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꽃과 장미나무
사람이 사랑에 빠지는 이유는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다. 사랑하는데 이유가 없다, 라는 말은 많은 사람들의 입에서 오르고 내린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사랑에 빠지고 사랑을 주고 싶은데 정말 이유가 없을 수 있을까? 우선 사람이 사랑에 빠지는 이유는 의식적으로는 느끼지 못할 수 있다. 수 없이 지나쳐 가는 사람들 중 유독 눈에 들어고 알 수 없는 이유로 심장을 뛰게 만드는 사람들이 있다. 무의식은 자신이 사랑에 빠질 수 있는 사람을 찾게 만든다. 자신의 얼굴과 비슷한 사람, 평소 이상형으로 생각해 온 외모를 가진 사람, 자신과 비슷한 성격과 생각을 가진 말이 통하는 사람, 인식을 하지 못 할지라도 사랑에 빠지는 이유는 분명 있다.
그것이 외적인 이유가 되었건 내적인 이유가 되었건 사람이 누군가를 사랑하거나 특별한 감정을 품게 되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실례로 많은 사람들이 이별 후에도 자신과 이별을 한 사람과 비슷한 유형의 사람과 다시 연애를 하게 된다는 것이다. 물론 이전의 연애 경험에서 생긴 정신적 고통이나 외상으로 정반대의 사람을 만나는 경우도 있지만, 많은 사람들이 비슷한 사람들과 비슷한 연애를 빠하는 일을 흔히 볼 수 있다. 자신도 인지 못 하는 무언가가 누군가를 사랑하게 만든다고 해야 될 듯하다. 사랑에 빠지는 일은 어쩔 수 없다면, 질문이 하나 생긴다, 사랑을 유지하는 일은 어떨까, 과연 이것 또한 우리의 의지와는 상관없는 일일까?
무엇이 사랑에 빠진 연인을 계속해서 사랑하게 할 수 있을까. 연인이 되면 하게 되는 행동들이 두 사람의 사랑을 지속시켜 주는 것일까, 아니면 그저 사랑하는 마음이 두 사람을 한 평생의 연인으로서 행복하게 해 주는 것일까. 닭이냐 계란이냐라는 질문이겠지만 후자가 더욱 합리적으로 들린다. 많은 연인들이 "함께하는 행동 또는 행위"에서 "행동 또는 행위"에서 행복을 찾고는 한다. "함께하는"이 아닌 "행동과 행위"에 더욱 무게를 두는 것이다. 더욱 사랑을 돈독하게 하고 두 사람의 마음을 강하게 하고 두 사람의 행복하려 한다면 다채롭고 다양한 그리고 새로운 "행동과 행위"를 쉬지 않고 꾸준히 해야 한다고 느끼는 듯하다. 특히 연애가 길어지고 두 사람이 함께 하는 시간이 길어지면 길 수록 이런 성향은 더욱 강해지는 것처럼 보인다, 처음에는 "함께하는"만으로도 충분했지만, 후에는 "행동과 행위"에 무게가 더욱 실리게 된다.
인간은 처음에는 새로운 것과 다양한 것에 자극을 받다가 더 이상 자극을 받지 않게 되면 지루하고 따분함을 느끼게 된다. 연애도 마찬가지다. 이를 "권태기"라고 한다. 감정도 시간이 지나면 색이 바래게 되고 처음의 의미가 퇴색이 된다. 꽃이 만발했던 장미나무에서 장미들이 모두 떨어지는 순간이 오듯 말이다. 장미꽃이 만발했던 순간을 그리워하며 장미꽃이 남지 않은 나무를 보는 것은 그리 유쾌한 일이 될 수 없다. 장미꽃을 피우는 것은 장미나 무이지만 장미나무가 아름다운 순간은 장미나무만 덩그러니 서 있는 순간이 아닌 장미꽃이 피었을 때라는 것은 자명하다. 그렇지만 과연 장미꽃에만 집착한다면 장미나무를 키우는 사람은 장미꽃이 피는 계절을 제외하면 나머지 시간들을 행복해하며 보낼 수 있을까?
대부분의 일에서 한쪽에만 극단적으로 치우치는 일은 위험할 때가 많다. "함께하며 하는 행동과 행위"에서 둘 중 하나만 빠져도 행복을 이루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함께한다"는 것에만 의미를 주고 아무 변화 없이 그저 같은 곳에만 머무른다면 인간의 특성상 당연히 지루해지고 염증을 느끼며 서로에게 느끼는 감정에 무감가 해져 갈 수 있다. 당연히 새로운 것이 필요하고 활력소가 필요하다. 장미나무에 거름이 필요하듯. "행위와 행동"은 그만큼 중요하다. "행위와 행동"이 거름이 되었을 때 더욱 아름다운 장미를 피울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더욱 아름다운 장미를 피우기 위해 거름에만 집중하다 보면 목적과 목표를 잃을 수 있다.
사계절을 조종하고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면 작년만큼 아름다운 장미를 피울 수 있다는 보장을 하기는 당연히 힘들다. 작년과 똑같은 장미에만 집착할 일이 아니다. 장미나무를 키우는 일의 목적이 절대적으로 아름다운 장미만이라면 노력만으로는 한계가 있을 수 있다. 아예 장미나무를 뽑고 새로운 품종을 심어야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물론 품종을 바꾼다고 할 지라도 계절의 변화를 이겨낼 수 없다는 사실은 여전히 따라다니겠다.
이 조절할 수 없고 조종할 수 없는 부분 때문에 의도치 않게 장미나무가 죽거나 장미나무가 뿌리째 뽑힐 수도 있다. 아니면 장미나무를 키우는 것에 흥미를 잃고 뜨거운 햇살 아래 물을 주지 않고 장미나무를 의도적으로 말려 죽일 수도 있다. 장미나무를 키우는 일은 키우는 사람의 의지에 따라 달려있음도 거부할 수 없는 사실이다. 만약 장미나무가 시들해지고 있음에 마음이 아픔을 느낀다면, 장미나무를 꾸준히 보살피고 아껴야 한다, 장미꽃이 떨어지고 장미나무가 꽃을 피우는 일은 반복됨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