이 되었다, 그리고 나에게 가불을 주었다. 보리스와 나는 말의 간과 마카로니를 샀다, 열흘만에 먹는 따뜻한 음식이었다.   


전문일꾼들이 왔고, 놀라울 정도로 조잡한 자재들을 가지고 허둥지둥하며, 내부를 개조했다. 예를 들어, 식탁의 경우, 녹색 모직으로 덮기로 했으나, 사장이 녹색 모직이 비쌈을 알자 용도 폐기된 군용 담요를 대신 사 왔다, 땀 냄새를 어찌할 수도 없었다. 당연하지만, 식탁보로(바둑판무늬였는데, '노르망디'풍의 장식들에 어울렸다) 덮기는 했다. 마지막 날에는 새벽 두 시까지 개업 준비를 위해 일 했다. 그릇들은 8시까지 도착하지 않았다, 그리고, 새것임에도, 모두 설거지를 다시 했어야만 했다. 식기구도 행주 등도 다음 날 아침까지도 도착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사장의 셔츠와 식당 안내원의 오래된 베갯잇으로 그릇의 물기를 닦아내야 했다. 보리스와 내가 모든 일을 했다, 줄스는 어딘가로 숨었고, 사장과 아내는 빚쟁이들 그리고 몇몇의 러시아 친구들과 술자리에 앉아 식당 성공의 축배를 하고 있었다. 주방장은 식당 안에서 머리를 식탁에 올려놓고 울고 있었다, 50인분의 음식을 해야 됐기 때문인데, 냄비와 솥은 10명 분도 요리할 수 없을 정도로 부족했다.자정즘에는 빚쟁이들의 무시무시한 독촉이 있었다, 사장이 외상으로 얻어 온 8개의 구리 냄비들을 찾으러 온 것이다. 빚쟁이들은 브랜디 반 병에 잠잠해졌다. 


줄스와 나는 집으로 가는 마지막 지하철을 놓쳐 식당 바닥에서 자야만 했다. 아침에 처음 본 것은 주방 식탁에 위에 올려둔 햄을 먹고 앉아있는 뚱뚱한 쥐 두 마리였다. 나쁜 징조 같았다, 이 러시아 식당이 망할 것 같다는 더 강한 확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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