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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연애상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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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호 Aug 27. 2018

우리는 배려하며 연애를 하고 있을까?

배려는 정말 어렵다.



연애를 하면서 이런 말들을 많이 한다. "내가 여태까지 참은게 얼만데.", "대체 넌 왜 네 생각만 하냐?", "넌 내가 맞춰주는게 안 보여? 아무렇지도 않아? 당연해?","난 언제까지 널 받아주고 맞춰줘야 하냐?" 별 수 없다. 사람이 나아준 부모와도 다르고 피를 나눈 혈육과도 다른 성격을 지니지 않는가. 완벽히 다른 가정에서 자라나고 다른 환경에서 살아 온 사람들이 만났을 때 안 맞는건 어찌보면 당연하다. 한 집안 내에서도 종교, 정치, 사상, 생각의 차이가 현격이 날 수도 있지 않은가. 하물며 평생을 따로 살다 만난지 한 달, 일 년 밖에 되지 않았는데 어찌 다르지 않을 수 있는가. 아마 배려의 시작은 서로가 같은 사람이라는 것을 인지하면서도 다른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부터가 아닐까 한다. 



배려와 무조건 좋은 사람간에는 차이가 있지 않을까 한다. 가끔 사람들은 정말 착하고 순진한 사람에게 바보 같다는 말을 한다. 하지만 배려를 하는 사람에게는 바보라는 말을 좀처럼 자주 하지 않는다. 배려와 무조건적인 선행은 차이가 있기에 그런듯 하다. 배려는 무조건적인 선행과는 다르게 자신의 것을 지키면서도 상대방에게 친절을 베푸는 것이지 않을까 한다. 진정한 배려가 무엇인지 정확히 단정짓거나 정의 할 수는 없을 듯 하다. 배려와 선행의 차이도 사실 애매모호 하다. 사전적 의미로 배려는 상대방을 도우려는 마음, 선행은 착하고 어진 행실이라고 한다. 별 차이가 없어 보인다. 


사실 연인사이나 보통인간관계는 크게 다른 점이 없다. 다만 서로의 장단점이나 타인이 모르는 점을 더욱 안다는 것이 다를 뿐이다. 직장상사가 하는 못 된 짓이나 본인의 애인이 하는 이상한 행동을 다르게 느낄 사람은 없다. 그저 연인이기에 참는 것이고 직장상사이기에 침묵 할 뿐이다. 

내가 받기 싫은 대우는 보통 다른 사람들도 받기 싫어하는 경우가 많다. 배려의 관점을 여기서부터 보는 건 어떨까 한다. 내가 듣기 싫은 말, 내가 받기 싫은 처우는 상대방에게도 하지 않으면 된다. 내가 하고싶지 않은 일은 남들도 하기 싫어한다. 그 남들에 당신의 애인도 포함이 된다. 타인에게 듣기 싫은 말은 애인에게도 듣기 싫은 경우가 많다. 연인이라는 관계 특성상 특히 더 듣기 싫은 경우도 있다. 자존감이나 자존심을 깍는 말은 누구도 듣기 싫어한다. 그게 사실이라 할지라도 굳이 타인의 입을 빌어 비판당하듯 듣기 싫어한다. 누구나 비슷하다. 간단하지 않은가, 내가 받기 싫은 어떤 것은 상대방에게도 주지 않으면 된다. 물론 취향의 차이로 내가 싫은 것을 상대방이 좋아 할 수도 있다. 그럴 경우에는 상대방의 의사를 먼저 듣는 것이 우선이 아닐까 한다.


상대방이 좋아하는 것, 싫어하는 것을 극심히 가려 무조건적으로 행동을 조심하는 것은 자기희생이지 배려가 아닐지 모른다. 하지만 분명 내가 싫더라도 상대방을 위해 희생을 해야 하는 경우가 있고, 내가 좋더라도 상대방을 위해 참아야 하는 경우가 있다. 이런 문제에 있어서는 본인의 줏대가 가장 중요하지 않을까 한다. 극단적인 예로 종교를 포기해야 한다거나, 종교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 빠졌다면, 그 안에서 선택을 해야 하는 것은 본인이다. 상대방과 이별을 하거나 상대방의 권유나 강요를 받아들이고 관계를 이어나가는 수 밖에 없다. 어떤 선택을 했을 때 그 결론이 자신을 행복하게 하지 못 한다면 이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필요할 듯 하다. 어느 쪽을 선택하냐에 있어 본인이 더욱 행복 해 질 수 있는지 말이다. 서로에게 맞춰나가는 건 연애의 기본이라고 생각한다. 다른 두 사람이 함께 하기 위해선 기쁨과 행복만이 필요한 것이 아닌 인내와 희생도 분명 필요 할 것이다. 상대방을 기쁘게하고 나를 기쁘게 하는 선택이 있다면 최상이겠지만 한 쪽의 희생이 필요한 경우도 있다. 그 희생이 언제나 한 쪽으로만 쏠리면 문제가 곪아가는 경우가 많다. 비등한 관계를 유지하면서도 희생을 각오하고 상대방의 희생을 인정할 수 있는 인내와 감사해 할 수 있는 자세가 배려의 일부분이 아닐까 한다. 


연인사이에서는 서로가 배려를 하기 위해선 시간이 필요하다. 오랫동안 서로가 함께 하다보면 상대방이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을 알게 된다. 어느 선이 넘어도 될 선인 아닌지를 자연스레 알게 되거나 다툼을 통해 알아가기도 한다. 그렇게 서로가 서로를 알아가다보면 신뢰가 쌓이듯 배려를 하려는 마음도 쌓이지 않을까 한다. 


보통 사람들은 모르는 사람에게 더욱 친절하고 상냥해지려는 경향이 있다. 가장 중요한 사람보다 상대적으로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 더욱 집중하려고 할 때도 있다. 타인에게 베풀 여유로운 마음은 있어도, 내 옆에 있는 진정 중요한 사람을 위해 써야 겠다는 마음을 생각 못 할 수도 있다. 물론, 힘들어 하는 타인들을 보며 안타까워하지 말고 집에 있는 가족과 본인에게만 신경써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지독한 개인주의나 가족중심의 생각을 하자라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힘든 누군가를 보았을 때의 그 연민과 공감을 주변의 중요한 사람들에게도 똑같이 가져보려 노력하는 건 어떨까 한다. 난 내 남자친구한테 잘 해주지도 못 하니 다른 사람들에게도 친절을 베풀면 안돼 가 아닌 다른 사람들에게도 친절을 베풀고 싶고 베풀 수 있는 마음을 소중한 친구나 연인 그리고 가족에게는 더 크게 베풀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의문을 갖는 것도 배려에 대해 고민하는 좋은 방법이 아닐까.       

웃으며 재밌게 보긴 힘든 영화지만, 기회가 되시면 남자친구분과 함께, 아니면 혼자라도 이터널 선샤인이라는 영화를 봐 보시기 바랍니다. 혹시 보셨더라도, 지루함을 참고 다시 한 번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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