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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호 Sep 27. 2016

사랑한다, 사랑받다

실제로 할 수 있는 것은 사랑하는 일뿐이다 

사랑이라는 감정이 얼마나 오래 지속될 수 있는지는 미지수다. 과학적으로는 2년에서 3년이면 연인이 느끼는 사랑이라는 감정은 사그라들고 친구와 같은 우정의 감정이 남거나 감정 자체가 없어질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과학적인 방법으로 통계를 내며 정확한 사랑이 지속되는 시간을 저려해도 사랑의 감정이 얼마나 오래 지속될 수 있는지는 알 길이 없다. 누군가는 자신이 사랑하는지도 모르고, 사랑을 받고 있는지 깨닫지 못할 때도 있다. 사랑이라고 믿었던 감정이 사랑이 아닐 수도 있고, 단순히 호감이나 친밀한 감정이라고 생각했던 마음이 사랑일 수도 있다. 화성으로의 이민이 가능해지고 있는 세상에 살고 있는 지금도 사랑은 드 넓은 우주보다, 저 깊고 깊은 바다보다 더 이해하기 힘든 무엇으로 남아 있다.


사랑을 받는다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특히 연애를 하는 연인들에게는 더욱 그렇다. 연인 관계를 유지하는 사람들 간에는 이 감정 하나로 모든 것이 이루어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성적인 판단이나 감성적인 판단은 모두 이 감정을 기반으로 작동한다. 한 명의 희생이 이성적으로도 감성, 감정적으로 이해를 받을 수 있는 조건은 단 하나, 연인 간의 사랑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를 하고, 듣는 것으로 서로에 대한 믿음이 생기고 서로를 위한 희생을 감내할 수 있게도 해준다. 그리고 그 감정으로 인해 서로를 미워하고 증오할 수 있는 감정이 싹트기도 한다. 사랑이라는 감정이 이성으로 판단을 할 수 있는 그 어떤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이성을 강하게 지배하고 비이성적인 행동일지라도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행동으로 받아들여지게끔 하는 감정이 사랑이다. 


이성적으로 판단할 수 없고, 잴 수도 없는 감정인 사랑이기에 사람들이 이 사랑이라는 감정을 믿지 못할 때도 있지 않을까 한다. 어느 정도는 물질이나 행동만으로 판단이 되기도 하지만 전적으로 물질과 행동만으로는 판단을 할 수가 없는 문제점을 분명 가지고 있다. 가난한 사람은 사랑이라는 감정을 물질로 표현할 수 없을 것이고, 공간적, 시간적 물리력 때문에 사랑을 표현 하지 못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육체적인 한계로 인해 육체로 사랑을 표현하지 못하는 사람도 분명 존재한다. 마음에서 나오는 사랑이라는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은 복합적이면서도 매우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결국 우리가 누군가의 사랑을 믿을 수 있는 방법은 스스로 선택하는 수밖에 없다. 입에서 나오는 달콤한 단어를 믿을 것인지, 달콤하진 않지만 우직한 행동을 믿을 것인지, 아니면 물질과 시간을 소비를 보며 믿을 것인지는 본인이 선택할 수밖에 없다. 그 사람의 말, 행동, 그리고 기타의 조건들을 보고 사랑을 믿을 것인지는 본인이 결정할 수밖에 없다. 



누군가를 믿는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믿는다는 것은 자신도 모르게 기대를 불러오고, 기대를 한다는 건 실망을 할 수 있는 일이 생길 수 있다는 뜻이다. 배신을 당하고 상처를 받게 되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누군가를 신뢰했을 때 생기는 일이라는 것을 생각해 보면 이해하기가 쉽지 않을까 한다. 믿던 친구와의 사이에서 신뢰가 깨져도 상처를 받는 상황에서 자신을 사랑한다 말하던 사람에게 받는 배신감은 더욱 클 수밖에 없을 듯하다. 하지만 사랑을 하는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특징 중 하나는, 그 사람을 잃을 까 봐, 그 사람에게 상처받을 까 봐, 그 사람에게 모든 것을 주고 결국 혼자 남겨질까 봐 두려워하는 성향이 있다는 것이다. 




모든 것을 줄만큼 사랑하고, 모든 것을 줄 것처럼 사랑해 주던 그 사람에게 받을 배신감에서 오는 공포와 두려움은 사랑과 함께 동반되는 듯하다. 소중한 무언가를 잃는 것을 넘어 본인이 남겨질 외로움과 자괴감 그리고 배신감을 견디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영원한 사랑이 존재한다고 믿던 믿지 않던 사랑이 사그라들 수 있다는 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고 있다. 무의식에 박혀있는 이 사랑이 사라질 수도 있다는 부담감과 두려움이 누군가를 믿지 못하게 하고 본인의 마음을 다 열지 못 하게 하는 게 아닐까 한다. 행복하면서도 두려운, 두려우면서도 행복하고 싶은 중독과 비슷한 형태로 사랑은 찾아오고, 찾아온 그 감정을 받아 사랑을 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언제까지 두려워할 수는 없다. 수영을 배우기 위해선 물에 대한 두려움을 견뎌내야 한다. 운전을 하기 위해선 언제 어디서 닥칠지 모르는 사고에 대비를 하며 운전을 해야 한다. 내일 죽을지 언제 죽을지 모르는 인생을 평생 죽음에 대한 공포로 떨며 살 수는 없다. 간단하지 않다. 모든 것을 주고 배신을 받을 수 있다. 모든 것을 주지 않고도 모든 것을 받을 수도 있다. 설명을 해 낼 길이 없다. 무조건 받는 사랑을 할 수 있고, 무조건적으로 사랑을 주는 사랑을 할 수도 있다. 어느 쪽이 되었던 사랑을 주고받는 것에 두려워해서는 안 될 듯하다. 받은 사랑만 기억하고 준 사랑은 잊자. 사랑은 강제로 빼앗아 올 수 없지만 자신의 의지로 줄 수는 있다. 믿고 기대하는 감정은 인간의 자연스러운 감정이며, 그에 따라 미래에 대한 불안감과 혹시 모른다는 불확신은, 대부분,, 언제나 동반하게 되어있다. 



그렇지만,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내일, 그리고 몇 년을 고민하며 지금의 감정을 억누르며 본인이 누릴 수 있는 행복까지 같이 눌리는 결과를 스스로는 만들지 말아야 한다고 본다. 불확실한 세상인 것에서는 변함이 없다, 그 세상 속에 존재하는 사랑 또한 불확실한 요소를 지니고 있다. 불확신 속에서 확신을 찾으려 하고, 불확신을 확신으로 만들려 하다 보니 행복을 놓치는 게 아닐까 한다. 사랑하기에 바보가 될 수 있고 미련해질 수 있다. 직장에서, 일에서 미련하고 바보가 되는 것은 문제가 될 여지가 있지만, 사랑에서 바보가 되고 미련하게 되는 것에 있어, 그 누구도 비난할 자격은 없다고 본다. 본인이 행복하냐 아니냐만 생각을 하는 게 어떨까 한다. 사랑을 하는 사람이 행복할 때 자신이 행복할 수 있는지, 자신이 행복하게 됨으로 더 많은 사랑을 줄 수 있는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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